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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pr 01. 2024

떴다! 삼일특공대 6

한반도실행계획 166 최종 편

영문을 모른 채 자리에 앉아 있던 주지사들은 정 위원장의 이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십억 달러라는 거금의 존재몰랐거니와 이 시점에서 이 돈을 공개적으로 집행한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정 위원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던 말을 계속했다.

“당초는 인민들에게 집단농장과 국유기업을 배분할 때 함께 집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더랬지, 

내 안사람 말이 그렇게 되면 인민들의 씀씀이가 헤퍼져서 금방 바닥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인민들에게 가장 요긴한 때를 기다렸던 것인데 당신들도 알다시피 그 후로도 여러 일들이 계속해서 터지지 않았갔어?

그런 이유로 늦어졌는데 그래도 너무 많이 늦지는 않았지?”


정 위원장은 농담까지 섞어가며 태연하게 말했지만 사실 이 돈은 노동당 39호실에서 관리해 온 일종의 통치자금이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던 의제를 지금 정 위원장이 느닷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한편 지역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주지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큰돈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그 어떤 논쟁과 다툼도 허용할 의사가 없었고 이미 그 사용처는 결정된 상태였다.

주지사들에게는 통보하는 형식을 취하며 평소의 그답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현재를 기준으로 다섯 개 자치주와 광개토대왕자치주로 이전하여 거주하는 인민들까지 과거 우리 공화국 출신의 모든 인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시오!

남녀노소를 구분치 말고 한 살 먹은 갓난아이나 백 살 먹은 노인네나 똑같이 공평하게 지급하란 말이오!

단 일시불로 한꺼번에 지급을 하던?

연금형식으로 길게 나누어서 지급을 하던?

고런 것은 주정부와 인민들이 잘 협의해서 원만하게 처리하면 될 문제겠고 그렇게들 처리하면 일들 없갔지!”


대부분의 주지사들은 의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정 위원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평양특별시 주지사의 생각은 달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벅찬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당초 이 자금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인민들은 단연코 아무도 없었습니다,

솔직히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면 자금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백이면 백 아무도 몰랐을 게 분명 하단 말입니다,

감히 어느 누가 위원장님의 통치자금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절반도 아니고 몽땅 거리 다 내어 주신다면 앞으로 위원장님 내외분은 또 얼마나 곤란을 겪으시겠습니까?

인민들에게 발표하시기에 앞서 저희들과 좀 더 협의를 진행하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 위원장이 오른손을 가로저으며 단호한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그 문제는 그냥 내 뜻대로 하는 걸로 하지!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톡 까놓고 말하갔는데 우리 조선중앙은행의 은행원 일꾼들이 그동안 이자놀이 사업을 제법 잘했더구먼!

생각지도 않은 이자수입이란 게 좀 생기지 않았갔어!

우린 고것만 가지고도 충분하니까 우리 걱정은 안 해도 돼!

지난 시기 나와 인연을 맺었던 우리 인민들에게 내가 정말로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당신들이 뒤처리를 잘 좀 부탁하오!

그래서 우리 인민들의 생활향상에 다문 얼마라도 도움이 된다면 난 것으로 족하니까…”

말의 끝 부분에서는 정 위원장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검정색 뿔테 안경 속에 가린 정 위원장의 눈가에서도 촉촉한 물기가 묻어났다.


자리를 함께한 일행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손수건을 꺼내 들고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기에 바빴다.

평양특별시 주지사의 말처럼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오십억 달러의 행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 정 위원장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 돈이 여태 남아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정 위원장은 지금 출국에 앞서 그가 가진 마지막 보따리까지 풀어헤쳐서 아낌없이 내어 놓았다.

옆 자리에 앉은 그의 부인이 해맑은 표정으로 정 위원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 우리 위원장님, 최고로 멋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나의 자랑스러운 남편이 되어주셔서”   


며칠 후 이제는 정말로 홀가분한 심정으로 정 위원장 내외가 평양순안국제공항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관사까지 마중 나온 대고려연방 주재 쿠바대사와 함께 연방대통령의 전용기에 터벅터벅 올랐다.

정 위원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일체의 사실을 극비에 부친 채 조용히 대고려연방을 떠나고 있었다.

비행기의 트랩을 다 올라선 정 위원장 부부가 차마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것이 안정된 대고려연방의 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모든 것들을 쾌히 다 내려놓음으로써 조국의 통일은 성사되었지만 그것으로는 여전히 부족했다.

대고려연방의 안정을 위해서 또다시 더 내려놓아야 했고 그래서 선택한 길이 조국을 떠나는 길이었다.

