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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un 29. 2024

6.28 서울국제도서전 후기

"6월에 서울국제도서전 열리는 거 아세요? 그리고 거기에서 하는 강연 들으려면 따로 신청하셔야 해요."


 주위 도서전에 가는 지인들이 처음 가보는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지만 결국 나는 얼리버드로 예매만 했을 뿐 강연을 신청하지는 못했다. 첫 째 이유는 강연 예약이 예상보다 많은 예약자로 조기 종결되었다는 점이고, 둘 째는 함께 가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관심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친구는 관심 없는 채로 옆에 앉아서 한참을 들어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금요일 아침, 코엑스로 가는 길은 지난하게 멀고 모두가 일을 시작하는 9시, 봉은사를 향해 가는 이들은 적지 않다. 열차에서는 두런두런, 책 이야기가 작게 흘러나온다. 오늘만큼은 책을 좋아하지만 밖에 나오지 않는 애독가들이 모이는 걸까. 아니면 내 뒤에 있는 사람도,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사실은 업계 종사자인 걸까.


 코엑스까지 오고 나서야 느꼈다. 아, 오늘 카메라 꺼낼 일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괜히 카메라를 가져왔구나.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 코엑스 1층은 네이버 얼리버드 예약자 줄로 꽤 북적였다. 물론 들어가는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도서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세상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체감되는 것은 여성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어떤 네이버 블로그에서 남자는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온 사람정도밖에 보이지 않고 대다수가 여자라는 작년 후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남정네 둘이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모습, 이상한 광경이지 않았을까, 자평해본다.


 각 부스에서는 해당 출판사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어린이 책, 인문 교양, 과학과 사회, 혹은 서브컬처와 같은 문화 계통의 책들이 많이 나올수록 이는 더 돋보인다. 이번에 눈에 띄었던 출판사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콘셉트가 비슷했던 민음사와 안전가옥. 헤르만 헤세를 필두로 세웠던 뜨인돌, 글과 관련된 컨텐츠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유유, 그리고 국립생태원과 같은 국가기관 부스가 유달리 눈에 띄지 않았나 싶다.


 먼저 대형부스의 경우 가볍게 둘러보기만 하고 넘어간 감이 없잖아 있지만 둘러보면서 출판사의 지향점이 보이기는 했다. '여성작가', '여성들을 위한'과 같은 단어 선정과 더불어 추구하는 방향성을 보여준 은행나무 출판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앞에 전시하고 마침 최근에 국내에서 출판한 퀸의 대각선을 위한 장소도 따로 마련을 한 열린책들, 이제는 출판사에 자리 잡은 하나의 멤버십인 북클럽을 광고하는 민음사와 문학동네, '고양이 해결사 깜냥' 캐릭터를 앞에 배치해 이제는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창비까지. 대형 부스는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이런 와중에 구석에 밀려 조금은 빛바랜 자음과 모음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같이 간 친구와 대형 부스를 오래 구경하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우리는 어깨 우람한 덩치 하나와 카메라 가방을 멘 바보 하나였으니까 공간을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근에 모여있는 인파를 보면서 대형 출판사는 당분간 걱정 없겠구나, 생각이 들기는 했다. 후에는 일반 부스를 돌면서 여기저기 멈춰 섰다. 일단 내 친구는 박영사, 학지사와 같은 전통적인 출판사에 많이 멈춰 섰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생각이 났는지 박영사의 편집자님과 폰트 가독성, 레이아웃 가독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눴고 최근 도서들이 가독성이 좋아졌다는 평과 함께 이제는 글자가 잘 보여 따로 타이핑해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최고의 칭찬을 들려줬다. 그리고 학지사에서는 과거 심리학 공부를 할 때 썼던 교보재들이 디자인이 깔끔해졌다는 말과 함께 양장으로 새로 나와 예뻐지고, 학지사가 십수 년 전에 비해 굉장히 라이트한 책을 많이 내기 시작했다는 순수한 독자의 평을 내줬다. 이런 십수 년 전의 일도 기억해 주는 독자가 지금 출판사에게 가장 필요한 독자가 아닐까.



