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골목길에서는 산이 보인다』, 『유럽 책방 문화 탐구』 강연 후기
지난 주 동생이 예비군에 가야해서 일주일간 집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새 집으로 이사오고 모든 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서 일주일이나 보내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예전 큰 방, 작은 방 두 개의 방으로 나눠 살던 시절에는 동생이 오면 셋이서 큰 방에서 떠들다 잘 때는 두 명은 1층, 2층 침대로, 한 명은 바닥에 이불펴고 겨우 잤던 거 같은데 이젠 각자 방이 생겨서인지 어떻게 얼굴을 보며 지내야 할 지 모두 어색한 눈치다.
어쨌든 동생은 예비군에 가야한다. 부천과 시흥 그 어딘가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에 매일매일 9시까지. 솔직히 차 없이 가기에는 껄끄러운 위치다. 차가 잘 가는 곳도 아니고 가려고 하면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분명 버스를 타고 온 다른 예비군이 엄청 많을테니 쉽사리 돌아오지도 못할 거고. 너 어떻게 갈거냐? 저녁 밥상에서 여러 번 이야기가 나오다 결국 차를 태워주자는 말이 나왔다. 형은 차끌고 출근하고, 결국 집에서 운전하는 사람은 나나 아버지밖에 없잖아...
금요일 아침 저녁, 예비군이 끝난 동생을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핸드폰에 온 연락을 보다 우연히 독서모임 회원님의 카톡을 읽었다. 이번 주말에 북페스티벌이 많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가보는 걸 추천한다고.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 대한 이야기, 관심이 가서 금요일날 강연 일정을 보니 나태주 시인님도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연 예매를 하려고 하니 아, 생각해보니까 금요일날 동생 예비군 차를 태워주기로 했었지... 결국 금요일 강연은 포기하고 토요일날 북페스티벌에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올해 여기저기서 열린 다양한 북페스티벌에 방문 했다. 인천 아트북페어, 서울 국제도서전, 군산 북페어, 그리고 이번 서울와우북페스티벌까지. 과거에는 무계획 여행 느낌으로 방문해서 강연을 들을 기회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강연을 2개나 예매하고 출발했다. 서울의 산과 골목길에 대한 강연과 유럽의 책방 문화에 대한 강연,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였고 오늘 이야기도 아마 두 강연의 후기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할 거 같다. 그 말은 반대로 북페스티벌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다는 이야기기도 하고.
합정역 근처에는 하늘까지 닿겠다 싶을 정도로 거대한 세아타워가 있다. 길을 건너기 위해 멈춰서는 횡단보도에서 건물 위를 올려다보면 마치 삼각형으로 배치된 듯한 건물이 앞으로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데, 거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건물들을 찍고 있을 때면 나는 사람보다는 건축물, 조형물을 좋아하는구나 문득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사람을 찍은 적은 친형이나 옛 중학교 동창을 제외하고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도 합정역 근처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렸다. 지하 1층 정도에 위치한 곳에서 열린 작은 북페스티벌이었는데 해당 북페스티벌에 대해 주제만 간략하게 알았을 뿐 내부 조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고, 규모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지 않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그간 방문했던 북페스티벌에 비해 규모가 너무 작아서 오히려 놀랐다. 부스도 10부스가 되지 않았고 어린이 책 전시전도 같이 열린다고 했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건물 한켠에 배치해놓은 수준에 그 옆에 있는 와우 서점 자체도 굉장히 작게, 그리고 강연에 참가하는 작가들의 작품만 진열된 정도여서 실망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참가한 부스들이 공존과 유대라는 컨셉에 걸맞게 책을 가져왔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실제로 오늘 내가 듣는 강연도 공존과 유대에 걸맞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주제의 책들이었기도 했고, 또 부스에서 선택한 책들도 아이, 환경, 사회, 공존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컨셉을 잘 담은 책들이어서 부스를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특히 공존과 유대, 요즘 시대에 더욱이 필요한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환경만을 지키기에는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고, 사회적 합의를 지키고 모두가 만족하기 위해서는 과거 선진국들이 해왔던 환경 파괴를 꾸준히 해야만 하고... 사실 내가 신청한 두 강연 사이에는 환경 보호에 대한 강연도 있었는데 세 강연을 연달아 듣을 체력이 되지는 않을 거 같아서 두 강연만 신청했다. 만약 세 강연을 연달아 들었다면 이런 사회적 합의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지도.
