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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l 19. 2024

천연농약 이만하면 쓸만하네!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0.1mm 이하의 작은 생명체를 미생물이라고 한다.

농업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미생물로는 광합성균과 효모균 유산균 GCM이 있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때때로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생명의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지구촌의 같은 생명체로써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매주 농업기술센터에서 공급받아오는 네 종류의 미생물들을 골고루 안분하여 천연액비통 안으로 부어주면 왕성한 먹이활동이 시작된다.

미생물의 먹이로는 주로 우리 농장에서 생산되는 엽채류의 부산물이나 사과 배 감 등 낙과한 과일종류들인데 며칠간격으로 한 번씩 보충하여 주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일천리터 천연액비통의 뚜껑을 여는 순간 확 풍겨오는 특유의 구수한 향내와 함께 이 놈들의 왕성한 식욕에 놀라곤 한다.

며칠 전 넣어준 그 많은 부산물을 서서히 분해시키는 놀라운 식탐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묘한 흥분으로 다가온다.

마치 애완동물을 키우 듯 미생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어떤 마력을 느낄 수 있다.


공급받아온 미생물을 곧장 토양이나 농작물에 살포하지 않고 일단 액비통 안으로 직행하는 것은 천연액비의 효능을 배가시키려는 의도였다.

어디서 배운 것은 아니지만 막연히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시도해 본 것이 어느덧 몇 해가 지났고 경험에 의하여 그 효능을 직접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천연액비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말할 수 있다.

블루베리 이야기인데 확실히 남다른 질감이며 크기며 당도며 작년부터 차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생산농가에서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밀려드는 주문에 보통 곤란한 지경이 아니다.

한번 맛을 본 지인들이 유독 우리 농장의 블루베리만 찾게 되니 어쨌든 생산농가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이라 할 수 있지만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여러모로 미안할 따름이다.


비결이라면 5월부터 충분히 숙성시킨 천연액비를 거의 매일아침 블루베리 화분으로 관수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다.

6월 중순부터 한 달 가까이 진행되는 블루베리 수확 때마다 한번 물렸다 하면 '으아∼악!' 비명소리를 지를 만큼 따끔하게 아픈 쐐기벌레에 관한 소식이다.

예년 같았으면 무지막지한 쐐기벌레들 때문에 무더위에도 겹겹으로 끼워 입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지만 올해는 가벼운 복장으로 편안하게 수확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많던 쐐기벌레의 개체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어 한 차례도 물리지 않는 대반전이 일어났다.


물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운 좋게 쐐기벌레의 극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동안은 껍질채 먹는 블루베리의 특성상 차마 화학농약을 사용할 수 없어 쐐기벌레에 대해서는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실제로 금년 들어서는 일체의 화학농약대신 자가제조한 천연농약으로만 방제를 하고 있는데 인체에 무해한 천연성분이다 보니 블루베리 하우스에서도 한두 차례 방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쐐기벌레뿐만 아니라 장마철임에도 고추밭에서는 탄저병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고, 해마다 값비싼 옥신디아진계열의 농약을 살포함으로써 겨우 확산을 막았던 나방유충에 의한 피해도 슬그머니 정리가 된 듯하다.


새해부터 결심한 바가 있어 화학농약 대신 천연농약으로 갈아타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은 순전히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건강 때문이었다.

고독성의 화학농약을 칠 때마다 왜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내 몸을 해쳐야 되는지, 또 내 가족의 먹거리를 대상으로 이런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는 한심한 생각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한번 결심이 서자 지체하지 않고 돌직구하는 급한 성격답게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친환경농업을 실행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대용량의 연수기 제작이었고 '자연을 닮은 사람들'(자닮)의 교육동영상을 보면서 차츰 그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기구의 연수능력을 고려한다면 통과하는 물이 양이온교환수지를 최대한 길게 지나가도록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원통형으로 제작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간파하고 2m 길이의 대용량 연수기를 고민했다.

직접 화덕을 만들었던 얼랑 뚱땅 손재주 덕분에 어렵사리 완성할 수 있었는데 채 십여 분 만에 연수 500L를 생산하는 신통방통한 연수능력을 자랑한다.


연수기가 확보되자 자닮의 동영상을 보면서 이번에는 자닮오일과 자닮유황 100L씩을 자가제조했다.

자닮오일은 살충제와 전착제의 용도로, 자닮유황은 살균제의 용도로 사용하는 천연농약제이다.

