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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Apr 28. 2024

4/26 90기 독서모임 주간 2회차 후기

폭풍의 언덕

최근 이사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가족들은 모두 일을 하기에 이삿날 당일을 제외하고는 자리를 비웠고, 결과적으로 내가 새로 배치될 가전제품, 가구들을 전담해서 정리했다. 에어드레서, 식기세척기, 에어컨, 장롱과 침대 같은 가구들. 새로운 집에 새로운 가구가 들어설 때마다 더 편하게 살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웃고, 앞으로 내가 낼 카드 할부에 울었다. 뭐, 가족들을 위해 쓰는 돈이니까 미래의 내가 힘내서 내겠지.


 그런데 이 이사 기간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독서모임을 준비해야 하는데 책조차 읽지 못했다는 점. 나는 근래 좀처럼 없던 비바람이 치던 날에 언덕 위의 도서관에서 폭풍의 언덕을 빌렸다. 그리고 빌린 후로 한 페이지도 펼치지 못했다. 읽던 책이 있었고, 이사 전후 준비가 있었으니까.


 이사가 끝나고 가구 정리가 얼추 되고 나서야 책을 펼쳤다. 독서모임까지 남은 기간은 3일, 내가 다 읽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과는 달리 책은 술술 읽혔다. 아니, 술술 수준이 아니라 너무 재밌어서 이마를 치며 읽었다. 다른 이들도 나처럼 재미있게 읽었을까? 오늘도 모두 한겨레 교육문화센터로 모인다.




"다들 재미있게 읽으셨어요? 전 진짜 1840년도에 이런 현대식 로맨스판타지 같은 소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그래서 로판 장르를 시작하려는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하잖아요? '이 장르를 모른다면 폭풍의 언덕을 먼저 읽어라.'"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책에 막 주먹을 휘두르면서 읽었네요. 가스라이팅이 너무 심해."


"인물들의 감정선이 이해가 잘 안 가서 폭풍의 언덕 영화도 봤어요. 그러니까 이해가 좀 되더라고요."


 폭풍의 언덕은 접근할 방법이 많은 고전 명작이다. 비단 소설로만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고전 소설 해설서, 영화, 만화, 혹은 폭풍의 언덕을 기반으로 한 패러디물까지. 이번에 모인 회원님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영화를 본 이들도 적지 않았다. 


 모인 이들은 모두 읽은 소감을 먼저 이야기했다. 감정선이 날뛰어서 때로는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이야기,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가스라이팅을 하는 히스클리프의 행동에 화가 났다는 이야기, 작가가 어떻게 이 시대에 이런 글을 썼을까 감탄만 나온다는 이야기, 민음사의 번역이 다소 직역에 가까워 딱딱했다는 이야기. 한 종류의 판본으로 한정 지어 읽지 말고 자유롭게 판본을 골라 읽기로 했기에 이번에는 번역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왔다. 모임에 참석한 4명 중 민음사 판본을 읽은 사람은 3명, 을유문화사 판본을 읽은 사람은 1명이었는데, 서로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미 문학에서 해당 소설이 가지는 가치. 여성 작가였기에 표현할 수 있었던 섬세한 감정선과 사랑을 다방면으로 해석해 다른 면모의 사랑을 보여줬던 장면들. '폭풍의 언덕'이라고 명명된 이름의 유래와 이에 대한 비판, 을유문화사의 경우 한국에서 유명한 '폭풍의 언덕'이 아닌 '워더링 하이츠'라고 원본 그대로의 명명법을 가져왔는데 이에 대한 독자 시점에서의 감상과 '과연 '폭풍의 언덕'은 제목이 될 수 없는가? 이대로 괜찮다면 독자가 느끼는 괜찮은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서로의 생각.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는 맨 위에서 했던 이야기를 독서모임에서 함께 나눴던 이야기와 함께 다시 짚어가고 싶다. 본 도서를 읽은 이들은 알겠지만 내용을 보면 사실상 영국판 사랑과 전쟁이다. 더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로맨스판타지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높게 평가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판타지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시대상을 잘 표현하고, 이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어머니 캐서린(이하 캐서린)은 남편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임에도 3년 만에 돌아온 히스클리프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아예 그의 옆에 붙어 티타임을 보낸다. 히스클리프가 의도한 카사노바였다면, 그녀는 천연적인 팜므파탈처럼 두 남성을 쥐고 흔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1권이 끝나고 2권 시작 후 그녀가 죽을 때까지(민음사 판본에서는 1권, 2권 개념을 삭제한 채 장으로만 배치했지만 을유문화사의 경우 1권, 2권을 나눠서 배치했고, 이를 알게 된 때는 서로 판본을 비교하며 특정 부분을 읽다 우연히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영국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이었지만 역으로 상상을 벗어나는 존재였고, 가문을 확장시키기 위한 결혼과 이로 인해 하나의 재산이 되는 여성. 이 가치를 벗어나는 존재였기에 모두의 이목을 끄는 아름다운 존재로 마지막까지 남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그 후 전개되는 2권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촌을 어여삐 여기는 감정을 사랑과 혼동한 것이 아닌가, 이는 이성과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감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행동을 계속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히스클리프와 대항하겠다, 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외치는 당돌한 jr. 캐서린. 그녀는 결국 모든 것이 파멸하리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에도 마치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을 찾아내듯 다른 사랑을 피워냈고, 끝내 고난을 이겨낸다. 그와 함께 오는 히스클리프의 파멸에 대한 이야기, 결국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는 결론(우스갯소리로 내가 던진 말이기는 했다). 4명이서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꽃을 피워 즐거운 모임이 되었다.




 모임이 끝난 후에는 한겨레 출판편집스쿨 기획 담당자님과 함께 짧은 티타임을 가졌다. 독서모임을 가지게 된 계기, 취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거리, 한겨레교육에서 준비하는 것들과 앞으로 함께하면 좋겠다는 이야기, 사실 한겨레 출판편집스쿨은 좋은 커리큘럼을 가졌고, 업무에 던져졌을 때 도움이 될 정보를 많이 가르쳐줬지만 아무래도 7주라는 짧은 과정에 모두 담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 앞으로를 이야기하는 담당자님의 모습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고, 또 지난 교육생인 우리에게 연락을 주셨다는 점에 앞으로도 많이 한겨레 교육의 도움을 받고, 소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다들 취업준비생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데야할지 몰라 고민하는 이들도 있고, 집어넣은 지원서에 대해 답변이 오지 않아 벌써부터 마음의 상처가 될 거 같다는 분도 계신다. 물론 나도 아직 출발선이고 이렇게 글을 남기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모두가 이 방향이든, 아니면 다른 길이든 원하는 바를 이루고 함께 또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응원할 따름이다.


 다음 모임은 5월 중순 야간타임 2회차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죽음, 도서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로 결정되었다. 이사 전후 정리로 인해 정신이 없었는데 먼저 의견을 취합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며 이제 일이 좀 정리되었으니 다시금 집중해서 모임을 잘 꾸려가야지, 이렇게 기합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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