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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ul 03. 2024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읽기 5기 후기

2016년 6월, 사이버 지식 정보방에서 페이스북을 뒤적거리다 릿터 편집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나도 문예지 편집자로 저 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요즘 문예지는커녕 잡지도 읽는 사람이 없다는데 만들어봤자 금방 폐간되는 거 아닐까 몰라. 당시의 나는 그런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족의 뜻에 따라 군의 정비사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이미 군생활을 1년 반을 했고, 앞으로 부사관 생활도 계속 이어가야 했으니까. 페이스북에는 계속 릿터의 편집자를 모신다는 글이 올라오고는 했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스북을 그만뒀다. SNS는 보지 않는 편이 마음에 좋을 테니 말이다.


 2024년 6월,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읽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전역 당시 한겨레 출판 편집 스쿨 수업이 끝나면 다음에 들어야겠다 마음먹은 수업이었다. 원래는 5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수업이었지만 인원을 다 모으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 달 개강이 늦춰졌고 결과적으로 5월에는 서평 워크숍을, 6월에는 릿터 읽기 수업을 연달아 듣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행인 일이다. 서평 워크숍과 릿터 읽기 수업은 병행해서 하기보다는 한 가지 수업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수업들이었으니까.


 그러면 왜 이 수업을 신청했어? 라는 질문이 나올 만큼 이상한 고백이지만 나는 릿터를 굳이 찾아 읽지는 않았다. 누가 편집하는지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도서관에 갔을 때 우연히 릿터가 놓여 있으면, 커버스토리가 마음에 들면 잠깐 꺼내 읽는 정도가 전부였다. 왠지 모르게 보고 싶지 않았다. 옛날 생각이 나서,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군에 가지 않고 대학에 갔다면 내가 이런 책을 만들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옛 기억을 품은 채 문을 두드리고 싶었고, 이번에 수업을 해주시는 정기헌 편집자님에 대해 지인을 통해 우연히 듣게 되었다. 대단한 분이시라고, 일에 대해 몰두하는 분이시라고. 정기현... 죄송한 이야기지만 처음에는 남성 편집자분이신가? 생각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설레는 마음 절반,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 일부, 그리고 내가 이 일을 하게 된다면 언젠가 저 자리에 나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 일부, 이 모든 감정을 한 컵에 섞은 쉐이크를 마시는 기분으로.


첫 주부터 문예지의 스타일, 문예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커버스토리, 소설부문, 비소설부문, 기획까지 이어졌다. 강의는 난해 하다기보다는 책을 사랑하고, 편집자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면 한 번쯤은 모두 해봤을 법한 이야기와 더불어 이를 구현해 내는, 과정의 구체화에 대한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커버스토리를 어떻게 구상하는가, 연재 지면의 원고는 어떻게 조율하고 받아내는가, 같은 지면의 서로 다른 색을 가진 필자의 작품 배치와 조율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들, 그리고 연재된 작품들이 실제 단행본이 되는 사례까지, 조곤조곤 위태롭게 시작한 수업은 어느 순간부터 전문가의 시선 아래 뼈와 살이 붙어 힘이 생기고 있었다.


 이번 46호 커버스토리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당신이 모르는 베스트셀러' -베스트셀러에 이렇게 표현하면 웃기지만- 숨겨진 베스트셀러를 찾는 과정인가? 베스트셀러를 추적하는 과정인가? 비인기 장르들의 베스트셀러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마 이런 부분들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커버스토리이리라. 몇 달 전에 썼던 치부와도 같은 서평에서는 역으로 이 책의 원고가 좋음에도 어째서 많은 이들에게 읽히지 못했는가에 대해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역설계다. 책이 실패한 이유에 대한 역설계, 그리고 이번 원고는 책이 성공한 이유에 대한 역설계였을 뿐이고. 물론 정답은 둘 다 '모르겠다'였다. 하긴 유행을 읽어내고 베스트셀러의 흐름을 안다면 그건 필시 인간의 마음을 투시하는 요괴일 테니. 선생님 또한 이 원고에 대해 같은 평을 남기셨다. 결국 우리는 알지 못했고, 이를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이야기. 사람마다 발의 보폭이 다르고 갈 수 있는 거리가 다르듯, 사용하는 SNS도 다르고 소스를 얻는 루트 또한 다르다. 이 모든 것을 추려내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에 대해 알 수 없지 않을까? 원고를 읽으며 생각했는데, 이렇게 이야기해 보니 마케팅팀이면 오히려 알 수 있지 않을까 속으로 좀 웃어봤다.


