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흔한 일상
내가 전역계를 제출하고 휴가 나왔던 때가 겨울이었는데 벌써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하고 있다. 거진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또 나는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움직였을까. 전역하면 취업할 수 있을 거야! 막연했던 생각과 달리 야금야금 줄어드는 퇴직금에 점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안타깝지만 과거에 비해 사람을 찾는 곳은 줄어들었고 여전히 이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오늘은 100번째 게시글을 쓰고 있다. 전역하기 이전에도 일상적인 글을 꾸준히 써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역한 후 1년 사이에 쓴 글이 과거에 썼던 글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일상적인 이야기들 수십 편, 서평 서른 편, 독서모임과 스터디 모임 후기글까지. 이렇게 나열해 보니 생각보다 글 쓰는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사실 전역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을 하며 전역했다. 20살부터 1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내가 학생 시절에 꿈꿨던 글과 함께하는 삶을 살지 못했으니 앞으로의 10년은 글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보자. 그리고 이 생활이 행복하다면 앞으로도 글과 함께하는 삶을 살자. 어찌 보자면 전역할 때의 목표를 잊지 않은 채 지금은 글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마음은 온전히 글에 몰두하지 못하지만. 때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때로는 추한 몸부림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이런 삶을 살다가 언젠가 가족들이 원래의 길로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근래에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신청했고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님께서는 내가 가진 경력과 자격증을 보고는 이런 이야기를 넌지시 던지셨다.
"혹시 항공 정비 쪽으로는 생각 없으세요?"
"그런 생각이 있으면 전역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쪽으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정비사로 살고 싶었다면 아마 군대에 계속 남았을 거다. 군대에 남는 게 아무리 박봉이고 고된 일이라고 하여도 마음의 여유는 있는 일이고 기관정비사라는 프라이드와 자기만족이 있는 일인데 굳이 떠난 거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한편으로는 군대를 그리워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뭐, 군대가 그립다기보다는 그 시절 시골에 살았기에 선택할 수 없었고, 선택할 수 없었기에 애초에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포기하며 살던 때, 머리가 편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걸지도.
근래에 캠페인즈에서 하던 이태원 참사 관련 캠페인이 끝나고 원고료 책정과 정산까지 모두 끝났다. 그래서 거기에 작성했던 서평을 이제 늦게나마 올려보려고 한다. 왠지 캠페인 기간 동안 캠페인을 위해 작성했던 서평을 여기에 동시에 올리는 행동은 원고료도 받으면서 쓴 글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행동 같아서. 사실 스스로가 찔린 것이다.
캠페인 준비부터 사전 탐사를 위한 이태원 방문, 그리고 글 쓰는 시간까지 퍽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돈을 받아서 쓴다기보다는 과거부터 이런 사고에 대해 꾸준히 관심이 있었고 그런 분야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대다수가 정치적인 목소리로 흘러가니 최대한 중립적인 스탠스를 취하면서 쓰고 싶어 하는 나 스스로의 기준 때문에 함부로 글을 쓰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고.
나는 이태원에서 사고가 발생했던 당시에 상부 지시사항과 인터넷을 통해 사고를 접하게 되었다. 할로윈 기간에 거리를 돌아다니다 사고를 치면 가중처벌하겠다는 문서 하나, 그리고 주말에 어떤 장소에 사람이 많이 밀집할 것으로 예상되니 피하라는 문서 하나, 늘 있는 문서들이었기에 모두가 무시하고 지나쳤고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고가 나겠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 후에는 다들 예상되리라 생각한다. 사고가 발생했고, 휴가 나간 인원을 포함해 전 부서원이 안전한지 위치를 파악하고, 비상연락망을 통해 서로 연락해 보고... 그때 사고 소식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던 일, 선후배의 인스타를 확인했던 일, 연락을 돌렸던 일, 그 기억이 아마 이번에 제안받은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다.
원고료는 많지 않았다. 애초에 자유 연재에 기준 매수당 얼마로 책정되는 형식의 평범한 연재글이었으니 큰 기대를 가지고 뛰어들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 일은 내 삶에도 뜻깊은 한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재능이 없어 글로 돈을 버는 일은 평생 해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의미에서든 내 글을 보고 제안해 주는 사람이 있었고 나도 이를 통해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했다고 생각하면. 큰돈이든 작은 돈이든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나를 찾아줬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이런 기회만으로도 앞으로 더 글을 써나갈 수 있다.
캠페인이 끝난 이후에는 잠시 책을 읽으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근래에 읽은 책은 『서울 문학 기행』, 『흑뢰성』, 『날씨의 아이』였다. 『흑뢰성』은 내가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팬이어서 과거부터 읽어야겠다고 마음먹다가 여유가 조금 생기고서야 읽은 책이고,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동명의 영화를 본 후에 소설로 읽어보자고 사놓고 한참을 묵혀놨다가 이제야 읽은 책이다. 그렇게 말하니 사실상 이 달에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보자고 선택한 책은 『서울 문학 기행』뿐이다.
예전에 넘어가듯 대충 흘려 적을 때 적은 적이 있는 내용 같은데 전역한 후에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편집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소설만 읽기보다는 교양서를 더 많이 찾아보고 읽으면서 이에 대한 서평을 적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설은 달에 한 권, 많아봤자 두 권만 읽기로 생각했는데 요 근래 읽었던 책들이 전부 썩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런지 반동처럼 소설을 자꾸 찾아 읽게 된다. 이러면 서평도 남기지 못하게 되는데. 근래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 이유도 이런 연유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어쨌든 근래 읽었던 소설들은 전부 만족스러웠다. 특히 『흑뢰성』, 서평을 쓰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월말에 적는 도서 리뷰/프리뷰에서 꽤 길게 떠들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날씨의 아이』는 지금 읽는 입장에서는 꽤 유치해서 과거에는 어떤 마음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시리즈를 읽었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지난 이야기를 꽤 적었으니 앞으로의 무계획적인 계획도 적어보자면 아마 다음 주 중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당장 내일은 부천에서 열리는 부천 북페스티벌을 친구와 구경하러 가지 않을까 싶다. 부천시청 앞 잔디밭에서 북캠핑이라는 컨셉으로 열린다고 하는데 아마 그간 참가했던 북페스티벌과는 달리 가족들을 위한 행사, 조금 더 라이트한 행사가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특히 그간 보러 갔던 행사의 경우 애독가들을 위한 행사, 혹은 업종 관계자들을 위한 행사와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어서 이번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기대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군대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가볍게 적어나가 보려고 한다.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걸어온 이야기를 적는다는 생각으로. 사실 예전부터 꾸준히 생각해보기는 했었는데 9년의 시간이 그러기에는 꽤 길기도 했고, 10월까지 거기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하나다. 이런 이야기를 써보면 어떻겠냐, 읽어보고 싶다 이야기해 주는 주위 사람들이 있어서. 늘 그렇지만 내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쓰는 편도 아니고, 정확히는 그냥 손 가는 대로 막 쓰는 사람이라서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쫓아가다 보면 되지 않을까.
이제 추운 겨울이 오고 있다. 나도 계속 이렇게 있어도 괜찮을까 고민을 하면서 새롭게 디자인 쪽으로도 배워볼까 고민 중에 있고. 아무래도 해가 지나도록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100번째 글, 그 이후 200번째 글을 쓸 때 나는 뭘 하고 있을까. 답은 나오지 않지만 앞으로도 계속 글은 써야지, 그 생각만을 가지고 100에도 200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오늘의 이야기, 내일의 이야기를 계속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