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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pr 20. 2024

타고난 유전자와 상속세의 상관관계

어설픈 물리주의자의 좌충우돌기

애당초 누군가에 의해서 인생이 설계되었다는 운명론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물리주의자로서 한 가지 인정하는 것은 있다.

 타고난 유전자와 주어진 환경이 적어도 나의 선택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연히 가족이 되었을 뿐 부모가 나를 선택한 것도,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닌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의 내용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애당초 누구는 금수저를, 또 누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출발지점부터가 다르다.

비단 경제적인 불공정성뿐만 아니라 타고난 유전자에 의한 불공정도 심각하다.

부모를 잘 만나서 건강한 육체와 뛰어난 지능 혹은 예술적, 체육적 재능을 물려받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상쇄할만한 반대급부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태어날 때의 차별상을 불문에 부친 법 앞에서의 평등이란 허울 좋은 법조문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딱히 이를 시정할만한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수능점수를 달리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군 복무하듯이 일정기간 동안 재능기부를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철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수려한 외모에 공부도 엄청 잘하고 성격까지도 좋아서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길동: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조기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공부머리는 없었던지 한량처럼 지내던 중 아버지의 사망으로 공시지가 일천억 원짜리 강남의 빌딩을 상속받았다.


호동: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늘 이들과의 격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살아간다.

 

이 세 아이들 간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불공정하다는 것이 합리적인 사실인가?

세 아이들 간의 불공정성이 성립되려면 자식은 부모의 연장선상으로서가 아니라 별도의 다른 인격체로 볼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자식은 부모의 연장선상인가?

세 아이들 간의 차별상을 우리 사회가 불문에 부치기 위해서는 자식을 부모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부모의 성과물이 곧 자식의 성과물이 될 수 있어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관점은 타고난 유전자라던가 성장과정에서 누렸던 환경적인 요인에 대하여는 불문에 부치려는 태도가 감지된다.

한마디로 부모 잘 만난 그 아이의 타고난 복으로서 자식은 부모의 연장선상이라는 관점을 유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부모 소유의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려고 할 때는 그 태도가 180도로 돌변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취하는 태도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과세시가 30억 원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세율 자체가 달라진다.

30억 원 초과에 해당할 경우 상속재산의 절반인 50%의 요율을 적용하는데 특히 기업의 경우는 15%의 최대주주 할증까지 가산할 수 있어 무려 65%라는 가혹한 세율이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는 33%의 세금을 부과하는 로또 당첨금보다도 훨씬 더한 불로소득으로 간주한다. 


이쯤 되면 결단코 아빠 찬스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우리 사회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겠다.

이 문제는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감히 손댈 수 없었던 대단히 민감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기업의 승계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단연 세계최고의 상속세율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인 정서가 워낙 강력한 탓이다.


호동은 어릴 때부터 일종의 컴플랙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길동보다는 오히려 철수에 대한 좌절감이 더 심했다.

분명히 책과 씨름하는 시간은 철수보다도 두 배나 많았지만 이해력과 기억력에서 뒤처지다 보니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불공정성에 엄청 화가 났지만 타고난 유전자의 격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는 설렁설렁 어렵지 않게 사법고시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3관왕이 되었고 경력관리 차원에서 잠시 판사로 근무하다 지금은 대형 로펌의 잘 나가는 기업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반면에 다섯 번의 낙방 끝에 겨우 세무사가 된 호동은 월급쟁이 세무사로서 여전히 힘든 삶을 살아가던 중 어릴 적 친구 길동의 방문을 받게 된다.

최근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일천억 원 상당의 강남 빌딩을 상속받게 된 길동이 상속세를 신고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빌딩의 절반을 상속세로 납부해야 한다는 호동의 설명에 길동이 받은 충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남도 아닌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어째서 불로소득으로 취급하느냐며 펄쩍 뛰었다.

강남의 빌딩을 물려받은 것은 아버지의 분신인 자신에게로 단순히 소유권의 변동만 있었을 뿐 결단코 불로소득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지금 길동은 마치 자신과 아버지를 동일시하는 듯하다.


“이건 내가 로또에 당첨된 행운과는 그 차원이 다른 문제란 말이야!

아버지가 고생해서 이룩한 부를 자식인 내가 물려받은 건데 절반을 내어놓으라니! 이건 완전히 날강도들이잖아!

뭐 그렇다고 한 푼도 안 내겠다는 것은 아니야!

기분 좋게 납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사회발전기금조로 좀 내어놓으라 하면 모를까

“그래서 기분 좋게 납부할 수 있는 수준이 도대체 얼만데?”

“한 10% 정도면 얼마야? 그래도 100억이나 되잖아!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아버지의 재산을 내가 물려받았는데 솔직히 그 정도도 많지 않냐?”


지금 길동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을 어떻게 불로소득으로 취급할 수 있느냐며 펄쩍 뛰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관점은 한마디로 단호하다.

그래도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천 원짜리의 복권을 매입하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면서 애간장을 태워야 하는가 말이다.


길동이 돌아간 후 호동은 커피머신에서 내린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이키며 얼굴 잔뜩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서 뭐 50%가 많다고? 나 같으면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면서 큰절이라도 하겠구먼,

솔직히 너도 아버지 잘 만나서 땡잡은 거는 맞잖아!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욱 공정해지려면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율을 훨씬 더 높여야 돼! 한 80% 정도는 돼야 되지 않나?’


이때 호동은 불현듯 철수가 떠올랐다.

길동과 마찬가지로 애당초 철수의 정당한 노력으로 취득한 우수한 유전자가 아닐진대 철수의 불로소득이 궁금했던 것이다.

헌법정신에 부합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철수에게도 불로이익을 환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피씩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간 호동은 오늘따라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며 유전공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부모의 유전자를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그대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중간단계를 거쳐서 전달되는 과정이다.

국립유전자과학연구소에서 완벽하게 세팅한 1등급 유전자를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제공한다면 헌법정신에 반하는 불공정성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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