『이기적 유전자』
독서모임이 진행된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었던 거 같은데, 지금까지 같이 읽어온 책을 보면 이미 소설부터 경영, 사회, 과학까지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다루기도 했었고. 다들 이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걸 느꼈는지 이제는 서로 추천하는 책을 읽어보자는 말이 나왔고 그 첫 선택이 『이기적 유전자』였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정도로 너무 유명한 책은 모두 읽었을 것 같지만 역으로 너무 유명하기에 읽지 않은 사람들 또한 많은 책들도 있는 법이다. 특히 과학도서같은 경우 관심사가 맞지 않으면 절대 손대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니, 이 도서로 해보자는 말이 나왔을 때 모두 읽어보지 않아서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리라.
어쨌든 나는 보통 독서모임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책을 읽고 생생한 감상평을 가져가려고 해서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책을 읽고 모임에 참석했다. 특히 이번 책같은 경우에는 과학도서이기는 하지만 인문 교양도서로서도 이름날리는 책이다보니 이 책이 나왔던 약 5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며 읽은 감상평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고.
아침의 카페는 꽤 한산했다. 맨 처음 이번 독서모임 장소로 결정된 카페를 보고 안에 갤러리까지 따로 있는 카페이다보니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꽤 이른 시간에 모이기도 했었고, 이런 내 걱정은 결과적으로는 기우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가 일어날 때에는 거의 만석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삼삼오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예쁜 카페에 일찍 와서 여러모로 다행이네.
"오늘도 즐겁게 읽고 오셨나요."
오늘도 자연스럽게 던진 질문과 이에 대한 대답, 오늘의 대답은 yes도 no도 아닌 애매모호한 반응이었다. 다들 과학도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못했는지 많이 읽고 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오랜만에 읽은 과학도서라 읽는데 고생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꽤나 익숙한 이야기들이다보니 여유롭게 넘길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는 점?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에 나온 작품이다. 이 책이 나온 당시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대목은 아무래도 책에 나와있는 이야기들이 전부 중학교, 고등학교 생물 수업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자의 우성과 열성(최근에는 현성과 잠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도 한다.), 간단한 유전자의 시스템 구조, 동물의 생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교과서에는 없지만 당시를 기준으로는 혁신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이야기인 문화의 형성과 인간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마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서문이 아닐까, 모두 서문을 괴롭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책에 관련해서 할만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나는 퍼스트 펭귄 이론 부분을 읽을 때 조금 웃으면서 읽었다. 황제펭귄의 퍼스트 펭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이 들어봤을 것이다. 대다수의 펭귄이 물(블루오션)에 들어가기 꺼려할 때 용감한 퍼스트 펭귄이 먼저 뛰어들고 무리의 리더를 차지한다는 관용어. 새로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라는 경제쪽 관용어로 한때 익히 사용되었는데, 사실은 그렇다기보다는 서로 천적인 바다표범이 있는 바다에 뛰어들기 싫어서 한 마리를 밀어넣기도 한다는 식의 언급이 나왔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부정적인 현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재포장하는 당시 한국 특유의 자기개발서가 떠올랐는데 다들 이런 포인트가 어느정도는 떠올랐는지 퍼스트 펭귄에 대한 이야기를 한동안 나눴다.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이기주의적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하는 책인가? 라고 생각했다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다는 이야기부터 이타주의적인 행동이 사실은 모두가 살고 무리를 형성하기 위해 하는 지극히 유전자의 자기중심적인 이야기였다! 라는 이게 말이 되나? 싶으면서도 말이 되네? 하고 긍정하게 되는 이야기들의 연속. 추후에 나오는 인간 문화와 밈이라는 단어의 첫 사용, 그리고 제로썸 게임에 대한 이야기, 카니발리즘과 동종에 대한 배려, 다른 종에 대한 이타적이지 못한 행동들, 책에 나왔던 예시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근래 독서모임에서 이렇게 책 이야기만 가지고도 풍성하게 말이 나오는 독서모임이 근래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할 말이 많은 모임이었다.
한참 책 이야기를 나누다 뻐꾸기의 탁란에 대한 글이 생각나 말을 꺼냈다. 내가 본 글은 뻐꾸기의 탁란이 자기가 알을 품고 키우지 않기에 다른 새에 비해 굉장히 쉬운 방식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글이었다. 첫 째, 해당 둥지에 살고 있는 새와 비슷한 색의 알을 낳지 못하면 둥지의 주인이 이를 알아차리고 먼저 깨버린다. 둘 째, 뻐꾸기보다 먼저 다른 아이들이 태어나는 경우 어미는 혼자 태어나지 않는 뻐꾸기 알을 품지 않고 포기할 가능성이 생긴다. 셋 째, 다같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육식성을 띄는 조류의 둥지에 알을 낳았을 경우 태어난 새끼들이 뻐꾸기를 역으로 공격해 죽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렇기에 뻐꾸기의 탁란은 실제로 굉장히 어렵게 되는 편이라는 글이었는데, 이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책에서도 예시로 나왔던 뻐꾸기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나왔다. 둥지 밖으로 다른 알을 밀어내는 행위는 뻐꾸기만의 행동이 아니며 역으로 뻐꾸기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새끼도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상어가 새끼를 부화하는 이야기와 같은 다소 태어나기 어려운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들...
예상 종료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고, 다음 도서는 다른 회원님의 추천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오기로 결정했다. 『면도날』과 이 책 중에 어떤 책을 추천하면 좋을까 고민하셨다는데, 혹시 요즘 『면도날』이 어떤 사람 입에 오르내린 작품이라 유명해졌다는 사실 알고 계시냐는 질문에 갑자기 추천할 마음이 싹 사라지셨다고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너무 좋은 책이라 이번에는 다들 즐겁게 읽고 오시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왔어야 했는데, 후회를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울 대공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같이 동물 이야기를 많이 나눈 날에 동물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날씨도 좋은데 왜 챙겨갈 생각을 못했을까. 결국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헤어졌고 근처 햄버거집에서 점심을 대충 떼운 다음에 한참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갔다.
이제 캠페인 후기 하나 남았다. 하나만 쓰면 밀린 글도 전부 쓰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니 일상으로 돌아간다기 보다는 다시금 취업을 준비하던 지난 나날로 돌아갈 수 있다. 벌써 독서모임에서 두 분이 출판사에 취업하셨다. 이번에 원고 쓴다, 뭐 한다고 9월부터 정신없이 딴짓하는 사이에 벌써 취직을 하셨다니... 모두 축하드립니다! 나도 빨리 새 일을 알아보고 시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