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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Aug 11. 2024

23. 고통 구경하는 사회-웨일북

저널리즘의 고뇌와 뉴스를 바라보는 시민들

 예전에 대학에서 문학과 저널리즘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던 당시 따옴표 저널리즘, 그러니까 인용 저널리즘에 대한 레포트를 써서 제출한 적이 있었다. 당시가 대선 시즌이기도 했었고, 그 이전부터 국내에서는 진중권 저널리즘(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논객 진중권의 말과 SNS 행보를 그대로 복사해서 기사로 낸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단어)이란 말로 몇 번 칼럼에서 오르내렸던 사안이었기에 꽤 좋은 평을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국의 저널리즘이 쇠퇴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기자다운 기자가 없고, 기사다운 기사가 없으며, 심한 말로는 정권의 나팔수 수준일 뿐 방송국다운 방송국 또한 없다, 라는 말로 저널리즘을 묶어서 깎아내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만은 않다. 양질의 기사는 언제나 나오고 있다. 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칼럼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단지 큰 목소리에 잠기고 있을 뿐. 그렇다고 지금의 세태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만은 정확히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는 양극화 시대를 살고 있으며, 훌륭한 기사들과 남의 목소리만 담은 채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하고, 때로는 갈등을 점화시키는 기사들이 생산되고 있다고.


 그러고 보면 한때 내 형은 기자를 꿈꿨다고 했다. 그리고 형과 함께 다니던 복학생 형님은 졸업 전시회에 제출할 작품으로 홍콩 시위를 촬영하러 갔었고, 거기에서 카메라 렌즈가 날아온 물건에 맞아 박살 났다고 했었다. 그분이 고생할 당시 형은 이제는 사라져 가는 인간문화재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과 작품을 담았었고. 결국 둘 다 기자가 되지는 못했다. 친형은 웨딩 촬영 업체서 일하고 있고, 그 복학생 형님은... 최근 주식으로 돈을 좀 만지고 있다더라. 둘 다 기자가 되지는 않았는데 왜 저널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항상 둘이 생각날까. 잠깐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작가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일단 재미있는 글은 아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나와 우리, 그 어딘가에서 헤매는 직업답게 계속 우리의 안과 밖을 노다니는, 그 과정에서 문장이 어려움을 겪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용으로만 보자면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23년부터 뒤로 10년, 그 사이 한국과 세계에서 발생했던 큼직한 이슈들에 대한 개인적인 저널리즘적 철학과 생각이 담긴 글이다.


 아마 그 사이 기간 동안 뉴스를 즐겨 봤던 이들이라면, 혹은 뉴스를 자주 보지는 않더라도 세계정세와 국내 정세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고 생각해 봤을 법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한다. 이태원 압사 사고, 홍콩 민주화 운동, 세월호 사고, 미국의 마약 관련 이슈와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 사태에 대한 이야기... 지난 10년 전부터 또 10년 전까지, 늘 10년 단위로 끊었을 때 사고가 없었냐고 말하면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난 10년은 정말 혼돈의 시기였다. 전 세계는 세계화를 내세우며 융화를 원했지만 이는 허울뿐인 이야기였고, 결국 중요한 순간 사람들은 자국을 중심으로 뭉쳤다. 아니, 자국뿐 아니라 인종, 성별, 때로는 사회적 위치, 사실상 계급을 중심으로 뭉쳤다. 이런 현상의 조짐을 십수 년 전에 본 칼럼에서는 극단적 이기주의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올드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극단적 이기주의가 사회의 표본이 되었으니까.


 작가는 이 혼돈의 시기동안 자신이 보고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저널리즘의 방향성, 저널이 가졌던 힘과 권력의 축소화, 그리고 이런 사태를 이겨내기 위한 변화. 과연 개인이, 사회가, 혹은 무차별적인 다수가 겪은 고통을 끌어와 공론의 장으로 던지는 행위가 올바른 것인가. 빈민의 삶을 저널리즘이라는 이름 아래에 흙발로 들어가 헤집는 행위는 과연 올바른 행태라고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작가는 답을 내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기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에. 저기에서 답을 내리는 순간 기자의 삶은 끝나기에.


