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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 Apr 13. 2021

왜 이탈리아어를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다중언어 내지는 Polyglot의 허구에 대하여

본인을 언어천재로 소개하는 사람들 중에 이탈리아어는 기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에서 배우기 가장 쉬운 언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국내든 해외든 스스로 다중언어 구사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탈리아는 그저 씹기 쉬운 껌 정도로 생각되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언어라는 것은 여러 지층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거대한 산과 같은 것이다. 원어민처럼 유창한 게 말할 수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 언어를 다 안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이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언어는 인류학이다. 인간의 문화와 역사가 조금씩 쌓여 새로운 새로운 텍스쳐를 구성한다. 그렇기에 함부로 나는 다중 언어자이고 여러 언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아는 것과 말을 하는 것은 다르다


말을 그래도 한마디라도 해서 현지인이 알아듣는 것과 아예 말도 못 꺼내는 것은 다르고, 말을 해서 현지인이 알아듣는 것과 그 언어를 안다는 것은 다르다. 몇 마디 한다고 그 언어를 다 알 것이면 많은 사람들이 몽마르트르 언덕에 새겨진 각국 언어로 된 '사랑해'라는 표현을 다 안다고 그 나라 언어를 다 할 줄 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래도 수준이 높다? 수준이 높고 낮은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언어를 안다는 것은 너무 겁 없는 표현이다. 모국어도 잘 모르는데 어찌 외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랑의 벽


문화적 사례들


내가 이탈리아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할 수 있다고 "Cospargersi il capo di cenere"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과 약간 비슷한 의미로 쓰는 "andare a Canossa"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말들은 뜻을 해석해보면 어려운 말은 아니다.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다"와 "카노싸에 간다"는 말을 직역 직해하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기독교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탈리아에서 이러한 말이 "속죄하다"를 뜻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비슷한 어휘인 "Spargersi"를 쓰지 않고 "Cospargesri"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리 자신이 다중언어 구사자라고 주장한들 알 수 있을까? 뉘앙스와 느낌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가 그 말의 뜻을 아느냐 모르냐의 차원이 아니다. 따라서 뜻을 안다고 그 말을 안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Andare a Canossa


이탈리아에 Gialli라는 말이 있다. 노란 것들이라는 뜻인데, 유튜브 등에서 우스꽝스러운 흉내를 내며 자신이 원어민처럼 이탈리아어를 구사한다는 사람 중에 아는 이 뜻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Gialli, 내지는 추리소설


이탈리아어에서 Gialli는 추리소설을 뜻하고, 이탈리아 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장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Gialli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백에 백은 추리소설을 생각한다. 1929년 이탈리아의 Mondadori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추리소설책을 노란 표지에 실어서 출간하였는데, 그때부터 이탈리아에서는 추리소설을 Gialli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탈리아어로 죽마고우는 무엇이라고 표현할까? 엉덩이와 셔츠(Culo e Camicia)라고 이야기하면 믿을 것인가?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안다는 이들도 둘의 뜻을 알지만 그게 왜 친한 친구가 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엉덩이와 셔츠


사실 Culo e Camicia는 이탈리아 인문학의 또 다른 대가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에 기인한다. 보카치오가 살던 당시에는 속옷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셔츠가 속옷 내지 팬티역할까지 대신하였다고 한다. 셔츠와 엉덩이가 항상 붙어있다 보니 보카치오는 친한 친구, 허물없이 부끄러움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엉덩이와 셔츠라고 표현한 것이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왜 이탈리아어 천재들은 넘쳐나는 것일까?


답은 넘쳐나지도 않고, 그들이 천재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를 잘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그런 쉬운 잣대로 평가하며 내가 식당에서 Bistecca alla fiorentina를 2kg 주문할 수 있다고 언어천재가 되는 것인가? 우스꽝스러운 손짓을 흉내 내면서 목소리만 높여 "Pizza! Pasta! Espresso!"라고 소리 지르면 이탈리아어 천재가 되는 것인가?


이 이미지의 원 뜻은 What do you want from me (Che cosa vuoi)?이다


위의 손짓을 흉내 내며 우스꽝 소리를 내면서 이탈리아어를 마스터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농담이길 바란다. 위의 손짓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써서는 안 되는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너 나한테 도대체 뭘 원하는데?"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쓴다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모르겠지만 처음 만난 이와의 대화를 이렇게 시작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래도 예외가 있지 않을까?


있다. 스페인어는 확실히 이탈리아어와 비슷하다 보니 스페인 사람들은 이탈리아어를 매우 빠르게 배우고, 이탈리아 사람들도 스페인어를 빠른 속도로 습득한다. 언어를 '발화'하는 관점에서는 두 언어의 유사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원어민에 가깝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거짓 짝(Burro 버터 - 당나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거의 사투리 수준의 차이고 어휘가 약간 다른 것 빼면 문법 구성이나 어휘의 많은 부분에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습득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에는 남미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탈리아로 온 사람들이 많다. 언어적 유사성으로 빠르게 이탈리아에 정착하고 베이비시터나 등하교 도우미, 건물 관리인 등 많은 궂은일들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2세는 이탈리아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종종 관찰하게 된다.


언어를 아는 것,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나 겸손할 줄 아는 것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을 실수할 까 두려워하는 것이라 한다. 맞는 말이다. 어차피 우리는 외국인이고 그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가능성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 나라 언어를 알아듣게 되었을 때나 그 언어를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잰 체 하기 위해서 아는 척하는 경우가 있게 되는 것 같다. 이 정도는 애교인데, 공식자리에서 겁도 없이 나는 몇 개 국어 마스터했다,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언어가 몇 개다, 이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중을 쉽게 현혹하고 그릇된 환상을 심어놓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언어천재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어를 하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봤다. 딱 영어 직독직해 수준의 이탈리아어 발화였고 억양이나 발음도 딱히 이탈리아스럽지도 않았다.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다른 점은 추후에 써보기로 하겠다.


언어천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정치의 천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논리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설득하는 정치라는 과정에 어떻게 천재가 존재하는가? 마찬가지로 몇 마디 인사말과 식사 주문할 수 있다고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담는 거대한 그릇인 그 언어를 어찌 쉽게 깨우치고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처럼 이미 2천 년 전에 문명화된 유럽 지역 대부분을 지배하고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여 문화적인 다양성을 통합한 경험이 있는 나라와 라틴어를 받아들여 그 수많은 다양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탈리아어를 어찌 쉽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800년대에 밀라노 사람들은 먹지도 않았던 나폴리 음식인 피자를 밀라노 사람들에게 "피자~! 피자~!"라며 소리 지르며 나도 이탈리아어 할 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용감한 행위인가.


이탈리아어뿐만이 아니라 영어를 포함한 많은 언어는 절대 정복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30분 만에, 세 달 만에 끝나는 언어는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을 6개월 만에 정복하는 언어천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정복하기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자취와 흔적,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어천재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오직 약간 더 효율적인 공부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공부방법이 좀 더 효율적이라고 그것이 언어천재를 만들지도 않는다. 언어천재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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