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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pr 13. 2024

인생의 금지어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자신과 가족의 복을 구하는 기도는 아니었지만 아인슈타인의 기도는 늘 간절했다.

나 또한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우주의 숨결을 느끼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항시 일확천금의 헛된 망상을 경계할 것이며,

오직 절제와 성실을 지향하되 타인을 속이지도 타인에게 속임을 당하지도 말 것이며,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면 후회는 비생산적인 감정낭비일 뿐,

차라리 오늘의 삶에 안도하면서 보다 희망찬 내일을 생각하게 하소서.


애당초 일확천금의 요행수 따위를 잘 믿지를 않으니 누군가 고액의 배당금을 준다고 속삭인다면

'댁들이나 많이 드세요?'라고 할 만큼의 내공은 있다.

애당초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이라 죽음 이후의 허망한 생각에 인생을 낭비할 우려도 없다.

애당초 타인을 속일 마음이 없듯이 타인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가는 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복하고 싶지 않은 금지어가 있다.

'내 이럴 줄은 몰랐어!'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와 마주하게 되었을 때 허탈한 표정으로 푸념하듯 뱉는 말이다.

허구한 날 이런 말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면 참으로 짜증 나는 인생이겠지만 인생을 재탕 삼탕으로 살아가는 판탄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닌 바에는 이런 말을 전혀 안 하면서 살아갈 수도 없음이다.

다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웬만해서는 인생의 금지어를 읊조리지 않으려고 입술을 어물뿐이다.


눈앞에 보이는 편견과 아집으로 독단에 빠진다면 필시 꼰대로 낙인찍혀서 세대 간 대화의 문도 닫혀버리기 십상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낡은 꼰대의 꼬리표 대신 조언을 구하고 싶은 의 선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훌륭한 인생이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와 동행하는 깨어있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마치 출제자의 의도를 훤히 꿰뚫고 있는 수험생처럼 빙그레 미소 지으며 출제자가 파놓은 함정을 솎아낼 줄 알아야 하듯이.  

'내 이럴 줄 알았지! ㅋㅋ'


'내 이럴 줄 몰랐어!'가 아니라 '내 이럴 줄 알았지!'을 읊조리려면 우선 당면한 문제의 실체부터 파악할 능력을 갖추어 다.

상황에 부닥쳤을 때 당황하며 허둥댈 것이 아니라 찬물 한 바가지부터 들이켠 뒤 두세 발짝 뒤로 물러나서 차분하게 전체를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코끼리의 다리가 아니라 코끼리의 온전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실체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꼰대의 표상인 좁디좁은 편견에서 벗어나 탁 트인 평정심으로 바라볼 때 그제야 사물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읊조리는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것들뿐만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를 고려하면서 폭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낮은 확률일지라도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전체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 깨어있는 합리주의자!

여타의 다른 생각들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시대와 동행하는 깨어있는 합리주의자이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꼰대의 표상인 기존의 낡고 오래된 편견과 아집에서부터 뛰쳐나와야 한다.

늘 깨어있는 합리주의자로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지구촌의 주류 지식인들과 동행하는 것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듯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5대 일간지를 섭렵하면서 우리 사회의 전체를 바라보려고 중심을 다 잡는다.

5대 일간지에 소개된 세계적인 석학들의 새로 나온 책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주문하여 서너 차례는 정독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일체의 편견 없이, 언제나 맑은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밤 열 시경 숙면에 들기 시작하여 새벽 다섯 시경 가뿐히 일어났을 때의 상쾌한 기분 그대로 온종일 맑은 기운을 유지하고 싶다.

평정심의 유지에 방해가 되는 술이나 약물도 멀리하고 한꺼번에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성급한 마음도 발현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

비과학적인 허망한 생각들은 멀찍이 물리치고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현대과학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다.


생각이 다른 이들과도 두루두루 교류하면서 그렇게 원만하게 잘 지내고 싶다.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회색이라며 비난을 하든지 말든지, 이쪽이 잘하면 이쪽에 저쪽이 잘하면 저쪽에 손뼉 칠 수 있는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

큰돈을 거래할 땐 눈에 쌍심지를 켤지라도 전통시장에서는 가격흥정을 하지 않다는 오래된 부자들처럼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그렇게 넓은 시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정치든, 종교든, 문화규범이든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든 나의 신념과는 별개로 타인의 신념도 존중하는 그렇게 품 넓은 사람이면 좋겠다.


물론 세상이치가 다 그렇듯 예외도 있다.

털 것만큼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 두 가지의 의제에 대해서는 일체의 다른 선택지를 상정하지 않는다.

육신의 죽음 이후 펼쳐질 어쩌고 저쩌고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와 타고난 운명과 관련된 메주왈 고주알 하는 허망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설사 훗날 지옥에서 '내 이럴 줄 몰랐어!'를 읊조리게 된다 하라도 웃으면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와 있던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이 머쓱한 표정으로 내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는 장면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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