2시에 들은 첫 강연은 『서울의 골목길에서는 산이 보인다』의 저자 김인수 선생님의 골목길과 서울 어디에서도 보이는 산에 대한 강연이었다. 나는 골목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우연히 달동네와 골목길을 다니며 재개발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썼던 칼럼을 읽어서 그런건지, 내가 그런 곳에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번 강연도 그런 골목길의 이야기가 담기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잘 짜여진 대로와는 다른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골목길의 이야기가.
강연에서는 내사산과 외사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울 거리 어디에서나 보이는 한국의 산에 대한 이야기가 사진과 더불어 주를 이뤘다.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예전에 우연히 사진 커뮤니티에서 봤던 게시글이 떠오른다. 한국은 특색이 없는 도시다, 하늘 자체가 아름답지 못하다, 찍을 게 없어서 못찍는 수준이다. 나는 같이 돌아다니다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중요한 것은 피사체만큼 그 피사체의 가치를 포착하는 눈인데 너네는 그런 시야가 있는 거 같다고.
산을 배경으로 멀리 보이는 서울은 명관이라고 생각하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도 전부 다니지 못한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국의 도시와 거리에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피사체를 포착하는 눈이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강연은 꽤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도시과 그 뒤로 보이는 산, 과거 도성의 모습과 이를 그대로 파노라마로 찍어 재현한 현재의 한국 모습, 그리고 건축가이자 조경가로서의 시선을 담은 이야기들. 과거 출간하셨다는 한국 특유의 화원에 대한 이야기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도 같이 강연에 담겨 있었는데 아마 구매한 책을 읽고 관심도 계속 관심이 이어진다면 과거 책들에 대해서도 찾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후 인근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카메라 상태를 보고, 7시 강연을 듣기 위해 다시 페스티벌 장소에 방문했다. 이번 강연은 『유럽 책방 문화 탐구』책의 저자 한미화 선생님의 강연으로 유럽의 책방 문화에 대한 강연이었다. 나는 그냥 책이 좋아서 읽는 애독가라고 자부하는 만큼 국내외의 책방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최근 국내에서도 다양한 독립서점과 작은 규모의 특색있는 책방들이 나타나고는 있다지만 해외가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앞서나가고 있기에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강연 직전에는 선생님이 먼저 방문한 관객들에게 말을 걸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업계 관계자처럼 보인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업계 지망생이라는 이야기부터 최근 다시금 이야기가 나왔던 도서정가제와 랑법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근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과거 도서정가제에 대해 꺼냈던 발언들이 물 위로 올라오면서 이에 대해 불이 붙은 인터넷과 이에 반응해주는 자극적인 인터넷 뉴스들까지. 정말 꼴볼견도 이런 꼴볼견이 없다 싶을 정도의 한 편의 쇼가 벌어졌는데 유럽의 책방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결과적으로 프랑스가 나오고, 선생님 또한 위 도서에 랑법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으니 업계 관계자로서의 간단한 견해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나온 선생님의 대답은 오프라인, 온라인 서점의 할인 금지, 10% 할인 이원화 정책은 잘못되었으며 이를 수정하는 게 급선무라는 대답이었다.
나도 이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편이다. 실제로 국제도서전에 방문했을 때 거기에서 책을 구매하면 특별 할인이라고 말하면서 -인터넷 서점과 다를 바 없는- 10% 할인에 굿즈를 몇 개 나눠주고는 했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면 기본 10% 할인에 추가 마일리지 적립까지 있으니 과연 굿즈와 책을 등에 메고 가는 노력이 적립되는 마일리지 값과 비교할 수 있는가 계산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국제도서전에서 제일 구매를 고민했던 책은 『젠틀 매드니스』였는데, 당시 뜨인돌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정가로 판매하면서 추가 굿즈를 증정하고 있었다. 알라딘에서 구매할 시 가격은 48,000원에서 10% 할인된 43,200+마일리지 3,000원 가량, 거기에 책을 한 권 더 사서 5만 원을 넘기면 2,000원 마일리지 추가까지. 실제로 가격만 비교해보면 과연 굿즈가 7, 8천 원 수준의 가치가 있는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책을 메고 집에 가는 노력+할인되는 금액을 고민했을 때 그러는 것보다는 알라딘에서 시키는 게 낫겠다 싶어서 결국 포기하고 돌아섰고. 이런 이원화 정책을 없애는 게 최우선이라는 말에 내 그간의 경험을 생각해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도 비싼 책일수록 고민된다는 내 말에 웃으며 동감하는 반응을 보이셨다.