 난해한 소설 지면과 더 난해하지만 가닥은 잡히는 산문 지면, 다소 귀엽게 느껴지는 리뷰 지면까지. 수업 중반부터는 사실상 토의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캠퍼스에서 오랜 시간 전공했던 다른 학우들에게는 역시 문예사조에 대한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다양한 논점으로 찌르는 실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금 느낀 점은 최근 한국 문단에서 핫하다고 논의되는 시인, 박참새 시인이 실제 필드에서도 굉장히 호평을 받는다는 부분이었다. 성인 평균 1년 독서량 1.4권의 시대에 문예지를 읽는 독자는 더 적다고 생각하면 이런 필드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듣고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민음사에서도 이런 기획을 해서 수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겠지. 나 또한 커뮤니티로만 익히 명성을 들었던 인물들의 실 독자 평을 들을 수 있어서 그 점만으로도 나올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수업들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주에는 기획 수업이 있었고, 이번에 재미있게 읽은 커버스토리를 기반으로 기획서를 제출해 봤다. 사실 지난 면접에서 왜 기획을 더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아, 무언가 해야 하나?라는 생각과 필드에서 뛰는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가 하는 나사 빠진 기획이 과연 어필포인트가 될까? 하는 양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와중 기획 수업이 우연히 생겼으니 의견을 들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작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내 기획은 예상했던 약점을 그대로 찔렸다. 마치 머리를 치기 위해 검을 들었을 때 상대의 검이 내 빈 옆구리를 치고 나가는 것처럼, 호쾌하게 한 판. 더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책이 나오면 좋을 텐데,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를 선정했기에 좀 그분이 이런 글도 써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아마 마지막 수업의 선생님이 가장 빛나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 그녀의 수업을 듣고 있으면 수많은 책들이 내 책상 위에 던져진다. 다소 마이너한 일본 소설부터 시작해 시집, 소설, 에세이, 예술서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쌓이는 책들 사이에서 그녀는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길을 잃었고. 그녀는 자신의 독서경험을 필두삼아 기획서의 보완점을 이야기했고, 나의 언어로 풀어내지 못했던 단점을 그녀의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을 보였다. 다독, 서평, 결국 이 일을 한다는 것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산다는 의미와 같다. 편집자라면 읽어야 하고, 읽은 책을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모두 알지는 못하더라도 위화감을 느껴야 하며 그 위화감을 책에서 찾아야 한다.


수업이 끝났고 7월이 시작되었다. 이제 더 들을 수업도 없다. 앞으로는 당분간 계속 서평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사는 나날의 연속이겠지. 지금 써야 하는 글이 꽤 많이 남았다. 6월 독서 리뷰, 프리뷰도 써야 하고,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에 대한 서평도, 『초예술 토머슨』에 대한 서평도 적어야 한다. 사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쓴다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양손을 온전히 키보드 위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내일은 글을 쓰고 책을 읽겠지. 모레는 글을 쓰고 책을 읽겠지. 다음 주도 다다음 주도.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하나의 재미가 끝났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또 참석하고 싶구나.


최근 읽고 있는 책들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책들이기도 하다. 초예술 토머슨』이라던지, 『악인의 서사』같은 책들, 그리고 릿터 41호 커버스토리였던 금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에 관심이 가 이번에 산 『나쁜 책 금서기행』도 있고. 이렇게 말하니까 끝이 없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점 선 면』도 읽어보고 싶고 『온 더 무브』도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도 읽어보고 싶은데, 그리고 호평하신 『밀레니얼의 마음』까지. 나랑 미묘하게 도서 선정 취미가 안 맞는 듯하면서도 맞는 도서만 자꾸 언급하시니까 찾아보게 되지 않는가. 수업을 들으면서 다들 이런 이유 때문에 독서 유튜버를 보는 건가... 내 마음속의 선생님은 이제 독서 유튜버가 되었는가... 살짝 자조 섞인 웃음도 지어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에 언급된 책들은 지금 읽을 책들이 아니다. 독서모임에서 이야기 나눌『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완독이 가장 시급하고, 다음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늘 마음의 여유를 두지 못해 빌리지 않았던 『책의 엔딩 크레딧』이라는 소설, 그 후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매한 『나쁜 책 금서 기행』을 읽고 싶다. 그리고 여유되면 『소설 만세』도 사서 읽고, 핸드폰으로 읽고 있는 『봄눈』도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틈틈이 읽어서 완독하고... 이렇게 말하니까 이번 달도 바삐 읽어야 한다는 것이 몸으로 체감된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그녀에게 『초예술 토머슨』 리뷰 재미있게 읽었고 책 또한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 후 오늘 아침에 완독하고 도서관에 반납했는데, 내가 쓸 서평은 과연 릿터 리뷰면에 실린 그녀의 리뷰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 계속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언젠가 편집자의 말이라는 단락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아니, 그전에 누가 나 좀 데려가면 좋겠다. 남들은 일 안 하고 집에서 쉬면 좋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새로운 일이 하고 싶을까. 지금도 끓는 피를 가라앉히며 글을 매듭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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