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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Feb 12. 2024

기혼자의 민낯. 속끓음에 대하여

사랑을 기반으로 시작되는 어리석은 두 발걸음들


결혼이란

내가 만들지 않은 판에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배우자 손에 이끌려 걸어갔더라도

함께 걸은 걸음의 방향성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함께 지고나가야 한다.

그 속에서의 외로움과 괴로움은 둘 데가 없다.


나를 조금이라도 샘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희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고,

나를 조금도 시샘하지 않으며 완전한 축복을 기원해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를테면 친정엄마에게는,

'내가 행복하게 살지 않아 미안해'라는 생각이 앞서 말하기 주저하게 되며, 나의 우울이 미안해서 말할 수 조차 없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자, 사랑하는 연인인 '배우자'에게는

당신 자신을 부정하고 책망하는 말이 튀어나오게 될까 봐 말할 수 없고,

그가 있는 세상을 온통 부정하는 것 또한 그는 사랑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속이 끓어도 집에서는 배우자가 있으니  울 수 조차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은,

이것을 그에게 알려야 할지 숨겨야 할지부터 고민하며

결국 '집'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기혼자들은 갈 곳이 없어지나 보다.


이 괴로움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 괴로워하는 마음가짐을 희망과 긍정으로 바꾼다?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 계속 마음가짐만 바꾸어보려 했으나, 불안감을 억누르는 것 밖에는 되지 않았다. 억누름은 언젠가는 어디선가 터져 나온다.


둘, 나만 이 판에서 빠져나온다?

-이것은 상황을 해결하는 일이 맞는가? 나는 더 최악의 상황으로 나 자신을 몰아넣는 것은 아닌가?

아. 과거의 나의 선택은 어디서부턴가 완전히 망쳤음을 느낀다.


셋, 내가 내 삶에서 사라진다?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할 일은 아니야.

정신과의 도움을 받을까 잠시 상상해 보지만

이건 마음의 감기가 아니다.

지속적인 외부환경 속에서의 걸음걸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고,

이 모든 일에 균형의 저울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괴로움에 맞먹는 그의 크나큰 사랑이다.


그는 나를 완전하게 사랑한다.

나도 그를 완전하게 사랑한다.


길지 않은 30년의 삶이지만 온 경험으로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얻었음에 반대편에는 이와 같은 무게로 이러한 괴로움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랑이란 게 훗날 세월에 다 증발해 버리는 젊은이들의 한낱 호르몬 생화학작용에 불과하다는 말도 많던데.

이 모든 걸 참아냈는데 훗날 사랑추쪽 모든 게 증발해 버리고 빈 접시만 남아버리면 그땐 어떻게 살지.


아무리 현재 지금 사랑해도 대충 그런 불안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 결혼의 생생한 비극이다.

사랑을 기반으로 시작되는 어리석은 두 발걸음들.


행복하게 두 사람이 꼭 잡고 걸어가며

내려다보는 발끝으로 눈물 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그런 일들.


여보,

당신의 손을 잡고 세상은 봄이야.


여보, 그런데

난 이 여정이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는 가지 않으면 안 될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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