 나는 국립생태원 부스에서 가장 먼저 멈춰 섰고, 나의 천적 꿩과 더운 날씨에도 고생하시는 펭귄님을 찍었다. 국립생태원에서 출간한 책 중 유의 깊게 본 책은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이라는 책이었다. 유리창으로 가득한 빌딩, 고속도로의 소음 완화와 조경을 동시에 잡기 위해 설치되는 투명한 방음벽, 조류충돌에 대한 이슈는 사실 00년대부터 나오고는 했다. 단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해결하기 위해 작은 곳에서 노력하고 있을 뿐. 위의 도서는 야생조류의 습성부터 이를 막기 위한 수치화된 설명과 만약 충돌한 조류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한 대처법에 대해 다소 학술서처럼 적혀 있다. 이런 도서들이 일반 독서가들에게 관심을 끌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국립생태원의 노고가 눈에 보였고, 연구가 디테일하게 진행되고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좋은 활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유리창의 사이즈를 규격으로 설명하는 디테일은 어렴풋하게 유리창에 조류 스티커를 붙인다, 정도의 지식만 알고 있는 내게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뜨인돌에서는 핵심 브랜드인 어린이, 청소년 책을 기반으로 헤르만 헤세를 콘셉트로 삼아 부스 활동을 했고, 부가적인 도서들도 선보였다. 이번에 눈에 띈 도서는 어니스트 섀클턴에 대한 도서들, 그의 이야기는 2010년도 초반 반짝 나오고는 했지만 그 후로 잠잠하게 가라앉았고, 작금에 와서는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정도의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뜨인돌에서는 이 콘텐츠를 포기하지 않았는지 섀클턴의 리더십에 대한 책을 간간이 내고 있는 모양이다. 작년에도 한 권 단행본을 출시했고. 나는 이런 꾸준한 행보를 싫어하지 않는다. 특히 위대한 인물들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든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고, 또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접근이기에 훌륭한 기획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외에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꾸준히 판매고를 올렸던 『젠틀 매드니스』라는 벽돌책은 이번 기회에 한 권 사고 싶었다. 문제는 이 책이 1100p가 넘는 양장본이라는 점... 결국 이걸 가방에 넣고 다닐 용기가 없어서 여기서 사지 말고 인터넷으로 사기로 마음먹은 후 돌아섰다.


 친구와 함께 돌아보는 도중 돌고래 출판사의 부스를 지나갔다. 마침 최근에 『악인의 서사』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했기에 친구에게 이 책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면서 최근 서평을 썼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부스를 지키는 편집자님 중 한 분이 해당 도서를 직접 편집하셨다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놀랐다. 이런 주제에 대해 꾸준히 생각은 있었는데 이렇게 엔솔로지로 묶어서 낸 경우가 좀처럼 없었기에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재미가 있었고, 서평도 즐겁게 썼다. 이렇게 평을 말씀드렸는데 편집자님이 만족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입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시도였고, 요즘 2도 색상이 기본인 도서 시장에서 1도 색상 단행본이었음에도 주제와 시너지를 일으켜 생각보다 진중하게, 그리고 요즘 독자들의 생각,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생각과 함께 엮어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하고 싶다.


  유유 출판사는 늘 그렇듯 책, 글자에 대한 콘텐츠를 중심으로 만든 책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책, 글자, 서점, 편집자, 가까운 듯 먼, 로망이 담긴 단어들에 대한 책은 많지는 않지만 늘 수요가 있고 아마 출판사는 그 부분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 파고들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단행본 시장 속 해당 콘텐츠는 이제 거의 유유의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가 되었고, 유유도 그 점을 알고 있기에 이번 부스의 책띠에서도 '~편집자 추천 작품'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으며 편집자라는 존재를 물 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바른북스에서도 책 만드는 법에 대한 도서를 앞세우면서 독립출판, 투고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기는 했지만 유유만큼 진심으로 이 분야에 때려 박는 출판사는 아니기에 아직 이쪽 시장의 강자가 누구인지는 확연하게 보이지 않나 싶다.


 친구와 각자 부스를 구경하기로 하고 돌아다니는 도중 동네서점이라는 부스를 발견했다. 전국에 있는 동네서점 모임 부스라고 했나, 관계자분이 나눠주시는 부스 설명 팸플릿에서 익숙한 이름이 보여 웃으면서 구경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주변에는 경인문고라는 서점이 있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한 봄봄 카페처럼 경기도 지역에 있는 프랜차이즈 중소서점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역곡점을 주로 이용하고는 했다. 역곡점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총 3층 구조였는데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 작은 서점이 왜 이렇게 볼거리가 많고 신기했는지, 시간이 나면 늘 그곳을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또한 그곳에서 책을 사다 주셨고, 학습서, 소설, 에세이부터 어른이 된 후에는 바이올린 연주서, 베이스기타 연주서까지 모두 그곳에서 구매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 서점이 흔하게 보급된 후에도 인터넷 서점을 늦게 사용했고, 언제나 책을 찾을 때면 일부러 발품을 팔아 그곳에 가 책을 찾고는 했다. 지난달에 갔을 때에도 역곡점은 여전히 살아있던데, 내 추억이 서린 작은 서점들 모두 함께 오래갔으면 좋겠다는 욕심 가득한 생각을 해본다.


