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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나쁜 책(금서기행) - 글항아리

문화라는 강물을 둑으로 막을 수 있는가?

by 카레맛곰돌이

2020년, 나는 하사였고 대구공군기지에서 정비사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대에 있는 모든 인원의 외출, 외박이 끊긴다면 어떻게 될까. 밖에 가족이 남아있고, 집이 밖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나 나올법한 설정이 모두의 앞에 던져진다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게 코로나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첫 반응이었다.


모든 외출, 외박이 취소당했고 병사부터 지휘관까지 모든 인원이 대외로 나가는 것을 금지당했다. 영외에 집이 있는 간부들은 영내에 사는 간부들과 잠깐 같이 살게 되었다. 후에 먹고 살 수 있도록 식자재는 구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에 주말 하루, 2시간만 영문을 운영했고 모든 이들은 그런 통제 아래에 살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일 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러니까 그 당시에 복무했던 후배들이 전부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길지 어떻게 아냐는 말과 함께 전역을 한 거겠지.


『우한일기』라는 책에 대해 알고 있는가? 정확히는 문학동네에서 책으로 발간되기 전 SNS에 올라왔던 글에 대해. 아마 4월, 5월쯤 인터넷 뉴스를 읽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의 근원지로 지목됨과 동시에 봉쇄된 우한에 살던 한 시민의 SNS 일기. 그는 봉쇄된 도시의 참상에 대해 꽤나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 던져진 시민의 회고록처럼.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이야기에 대해 풀어내는 칼럼을 읽으면서 조금 자조적으로 웃었다. 나도 이들처럼 갇혀있구나. 지난주에 어디 대대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해 사무실을 아예 폐쇄했다던데. 나는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하려고 했던 수많은 일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우한일기』는 이후에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는 중국의 반역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몰매를 맞게 되었고, 작가로서 살아온 생애, 이전의 작품들과 이후의 작품들까지, 펜에 맹세했던 모든 인생을 정부에게 빼앗겼다. 나는 이 책을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구입했다. 집 주변에 있는 동네서점, 경인문고에서 추천하는 책이었기에 들었고 내가 익히 알고 있었던 『우한일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에 이 녀석을 집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이 결정 하나만으로 국제도서전에 간 일은 두고두고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다. 오늘은 이런 특이한 책을 담은 특이한 책에 대한 이야기다.


금서? 다들 금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장면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렸고, 당연하게도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내가 군에 오래 몸담았기 때문일까, 군에 아직도 그 시절과 관련된 인물들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전역한 군 장성이라는 이들이 내가 좋아했고, 싫어했던, 군을 더럽히고 있기 때문일까. 개인적인 발로를 제하더라도 많은 이들은 금서라고 한다면 그 시절에 탄압당하고 억눌린 문화를 떠올릴 것이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양희은의 「아침 이슬」같이.


이 책은 연재물의 형식으로 전 세계의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훑어보고 이에 관한 역사와 작가의 삶을 풀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근 몇 달간 연재물에서 단행본이 된 책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했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각 내용 자체의 매력이 있고 작은 챕터를 읽고 난 뒤 책을 덮어도,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에 책을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이는 반대로 연속성이 부족하고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와 이를 이끌어가는 힘이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고. 사실 이건 연재물의 특성이다. 인터넷에서 연재를 할 때 매 화마다 독자적인 완결성을 지녀야 하고 이전 화와의 연관성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점, 그래야 나중에 유입되는 독자층이 이전 편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가볍게 관심 있는 부분만 읽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런 특징은 오히려 단행본에서는 독이 된다. 독자적인 완결성이라는 말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이끌 힘을 분산시킨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길게 풀어낸 이유는 최근에 갔던 난다 여름편집자학교와 이어진다. 내가 갔던 강의가 마침 글항아리의 편집장님 강의였고, 그 강의에서 우연히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엮어서 내는 형식의 문제점을 나열하시는 편집장님을 보고 이 책도 단행본 형식의 도서인데 그렇다면 이 기획은 어떻게 한 걸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이에 대해 질문을 드려 추후에 메일로 답변을 받았다. 요약하자면 최대한 작품 간의 연결성을 살리고, 가장 인지도가 높은 글을 우선 배치하기, 그와 동시에 연재되지 않은 원고를 추가해 단행본만의 강점을 살리기와 같은 다양한 방향성을 봤다고 대답을 들었다. 연재물과 차별성을 위해 추가 원고를 배치하기, 연재소설이 단행본화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정공법이었기에 평범하지만 가장 독자들을 위하는 방향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위에서 말한 『우한일기』나 「아침 이슬」과 비슷한 문제를 보였던 이문열 작가의 『필론의 돼지』에 대해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지만, 그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기독교 금서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에도 종교 이야기가 나올 때면 말하고는 했지만 나는 모태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왔다. 물론 중간중간 냉담을 하는 과정도 있었고, 지금도 마음속에 신을 둔 채로 성당에 가지 않는 모순적인 신자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종교적인 믿음은 늘 가슴속에 품고 살고 있다. 그렇기에 이 내용이 더 재미있게 읽히는 것일까. 작가가 금서가 된 기독교를 모티브로 한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그들이 보인 다채로운 소설과 그 뒤에 숨은 배경, 그리고 그들이 겪은 고초에 대해 읽을 때 숨죽여 읽을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는 금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독재, 탄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사실 금서에 대한 기준은 종교가 가장 높은 허들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신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과학이 그들을 대신해 불가항력적 믿음을 만들고 있고 이에 따라 젊은 신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신자들을 한 곳으로 응집시키는 극단주의적인 종파들이 득세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발칙한, 과거의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단으로 몰릴법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생산되는 것이다. 과연 이 갈등으로 이뤄진 전쟁의 종지부가 찍어질까? 누구도 이 문화적 전쟁이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단언하자면 미래에는 더 심해질 것이고. 은근하고 우회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 아닌 노골적이고 비하적인 작품들이 늘어나고, 과거와 달리 이를 맛있게 소화해 내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었을 때 종교계는 금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까.


