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고 영화관의 미래
2022년 3월의 어느 날, 새로운 비행단에 전속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해미 외진 곳에 있는 비행단, 아무도 오고 싶어 하지 않는 여기는 나쁜 의미로 개미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시내에 가기 위해서는 차를 끌고 삼십 분,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번 오니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는, 말 그대로 격오지 비행단. 모두가 나가고 싶어 하는 그 비행단이 나는 왜 마음에 들었는지, 저녁 공기를 쐬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와 부대를 한 바퀴 걸어서 둘러봤다.
2022년 4월 4일, 지난 주말에 몸이 으슬으슬해 집에서 쉬다가 출근 후 항공의무대대에 가보니 코로나 판정을 받았다. 당장 짐을 싸고 격리 숙소로 이동하라고 한다. 손에 쥐어진 것은 물 두 통과 이불, 핸드폰, 태블릿. 일주일간의 길고도 외로운 격리가 시작되었다.
2022년 4월 6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놀랍게도 감기 기운이 떨어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저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중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나는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모양이었다. 몸도 멀쩡하고 정신도 맑은 상태인데 앞으로 3일간 뭘 해야 할까. 일단 태블릿으로 넷플릭스를 켰다. 생각해 보면 나는 넷플릭스 월정액을 끊어 놓고서는 혼자서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가족들에게 아이디를 공유해 줘서 가족들이 보거나, 여자친구와 집에서 데이트를 할 때 같이 보거나.
2022년 4월 9일, 이렇게 홀로 많은 영화를 봤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영화는 다른 이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 작은 화면이든, 큰 화면이든. 어린 시절 작은 CRT 모니터를 하나 두고 멀리에 누워 형제들과 같이 영화를 봤던 기억. 방학 직전 학교에서 영화 하나를 틀어놓고 수업시간을 때우던 기억. 성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스크린에 영화를 틀어놓고 본 후에 교리교육 대신 영화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 데이트의 단골 코스로 여자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던 기억. 캐러멜 팝콘 라지 사이즈와 제로콜라 라지 사이즈 하나, 사이다 미디엄 사이즈 하나.
코로나가 유행한 후 정부에서는 단체모임 통제를 가장 먼저 시행했다. 5인 이상이 모일 수 있는 사업장은 사실상 폐쇄되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기에는 영화관이 포함되었다. 사실 정부의 입장에서 영화관은 가장 위험한 사업장과 다름없었으리라. 대한민국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그중 엔터 사업은 유독 처참하게 무너졌다. 영화관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코로나가 끝나고 영화관은 표값을 올리는 방법으로, 미소지기를 줄이는 방법으로 살아남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영화관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몇 년 사이에 영화관의 자리를 OTT가 대신하기 시작했으니까.
이 책은 코로나 유행 시기를 보내는 영화인들의 목소리, 그리고 이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62명의 목소리가 담기는 만큼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채롭고, 때로는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때리는 의견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영화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코로나 이후 영화제가 온라인으로 상영을 하는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 진입장벽을 낮추고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호평을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영화제의 출품작을 온라인으로 트는 행위 자체를 매도하기도 한다. 모두가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서 즐기는 것이 아니고 작품이 내는 온전한 소리와 영상을 표현할 수 없는 장소라면 영화 본연의 가치가 깎여나갈 것이기에. 그렇기에 그는 분노하는 것이다.
사실 코로나 이후 영화 시장은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변모했다. 이거 좋은데 왜 안 써? 주위에서 늘 떠들었어도 얼리어답터의 산물처럼만 느껴졌던 넷플릭스, 왓챠와 같은 OTT들은 코로나 이후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극장에서 새로 개봉한 영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넷플릭스에 새로 나온 신작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슈메이커를 전담했던 영화관은 그 자리를 OTT에게 넘겨주고 대신 조금 더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너무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하지 않는 이상 가지 않는 장소, OTT에 나올 가능성이 없는 특별한 영화를 보러 가는 장소, 영화를 최고의 퀄리티로 보고 싶어 하는 마니아들을 위한 장소. 많은 이들이 코로나가 끝나면 예전처럼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아 줄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 영화관은 텅 비는 걸까. 어째서 이와 반대로 그 비싼 용산 아이맥스관은 연일 매진을 하는 걸까.
나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관이라는 장소가 지극히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이지만, 23년 미국작가조합 파업 사건도 있었고 최근 표값에 대한 한 배우의 발언도 있을 정도로 돈이라는 이야기를 빼면 사실상 말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지는 장소이지만,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추억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영화관은 조금 특별하고 비싼 장소였다. 명절이면 TV에서 영화를 틀어주는데 사람 한 명당 돈을 내고, 또 맛있는 팝콘을 먹으려면 표값에 준하는 비용을 내야 하는 장소. 나는 그 시절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돈을 많이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영화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가끔씩 영화관에 가셨다. 아버지와 함께 가는 날이면 한국 영화를, 어머니와 함께 가는 날이면 해외 영화를 보고는 했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본 레거시」, 「베를린」,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날의 수많은 작품들.
영화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것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모두 필름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고 이야기했지만 특유의 잔향으로 은은하게 살아남는 것처럼 영화관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큰 화면이 주는 몰입감과 입체감, 타인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감각,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추억과 기억, 영화가 주는 기억과 더불어 영화를 보러 가는 과정, 그 후의 이야기를 추억으로 예쁘게 감싸주는 영화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전처럼 팽창된 문화시장으로 당장 되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영화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때로는 작은 형태로, 때로는 큰 형태로, 때로는 대중적인 목소리로, 때로는 누군가를 위한 목소리로.
10년 후, 20년 후, 아이가 생긴다면 무얼 하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영화관에 같이 가고 싶다. 팝콘은 라지 사이즈로 캐러멜 맛 절반, 어니언 맛 절반. 제로콜라 라지 사이즈 하나에 제로콜라 미디엄 사이즈 하나를 들고.
후기에서 별개의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일본의 영화감독이나 평론가도 이야기를 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일본과 한국에는 무성영화 시절 변사라는 특이한 포지션이 하나 있었는데 소리가 없는 영화에 소리를 덧씌워주는 특별한 역할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변화하는 시장을 보면서 무성영화시대에서 유성영화시대로 넘어가는 시절을 회상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그 사이에 있었던 변사를 떠올려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리고 더욱이 별개의 이야기를 하나 하면 내가 영화관을 주말마다 드나들던 시절도 연애를 하던 시절이었다. 거의 매주, 함께하는 날이면 주말 이틀에 하루는 영화를 보러 가고는 했다. 그때만큼 영화관을 또 드나들 일이 있을까. 최근에는 달에 한 번가면 많은 수준에 두 달, 세 달, 점점 그 텀이 길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가 뭐였더라. 혼자서는 추억을 만들 수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