강연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의 서점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런 서점 문화는 국민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꾸준히 강조하셨다. 랑법과 같은 도서정가제의 유무, 이에 따른 아마존과의 할인 출혈 경쟁에 대한 이야기, 근래가 들어서야 도입된 프랑스 내의 카페와 차를 대접하는 어떤 영국의 서점에 대한 이야기. 국내에는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공룡이 다양한 규제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보니 그 충격이 거의 없었지만(이는 한국의 IT 갈라파고스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꾸준히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아마존의 위상이 엄청난만큼 각 국가의 거대한 서점들도 코로나 이전부터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가 발생하고, OTT산업이 발달하고, 오프라인 시스템이 전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내가 쓴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의 서평을 읽었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거라 생각한다.
사실 책과 책방은 사양 산업, 레거시 산업이라고 불리는 게 현 실태다. 노벨문학상으로 한강 작가의 책은 많이 팔렸다지만 그게 다른 책들의 소비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고 그 이전에 작품들도 쉽지 않은 편이라 관심을 꾸준히 이어갈 예비 독자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 와중에 이 책과 강연은 무슨 가치가 있을까. 나는 특색을 지닌 책방과 이 책방이 지역에 가져다주는 영향력에 대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강연과 책이라고 생각한다. 성심당 옆 다다르다처럼, 부산의 카페 2층에 입간판으로 시선을 끄는 부산 창비처럼, 통영에 방문하면 한 번씩은 가게 되는 남해의 봄날처럼 독립서점은 지역에서 새로운 독자를 만들고 외부에서 새로운 방문객을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책방과 책의 미래, 아마 규모가 축소되더라도 꾸준한 수요는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진짜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서평의 결론처럼 되어간다.
강연은 재미있게 들었고 강연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린 다음 집으로 가는 버스에 빨리 몸을 실었다. 일요일에는 F45 행사가 있었기에 빨리 집에 가서 쉴 생각 밖에 없었다. 요즘 이곳저곳 강연을 듣고 북페스티벌을 다니면서 많은 편집자분들을 만나고 있다. 나는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 되야 할까, 생각해보면 군대에서도 수많은 선배들을 만나면서 나중에 어떤 선배처럼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계속 고민하며 살게 된다. 물론 이런 고민도 취업한 후에 할 수 있는 배부른 고민이겠지만.
셔터박스가 갈렸는지 좌상단에 무언가 검은 가루같은 게 자꾸 보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거 같은데, 물론 셔터박스가 갈린 건 아닌가? 최근 들어서 위화감을 느껴 고민하고는 있었는데 진짜 이렇게 되어버리면... 카메라를 줬던 친형은 이제 11만 컷도 넘게 찍었을텐데 중고로 새로운 카메라를 사서 갈아타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솔직히 백수의 입장에서 덜컥 120 넘게 쓰면서 새 카메라로 넘어가는 데에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 내일이나 내일모레 중에는 니콘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서 이미지렌즈 세척 문제인지 셔터박스 문제인지 확인해보려고 한다. 셔터박스 문제라면 그냥 중고를 새로 사기보다는 셔터박스를 갈아서 쓰는 거로 하고...
최근에는 『서울문학기행』과 『흑뢰성』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아마 당분간은 이 책들 읽는다고 정신 없지 않을까. 이제 캠페인도 끝나서 다시 책 읽고 서평 쓰고 취업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고민중인 사안은 지금 디자인 교육을 추가로 받을까 말까 정도인데, 아마 당분간 계속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 강연 시작 전에 도서정가제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군산 북페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눴다. 선생님은 방문하지 못하셨다길래 내 방문 후기를 간단히 들려드렸는데 가족들을 위한 행사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는 후기를 말씀드리면서 이런 이야기도 글로 쓰고 있다고 말하니까 출판사에서 좋아할만한 활동을 많이 하는 거 같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또 이렇게 열심히 활동을 하게 되는건 좋은데, 이제는 취업도 같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더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