 나는 무엇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강렬한 기억이 남아있다. 그들은 압사를 당한 피해자들이었다. 좁은 골목에, 불법 건축물에, 많은 인원에, 재난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 사이에서 행사를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엉켜 구르게 되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그 거리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구급차, 도와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핸드폰을 들고 촬영하는 사람들, 심폐소생술을 하는 경찰과 그 옆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는 주취객. 수많은 영상이 찍혔고, 뉴스보다 빨리 SNS에 영상이 퍼졌다. 그로테스크한, 아비규환의 현장이 담긴 영상들은 내려가면 올라오고, 내려가면 올라오면서 아마 그 밤 사이에 수많은 이들에게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낮이 밝고, 뉴스에서는 슬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목소리, 슬픔에 잠긴 목소리, 그 사람들에게는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나는 저널이 대변해서 풀어주는 목소리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었다. 심폐소생술을 하며 도와달라고 외치는 경찰, 구급대원 사이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이들이 너무 뇌리에 깊게 박혔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은 재난 현장, 차 위에 올라가 당당하게 춤추고 노래하던 이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사고의 한 면만을 다루는 뉴스를 보면서 내가 본 한여름밤의 꿈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만 할까.


 나는 언제나 저널의 가능성을 믿는다. 뉴스를 믿지 마! 유튜브를 믿어! 라는 말이 나오는 와중에도 뉴스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다. 출판편집스쿨에서 수업을 듣던 당시에도 매 쉬는 시간마다 뉴스를 읽고 있어서 뒤에 앉은 학우님이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데 쉬는 시간마다 뉴스만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할 정도로 늘 뉴스를 옆에 끼고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기자들에 대해 가장 많이 실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과연 이들은 이 기사가 사회에 불러올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글을 썼을까. 이 기사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방패를 앞장 세워서 사회에 나와도 될 만큼 필요한 기사일까. 그들이 이 재난과 고통, 슬픔과 분노를 티슈처럼 쉽게 쓰고 버리지는 않을까.


 서문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에 대한 레포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 당시의 기사들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뉴스를 열면 진중권 교수의 페이스북 이야기가 가장 맨 위에 올라와 있고, 그 아래에 열린공감TV라는 유튜브 채널의 목소리가 올라와 있었다. 기사의 절반이 가로세로연구소, 진중권, 열린공감TV, 신의한수에 대한 이야기로 넘쳤고, 나는 그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내가 기억하는 정치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비난을 위한 정치, 혐오를 위한 정치, 정책이 실종된 정치. 사실 아직도 사태는 반복되고 있다. 물론 그 시절만큼 심하지는 않다. 저기에 나왔던 인물들 대다수가 정치 이슈가 끝나자마자 여름철의 러브버그마냥 사라졌다. 하지만 다음 대선 때는 어떨까.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금 주류가 될까. 저널은 그 사이 어딘가를 지키고 있을까. 아니 비단 대선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앞으로 발생할 재난 앞에서, 저널은 그 사이 어딘가를 지키고 있을까. 부디 매스미디어의 권력, 즉 많은 독자와 조회수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야망에 그 몸을 던지지 않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필요한 이야기를 적어주기를.


 책에 나오는 재난, 사회 운동들이 내가 한 번씩은 뉴스로 접했던 이야기들이라 슬펐다. 정말 슬프다는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을 만큼 슬펐다. 이들의 죽음이 쉽게 사용되고 쉽게 잊혔다는 사실에 더 슬펐고, 한편으로는 나도 이런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언젠가 과거의 이야기를 잊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이 슬펐다.


 예전에 있었던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가? 같이 술을 마셨던 친구가 죽였다, 죽이지 않았다, 의견이 분분했던 사고인데 유독 그 당시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한강에서 의대생이 죽기 며칠 전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상하역 작업을 하던 비슷한 나이대의 노동자가 죽었다. 물론 의대생 사망 사건 이후 사고자의 아버지가 누가 범인이다, 제발 잡아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꺼내기도 하고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췄기에 더 이슈화되기도 했지만, 둘이 동시에 조명되기 전까지 모든 언론은 오로지 한강의 의대생만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어째서 평택항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일하던 젊은 청년에게 배정된 칸은 기사 한 단락이 전부였을까. 어째서 의대생에게 배정되는 칸은 1면 전부였을까. 군인인 내가 엔진 정비작업을 하는 도중 깔려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나도 기사 한 단락짜리 인생이 될까. 나이 26세 중사, 항공기 엔진 정비작업 중 엔진에 깔려 사망. 이걸로 내 꿈과 삶, 고난과 인생을 모두 표현할 수 있을까. 억울한 그의 죽음에 1면은 아니어도 삶이 조금 더 담기기를 바랐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다. 모든 법원 판결이 끝난 지금도. 아직도 범인을 찾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남은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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