이 책은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금서들을 다루면서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종교, 독재, 외설, 역사와 난민 같은 현재 진행형적인 문제들. 한 거대한 조직이 문화를 금지시키는 행위는 그 위를 종이로 덮어놓는 일과 같다. 어떤 문화든 종이 한 장으로 덮어놔 봤자 그 향이 주위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최근 영국에서 반 무슬림 시위가 발생하면서 이게 폭력 시위로 이어지고, 이에 대해 맞불 시위가 열리고 있다던데. 사실 난민에 대한 이슈는 비단 유럽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그 와중에 우선 문호를 열었던 유럽에서 먼저 문제가 심화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난민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도, 무조건적인 찬성의 의견을 보내지도 않는다. 단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을 뿐.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기에 종교와 국가라는 다양한 개념이 얽히는 문제에서 '무조건'이라는 키워드가 답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 답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에서도 미셸 우엘벡의 『복종』이라는 책을 통해 넌지시 주제를 던지던데. 기회가 된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더욱이 고민할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도 책이 책을 낳고 있구나.


이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그 후에 기타 등등 개인적이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밀린 서평을 주르르 쓰다가... 이제야 이 서평을 완성했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까 고민이 돼서 한 번 더 읽었다. 종교, 난민, 역사, 독재와 권력, 생각하는 힘을 앗아가는 사회에 대한 경종. 한 편 한 편 연재된 짧은 작품들이 가진 힘은 뛰어났고, 나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폭넓은 글쓰기라고 해야 할까. 주제에 대해 필요한 것만 꺼내면서 너저분하게 늘어놓지 않는 풀이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할까. 오랜만에 괜찮은 책을 사서 책장을 채웠다.


그리고 메일로 상세한 답변을 주셨던 편집장님께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최근 마음에 드는 연재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연재물도 읽으면서 연재물의 특성에 대해 주구장창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이제는 그 이야기를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그만큼 내 안에 어느 정도 연재물에 대한 기둥이 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강연과 후의 메일에서 열정을 느껴서 다시금 이 길로 열심히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사실 이런 글을 읽고 사유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고 그간 쌓아온 것들을 내려놓은 채로 이 길에 다시 선 셈이니까.


다음으로 준비된 책은 『점 선 면』, 『빙하여 안녕』, 『쇳밥일지』다. 『점 선 면』의 경우는 내가 읽어야지, 읽어야지, 노래를 해왔던 책이기에 이번 기회에 빌려왔고, 『빙하여 안녕』은 지난번에 우스갯소리로 말했던 에어컨을 틀어서 밖이 더워지고 있기에 우리만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손해다! 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친 한 형님이 떠올라 빌려온 여름 특집 도서, 『쇳밥일지』는 과거 연재물로 우연히 읽었던 노동자로 살아온 작가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빌려온 에세이다. 이제부터 읽기 시작할 예정이니 당장 서평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아마 이 작품들까지 읽은 후에 서평을 쓰면 이번 달도 마무리되지 않을까? 아직 9월 독서모임 도서를 읽지 않았으니까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써서 독서모임 도서까지 무사히 읽어서 한 달을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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