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과 맞닿았던 가난의 편린
서평에 어떤 말을 써야 할까. 생각해 보면 지난 독서모임 때 서평에 담을만한 이야기를 전부 썼던 거 같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실습생 신분으로 사회에 내던져진 친구, 주위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미래 선택지가 좁아진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아니면 미래라는 단어를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운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내 삶에는 언제나 가난이라는 단어가 맞닿아 있었다. 그 편린이 기억 깊숙한 곳에 남아있었고, 내 행동, 삶, 인생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돈이 너무 들어가지는 않을까? 이런 비싼 물건을 사도 괜찮을까? 조금 더 싸고 저렴한 선택지는 없을까? 좀 참으면 나중에 할인하지 않을까? 나는 구질구질하게 살았고 전 여자친구도, 나의 형제도, 부모님도 모두 나라는 사람이 돈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구차하게 엮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가 나에게 그랬는데. 언제 어디서든, 어떤 주제로든, 어떤 취미로든, 이야기를 꺼내면 하지 않아 본 일이 없는 남자라고. 모든 것을 해봤고,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남자라고. 아냐, 그냥 나는 그런 인간이야. 구질구질하게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은 많았기에, 그래서 뭐든 쥐어 짜냈을 뿐이야.
내 서평을 읽는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늘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내 삶에, 내 주위 지인들의 삶에, 혹은 지인의 입을 통해 들은 이들의 삶에 묻어 나오던 이야기들과 궤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그런 짤방을 본 적이 있다. 대학에서 좋은 간판을 가지면 생기는 장점. 자신에 대해 어필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주위에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이너서클이 생기고, 사회적 인식이 좋아진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굉장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소시민이다. 아니, 오히려 이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아래일까. 20대의 전부를 군에서 보냈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사관 출신에, 캠퍼스 생활 또한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좋은 인식을 가질법한 이너서클은 없다. 그저 내 입으로 말할 때마다 뿌듯한 커뮤니티들, 내 발로 일궈냈던 모임, 좋은 글을 위해 모인 대구 패밀리, 서울의 보드게임 패밀리, 그리고 예전 중고등학생 시절 동창들과 직장 선후배들이 전부다. 오늘은 나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서평이 되지 않을까.
르포 형식의 본 도서에서 재미를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가만히 읽고 있으면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깔끔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말끔한 사람과 소년, 소녀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진짜 이런 사람들이 존재해?'라는 생각이 들법한 이야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묘한 동정을, 묘한 공감을, 묘했던 나의 과거를 떠올렸다.
지금은 많이 나오지 않지만 과거 가난과 맞물리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IMF에 대한 이야기가 꼭 나왔다. 부모님이 당시에 괜찮은 공장을 운영 중이었지만 IMF로 인해 부도가 나서, 아니면 부모님이 사기를 당해서 가세가 기울었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이야기.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도 비슷하다. 괜찮은 빌라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비워야 했고, 더 작고 허름한 집으로 몇 번 이사를 가야 했고, 초등학교를 2번 전학 가야 했고,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
나는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 삼 형제가 모두 대학에 가기에는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고, 나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군에 입대했고, 20대의 전부를 거기에 바쳤다. 전역 후에는 부모님이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아둔 돈을 거의 전부 드렸고, 나는 그렇게 지금 살고 있다. 우리 집은 가난에서 벗어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슬아슬하게 사회적 기준에서 턱걸이로 올라왔을까. 부모님의 노력도 있었고, 형제들은 모두 문제없이 자랐다. 각자 자리 잡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는 그 결과가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형이 사진학과에 진학할 때 남들은 전부 수백 만원짜리 카메라에 학원 단위로 대동해서 움직였지만 그는 십만 원짜리 중고 카메라로 대학 실기시험을 쳐야 했고, 대학 등록금 문제가 재학 내내 적잖게 따라다녔다. 그리고 나는 내가 꾸던 꿈을 접어야 했다. 글과 함께 사는 일. 글을 업으로 삼는 일.
