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노동자로 산다는 의미는
최근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법전공을 하는 아는 동생을 만났다. 어깨는 태평양만하고 팔뚝은 나보다 훨씬 굵은, 아마추어 복싱 대회를 준비하는 법전공자. 거의 몇 년 만의 만남이었기에 잘 지냈냐는 안부부터 쓸모없는 사랑이야기까지 꽤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그러다 서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형님은 출판사 취업 준비하신다고요?"
"뭐, 그렇지? 내가 하고 싶어서 전역하고 나왔으니까. 너는 졸업하면 뭐 할 거 같은데? 목표는 여의도 청년?"
"음, 그러게요. 아마 정치 연구원 같은 곳에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정치 연구원이라, 석박사를 준비하게 되면 저런 말도 할 수 있구나. 문득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음을 느꼈다. 나는 정비사였고 지금은 출판사 편집자 지망생에 만약 이 길을 가지 못한다면 어디 공장에 가야 하지는 않을까, 다시 군에 들어가야 하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나도 조금 여유가 있었다면 대학원에 갔을 텐데 말이지. 웃으면서 서로 잔을 부딪혔고 그의 건승을 빌었다.
요즘 이런 책을 자주 읽고 있다. 가난, 청년들의 삶, 일용직 노동자들의 이야기. 나는 정치하는 사람도 아니고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닌데. 사실 이 책은 예전에 추천을 받았던 책이었다. 그리고 추천받았던 당시 한 월간지에서 읽었던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떠올라 언젠가 읽어야겠다 마음속에 저장해 놨던 책이기도 했고. 그래도 블루컬러 출신인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같은 생각, 그리고 이러다 블루컬러로 다시금 등 떠밀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읽자니 솔직히 겁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현실을 직면하게 될까봐.
이런 싱숭생숭한 감정으로 책을 펼쳤고 그 감정은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눈 녹듯 사라졌다. 4시에 책을 펼쳤고 앉은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봤다. 내 독서혼에 불을 붙인 것은 15페이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의 친구가 넌지시 던졌던 말이었다. 부사관, 부사관이나 해보려고. 우리 같은 대가리로 철밥통을 잡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고 싶었는데 책이 내게 다가와버렸다.
무언가를 고친다는 건 대단해 보이지만 결국 기름때가 묻는 일이다. 팔뚝과 손등, 거뭇거뭇하게 검댕이 묻고 살갗에는 상처가 남는 일이다. 일이 끝난 후에 손을 아무리 씻어도 손톱 아래에 검은 때가 남고 손 주름 사이에 낀 기름이 빠지지 않아 사람들이 악수조차 꺼리게 되는 일이다. 작가는 그런 삶을 살았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갑작스레 빚이 생겨 공장으로 내몰렸다.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산재를 당했고, 청춘이라 불리는 시절에 사랑, 사람, 도전, 꿈 예컨대 희망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다.
작가가 지나온 길은 지난번 서평에서 다뤘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의 삶을 뒤따라가보면 그 르포에 담겼던 이들의 삶과 겹쳐 보이는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빚이 있었기에 당장 일할 수 있는,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최저 수준의 일자리에 내던져졌다. 빚이 있었기에 이곳을 벗어나 도약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것, 대학을 다니는 것 모두가 인생을 건 도박이 되었다. 그는 책이 끝날 때쯤 가장 최근의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낸다. 올린 글이 우연히 많은 인기를 얻었고, 정계에 얼굴을 비추면서 청년공들의 목소리를 내었고, 그 사이에 낙상 사고가 또 생기면서 일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청년공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뭐 그렇게 살고 있다는 식의...
그의 등장 이후로 한동안 폴리텍 대학과 직업전문학교, 특성화 고등학교의 미래 비전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그들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일용직 인력이 아닌 미래의 기술자들로 키울 수 있는 비전 수립과 실천이 절실하다는 이야기. 뭐, 늘 그렇지만 본 도서가 출간된 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저 책이 나온 직후에도 제빵공장에서 청년 노동자가 죽는 사건이 발생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난한 청년공들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저임금이라는 최악의 조건을 지닌 직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에 어떤 직장 공고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복리후생에 4대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고 적어놓고 소규모 업종에 많은 걸 기대하지 말라고 괄호 안에 기입해 놓은 기업. 4대 보험 가입은 당연히 의무화된 사항 아닌가? 4대 보험 가입도 복리후생이라 적어놓고 그 외에 다른 많은 걸 요구하지 마라고 써놓는 기업이 과연 정상적인 기업인가? 아니, 생각해 보면 아직도 4대 보험 가입은커녕 근로계약서를 쓰지도 않은 채 흰 봉투에 돈을 담아 주는 공장이 있으니 그에 비하면 정상적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다른 칼럼을 통해 그가 2년 남짓 해왔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거제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앞으로의 그의 삶은 어떻게 될까.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 작가로서 자리 잡고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청년공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다시금 용접공으로 돌아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글을 쓰는 삶을 이어가게 될까. 아니면 누군가의 바람처럼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삶을 꿈꾸며 잠룡이 될까. 아마 후자는 현실적으로 힘들겠지. 나는 그의 도약을 희망한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 나는 그가 도약해서 큰 사람이 되고 정치인이 되기보다는 이제는 평범한 삶을 살기를 빌어주겠다. 20대 청년 시절 포기했던, 평범한 인연을 만들고, 평범한 사랑을 하고, 평범한 가족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살기를 빌어주겠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때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더 다뤄주기를.
오늘은 좀 짤막한 글이 나왔다. 아마 근래 수없이 다뤘던 이야기였기에 더 많은 말을 할 필요도, 내 이야기를 더 다룰 필요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좀 담백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본문의 첫 이야기는 내 경험담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다. 일을 하다 보면 팔뚝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려 피를 흘리는 일은 일상다반사였고, 팔뚝에 검댕이 묻어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일, 손 마디마디에, 손바닥과 손등의 주름에 기름이 파고들어 씻어도 씻겨나지 않아 다른 이들이 내 손을 보며 걱정했던 일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주말에도 손에서 퍼지는 기름 냄새가 싫었는데, 그러면서도 손에 쥐어줬던 200만 원도 채 되지 않은 월급이 마냥 좋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그 후에 대학원도 야간으로 다니고, 커리어를 쌓아 앞으로 더 나아가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아마 그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차이가 있다면 그는 명성 있는 작가이자 청년공으로, 나는 이렇게 글을 남기는 무명의 글쟁이이자 청년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