거진 일 년 치의 천연농약을 비축해 두었다고 생각하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럴 때 적용되는 말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천연약제를 살포할 때도 당연히 연수된 물을 사용하는데 유별나게 많은 거품을 경험하면서 품질 좋은 연수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3월 초에 실시한 동계방제 때는 물 500L에  자닮오일 10L와 자닮유황 5L를 혼합하여 다소 강한 농도로 살포했고,  이후부터는 자닮유황의 함유량을 1.5L까지 낮추어서 지금까지 모두 여섯 차례를 추가 살포하였다.

아직까지는 함유량에 대한 확신이 없어 혹시 약해를 입지는 않았는지 농작물의 상태와 약효를 비교관찰하면서 적절한 용량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일 년 치를 예상했던 자닮오일의 재고량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이자 이번에는 아예 거금 이십만 원을 투자하여 자닮오일 200L를 만들 수 있는 원재료를 공동구매하였다.

택배로 전달받은 자닮오일의 원재료는 가성가리와 카놀라유 딱 두 종류인데 이 두 원료를 자닮의 방식대로 혼합하여 뚝딱 일 만에 품질 좋은 천연 살충제를 자가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 천연농약을 만들다 보니 이제는 자닮의 동영상을 보지 않고서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자닮유황은 이미 몇 년 치의 재고물량이 보관되어 있어 앞으로도 상당기간 농약걱정은 없을 듯하다.


이제 겨우 한해의 상반기를 결산하는 일천한 경험이지만 중간보고차원에서 결산해 보자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결과치고는 그럭저럭 만족하는 편이다.

두 약제를 대상으로 서로 깐깐하게 비교평가보더라도 확실히 즉각적인 효능면에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은근히 효과가 나타나는 천연농약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결론적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주고 싶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실제로는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할 수 는 것은 신속한 약효 말고도 따져봐야 할 여러 상황들도 함께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화학농약을 살포할 때와 천연농약을 살포할 때의 기분자체가 엄청 다르다는 사실이다.

화학농약을 살포할 때는 마지못해서 해야 하는 죽을 맛이라면 천연농약을 살포할 때는 건강한 약제를 살포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일종의 재미난 놀이가 되어버린다.

천연농약을 살포하는 사람건강에는 아무런 염려가 없으니 당연히 생산된 농산물을 먹거리로 먹는 들의 건강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장을 자신들의 생활 근거지로 살아가는 벌 지렁이 개구리 새들을 비롯한 여러 다양한 생명체들의 입장에서도 실제로 이 문제는 생사를 가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화학농약을 구입하는 비용과 천연농약을 자가제조할 때 투입되는 비용을 따져보면 몇십 배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여 분석해 본다면 천연농약을 사용함으로써 일석삼조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이상은 말이 필요 없는 쾌도난마식의 명쾌한 결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농산물 인증표시를 한답시고 농장입구에다 뭘 갖다 붙이는 야단법석까지는 떨 생각이 없다.

시장에서 벌레 먹은 농산물을 싫어하는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화학농약을 살포할 수밖에 없는 이웃농민들의 처지를 모르는바 아니기에 거저 조용히 실천할 따름이다.


애당초 유기농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도 없이 무작정 화학농약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때는 그 효능에 대한 확신보다는 의미 있는 도전을 한다는 설렘으로 부담 없이 가볍게 시작한 도전이었다.

그러다 차츰 천연농약의 효능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이제는 주변에도 권장하는 유기농 농업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는 실정이다.

소심한 성격임에도 이런 상황자체가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지구촌을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의 본성 같다.



다음번의 도전종목도 정해졌다.

백두옹 삶은 물을 확보하여 강력한 천연살충제를 제조해 볼 생각이다.

씨앗을 발아시켜서 할미꽃의 모종을 얻으려던 1차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구입한 씨앗의 설명서에 표시된 대로 보름동안 냉동실과 냉장실을 옮겨 다니는 번잡스러운 과정을 거쳤음에도 웬걸 몇 달이 지나도록 발아할 생각이 없다는 듯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할미꽃의 모종을 구입하여 육묘장에서 지극 정성으로 키우고 있다.


이런 과정이 재미있다는 것은 이순에 이른 나의 인생도 결코 무료하지 않다는 뜻일 터,

앞으로도 쭈욱 미생물 키우는 재미에 빠져있을 것 같고 천연액비와 천연농약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친환경 유기농 생활을 계속 향유해 나갈 것 같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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