가난한 가정이란 사회에서 이런 의미를 가진다. 꿈의 스펙트럼이 좁아진다는 것, 좁은 스펙트럼에 들어가기 위해 몸을 비틀어야 한다는 것, 다른 이들의 지원사격 없이 이 지옥을 뚫어야 한다는 것. 형은 그 당시 학원 단위로 움직이는 이들을 보면서 묘한 투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너희들이 학원으로, 좋은 카메라로 이 자리에 서도 결국 내가 이길 것이다, 라는. 이게 십수 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은 이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사다리는 걷어차이고 과거 부의 대물림이라는 표현은 물질적 대물림에서 정보, 지식의 대물림으로 변했다. 부유한 가정은 돈을 버는 방법, 좋은 위치에 가는 방법, 좋은 선택지를 물려받게 되고 그렇지 못한 가정은 그 선택지를, 위치를, 정보를 제한받게 된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특성화 고등학교(혹은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실습생이라는 명목 아래에 공장으로 몰리게 되고, 졸업한 후에도 남들과 같이 대학에 진학하기보다는 저임금 육체노동의 일터로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근로소득, 가난의 대물림, 사다리 걷어차기, 이 현상을 설명할 말은 많다. 그리고 이 연결고리는 끊어지지 않는 강인한 사슬처럼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서평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대다수가 알고 있을 거고, 또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탁상공론과 같은 마무리가 전부일테니.
이 읽기 지난한 서평은 꿈의 스펙트럼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이 책은 사회에 울리는 경종과 같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이 책이 아니어도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비슷한 래퍼토리의 다큐멘터리로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도 다큐멘터리에서는 학교의 중요성에 대해 어필했고, 이들이 다양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재능을 개화할 수 있는 장소를 강조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에도, 20년이 지난 후에도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지만 사회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직종이 생기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있지만 아직도 학생들은 공장에 내던져지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역할은 공장, 아니면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자리가 한계라는 것이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 꿈을 꿀 수 있는 장소, 미래 자원을 향한 지원, 결국 이 책에서도 해결책은 학교라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비슷한 방향성의 정책으로는 늘봄학교가 있다. 방과후학교, 돌봄학교 제도를 합쳐서 늘봄학교 시스템을 도입하기. 하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문제가 따라 엮인다. 교사들의 노동 시간 상승, 그에 반해 따라오지 못하는 페이, 교사들의 체력, 정신적 문제, 오랜 시간 이어져온 교권 하락과 교사, 부모 간의 관계 같은 문제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눈 감았다 뜨면 달라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고, 안타깝지만 교육은 이 흐름에 발맞춰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가는 이 정책을 통해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학생들의 보육원? 다양한 문화체험의 장소? 아니면 꿈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첫걸음? 확실한 건 가난하더라도 아이들은 꿈을 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꿈은 어른들의 힘이 되고 사회의 미래가 되니까. 나 또한 가난한 어른이고 많은 꿈을 내려놓은 어른이지만 그럼에도 사회에 꿈이라는 말이, 희망이라는 말이 애들 장난 같은 말로 터부시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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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독서모임에서 이 도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는 내가 겪은 경험과 주위 친구들의 이야기,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여기에 다시 똑같이 적을 수는 없으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봤고, 현실보다는 꿈이라는 키워드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 주변 인문계에 진학했으면 어땠을까. 사실 우리 형제 중에 내가 제일 공부를 못해서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도 당시 3등급 언저리에서 놀고 있었다. 인문계에 진학했다면 더 높은 곳을 노리며 공부하고 지금쯤 글과 관련된 문과 계통으로 진학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랬으면 지금처럼 이런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관심과 -대단치 않은-능력을 가지지 못했을지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한 걸 나쁜 선택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응어리진 그저 그런 감정들이 조금 남았을 뿐. 그 시절 친구들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가졌던 외로움이라던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라던지, 군대에서 겪은 기상천외한 일들이라던지, 당시 좋아했던 여자아이 옆에 있지 못했던 점이라던지.
나도 꿈을 내려놓은 어른이라고는 말하지만 아직도 꾸고 있는 꿈이 하나 있다. 대학원 진학. 일을 하지 않으면서 대학원을 진학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기에 야간 대학원으로라도 글과 관련된 것들을 더 배우고 싶다. 물론 일을 시작하고, 내가 받는 페이가 생각보다 더 적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누군가 옆에 생긴다면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꿈을 꾸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아이인 내가 꿈을 꿀 수 있게 만든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