정 위원장인들 왜 가슴속에 남겨진 회한이 없었을까 마는 부부의 가슴에 고이 안겨진 항아리를 어루만지면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했다.

비록 몸은 쿠바의 어느 섬에 있을지라도 두 항아리 속에 담아 가는 백두산의 장군봉과 천지의 기운을 느끼면서 마음만은 늘 백두산과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중이다.

적당하게 불어오는 상쾌한 봄바람이 정 위원장 내외의 머리칼을 알맞게 날렸다.

딱히 환송 나온 많은 인파는 없었지만 정숙과 네 명의 국정자문위원들 그리고 곽 사령관과 진숙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2035년 7월 실시된 제2회 연방의회의원 총선거의 결과는 놀라웠다.

2년 전 진보당과 합당한 이후 차근차근 자유정치 시스템에 적응해 오던 고려노동당이 제1당으로 약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 위원장이 쿠바로 떠난 후 북쪽의 자치주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남쪽의 다른 자치주에서도 정 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탓이다.

특히 이삼십 대의 청년세대를 집중 공략한 선거 전략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남북합작의 신생정당은 일약 제1당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돌풍을 일으켰던 일등공신은 단연 청치신인들을 과감하게 공천했던 당대표 정숙이었다.

정 위원장의 여동생이라는 꼬리표는 이번 선거에서는 결코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북쪽에서도 정 위원장이라는 뒷배가 홀연히 사라진 정숙으로서는 오롯이 그녀 스스로 자립할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조선노동당은 명맥이나 유지하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정숙을 당수로 추대했지만 정숙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비록 정 위원장이라는 막강한 배경 덕분이었지만 십 수년간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된 중견 정치인이었다.


정숙이 뚝심으로 밀어붙인 과제는 민 대통령이 제안했던 남쪽 진보당과의 합당작업이었다.

물론 당시의 노동당 원로들은 거세게 저항했고 결국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주었다.

늙은 수구 꼰대들이 기존의 노동당 간판을 끌어안아준 덕분에 정숙은 젊은 당원들을 이끌고 새로운 당을 창당할 수 있었다.

이때 합류한 남쪽의 진보당에는 실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 틈새에 경은도 끼어있었다.


고려노동당이 제1당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제2당인 통합국민당보다 단 한 석이 많았을 뿐이고 민 대통령이 소속된 우리고려당과는 겨우 세 석이 앞섰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고려노동당 못지않은 이변의 주인공은 단연 연방대통령이 이끌었던 무소속연대였다.

대부분 무소속이던 제1대 연방의원들이 연방대통령을 중심으로 기존의 주류정당에 대응하는 자구책을 마련했는데 그것이 바로 ‘위대한 대고려 정치연대’라는 무소속연대였다.

지난 삼일절의 미친개 퇴치작전 이후 치솟은 연방대통령의 인기를 자산으로 뭉친 정치결사체로서 이번 총선에서 34석을 얻는 예상 밖의 선전을 기록했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연정에 쏠렸다.

의원내각제하에서 단독으로 과반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었으니 타당과의 정책연합으로 공동정부를 구성해야 했다.

이때 윤 소장이 또다시 성북동의 민 대통령 자택을 찾았고 삼일특공대가 작성한 마지막 보고서라면서 삼 페이지 분량의 초간단 보고서를 내어 밀었다.

“대통령님! 이번 연정이야말로 우리 연방의 미래를 위해서 정말로 중요합니다!

북쪽의 인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뒤는 말 안 해도 다 알아듣겠어요,

그런데 전에도 마지막 보고서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럴 리가요, 이번이 진짜로 마지막 보고서입니다!”

“허허허허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 모두가 우리 대고려연방이 잘되고자 하는 일인걸요,

다음번에도 마지막 보고서를 또 들고 오세요!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쿠바 코히마르 인근의 어느 조용한 외딴섬에서 정 위원장이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훨씬 건강한 모습으로 제법 익숙한 삽질을 하고 있다.

목에 걸친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을 때 부인이 마실 물과 스마트폰을 들고 왔다.

“위원장님 이것 보세요! 우리 정숙아가씨 기사가 났어요!”

기사를 읽던 정 위원장이 아무 말 없이 부인이 건네주는 물 컵을 벌컥벌컥 깨끗이 비웠다.

물 컵을 부인에게 다시 건네주면서 정 위원장이 하는 말이다.  

“통일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아요!

서로 먼저 양보하고 타협하고 내려놓고 합의할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법이거든!”


스마트폰의 화면에 뜬 기사의 제목은

‘연립정부의 차기 총리로 선출된 정숙 고려노동당 대표’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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