 이번에 경인문고에서 추천한 책은 『나쁜 책 금서기행』이라는 책이다. 작년 이맘때쯤에 나왔던 『릿터 41호』의 커버스토리 최신 금기가 생각나는 책이었는데 안의 내용을 훑어봐도 당시 시대에서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다룬 도서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나는 최근 문화부 기자들이 얼마나 뛰어난 글솜씨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감탄을 하고 있다.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을 집필한 성수영 작가도 그렇고 본 도서의 저자 김유태 작가도 그렇고 이들의 문장력과 스토리를 엮는 기획 능력, 사회를 보는 개인적인 시선까지. 최근 갈등에 지쳐 뉴스를 외면하는 세태에서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게 되는 그들의 연재 칼럼은 단행본에서도 빛나고 있다.


 C홀과 D홀의 사이 구석에 대원미디어의 부스가 있었다. 대원 네이놈! 어째서 환세취호전을 이렇게 방치한 것이냐! 나는 그것만 보고 살았고, 나오자마자 사전예약마저 했거늘... 어째서 내게 플레이 불가 버그와 부족한 추가 콘텐츠를 준 것이냐... 어째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 것이냐... 눈물을 머금고 지나갔다. 사실 대원에서 이번에 준비한 부스는 2개로 열혈강호 30주년 기념, 그리고 신부이야기 부스였다. 신부이야기를 본 적은 없지만 굉장히 수려한 작화로 유명한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드로잉 쇼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필로 그리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며 지나갔다. 그리고 열혈강호는 만화보다도 게임으로 즐겨서 알고 있지만 너무 예전에 했었던지라 어렴풋하게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뭐, 사실 이런 부분을 제외해도 대원미디어가 이런 산업 전반적으로 뿌리가 있기에 많은 기억은 있지만 오늘의 목적은 아니었기에...


 D홀에 있는 소규모 출판사에서는 아무래도 지난 인천아트북페어에서 봤던 닷텍스트가 눈에 띄었다. 누가 읽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누군가는 읽겠다는 생각이 같이 드는 출판사라고 예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친구도 닷텍스트의 도서 앞에 멈춰서 잠깐 둘러보다 지나갔다. 무언가 남자들의 관심사를 끄는 주제를 가져온다고 해야 하나, 창작자들의 관심사를 끌만한 주제를 가져온다고 해야 하나. 어찌 되었건 작은 출판사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시선을 끈 곳은 에이플랫, 장르문학 관련 출판사인 이 소규모 출판사는 최근 기획서를 써본다고 뒤졌을 때 이름이 이쪽 분야로 꾸준히 책을 내고 있어 놀랐던 출판사였다. 교보문고를 서치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여기에서도 보게 되다니, 이게 무슨 운명 같은 일인가 생각하면서 웃고 지나갔다. 책의 일러스트도 90~00년대 장르문학을 떠올리게 해서 꽤나 수려하다 생각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해당 출판사의 책도 읽어보고 싶다.


 이번 여행의 결과물이다. 꽤나 길고 장황하게 출판사들에 대한 평을 적어봤지만 사실 못한 이야기가 조금 더 남아있다. 예술인문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이에 대한 출판사들의 최근 행보에 대한 이야기다. 소규모 출판사에서 내는 예술인문서, 사회평론에서 내는 예술인문서, 그리고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까지. 앞으로 며칠 내에 서평이 나올 예정인데 거기에서는 이 이야기를 좀 묶어서 풀어보고 싶다.


 재미있었고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가고 싶다. 무엇보다 주말 코엑스 1층이 도서전 입장객으로 꽉 찼다는 소식을 들은 오늘, 어제 가기를 잘했다고 다시금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하면서, 내년에는 저 자리에 편집자로 내가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을 다시금 불태우면서 이 글을 끝내고 싶다. 내일까지의 도서전 모두 힘내시고 방문객분들도 즐겁게 구경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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