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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 Mar 02. 2021

Comprehensible Input?

이해 가능한 의미 학습을 통한 언어 습득에 대해서

최근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언어 학습 방식이 CI, 즉 Comprehensible Input이라는 학습 방식이다. 이 학습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탈리아어는 사실 배우려는 사람들이 적은 언어다. 대부분은 성악을 전공하는 분들이나 패션, 예술 쪽 유학생들이 주로 공부하는 언어다 보니, 다양한 유학생들이 포진해 있는 프랑스에 비해 공부하려는 수요도 적은 게 사실이다.


프랑스 유학생들 면면을 잘 모르지만, 분야는 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철학, 서양사, 심지어는 경영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유학하고 있다. 프랑스라는 나라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대기업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경영학을 배울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되는 나라라 생각한다. 다만 이탈리아는 그러한 대기업들이 많지 않고 회계학이라는 것을 발명해낸 나라임에도 경제는 중소기업 위주로 운영된다.


여하튼 이탈리아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매우 적은 현실이다 보니 적합한 교재를 찾는 일도, 좋은 학습법이나 선생님을 구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을 할 줄 안다고 모두가 선생님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참 나쁜 '한국어' 선생이다. 내가 가진 한국어 지식이 베네치아 대학교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학생보다 미천했구나 싶을 때가 있었다.


시중에 영어에 대한 온갖 학습법이 나와있고, Comprehensible Input에 관련된 다양한 교재도 출간되어 있다.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 프랑스어도 약간 부족하지만 이탈리아어에 비해서는 다양한 교재와 학습법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탈리아어는? 쉽게 말을 못 하겠다.


아예 처음 배우는 언어라면 도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쉽고 빠르게 습득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런 방법은 없다이다. 그런 방법이 가능한 언어가 과연 지구 상에 존재하는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6개월 만에 원어민 수준에 도달하여 필요한 공문서도 해당 언어로 격식을 갖추어 척척 발송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자신이 20개 국어, 30개 국어, 180개 국어를 한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것은 생존에 필요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 결코 그 언어를 완벽히 습득했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이탈리아어처럼 오랜 기간을 걸쳐 문화와 역사가 그 안에 스며든 언어는 도저히 쉽게 습득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Bruciare le tappe라는 말이 있는데, tappe는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단어다. 이 단어는 장거리 사이클 경기(Giro D'Italia)나 자동차 경주에서 쉬어가는 지점을 뜻하는데 그런 쉬어가는 지점을 불태운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이 말 뜻은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성급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 다음날 결혼하는 그런 상황을 두고 우리는 Bruciare le tappe라고 표현한다. 그 사회의 문화적 요소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언어가 쓰여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언어 실력은 영혼 없는 구글 번역기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Comprehensible Input의 방식으로 언어를 가르칠 때, 선생님은 그림이나 행동 등으로 해당 어휘의 느낌과 의미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단어 자체가 매우 복잡한 추상 동사라면? 추상 동사를 어떻게 몸짓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적확한 해답을 내놓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에 rendere 동사는 어디에 두다, 놓다는 의미이다. 영어에서 rendering은 건축의 구조를 그려보는 행위로 많이 표현되는데, 이 rendere 동사가 사용되는 범위가 매우 넓고 의미도 제각각으로 몸짓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rendersi conto라는 말이 있다. rendere 동사에 재귀형 si를 붙이고 뒤에 셈, 몫을 뜻하는 conto를 붙였다. 스스로 몫을 두다? 이것을 어떻게 몸짓으로 표현하지? 다만 해당 어휘의 뜻은 이해하다, 알아차리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어에서 정말 많이 쓰는 표현이다. 내 머릿속에 중요함을 두었으니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 생각했지만 이것을 어떻게 Comprehensible Input의 방식으로 설명할 것인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교재가 부족하고, 이런 추상 동사의 난해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난 한국어-이탈리아어 사전을 찾아보게 되었다. 많은 언어 교사들이 영한사전을 폄하하고 심지어는 저주하며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책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헝가리의 전설적인 통역사 '롬브 커토'는 언어 공부를 시작할 때 사전을 하나 구해 한번 쭉 살펴본다고 한다. 나도 한-이 사전을 보면서 요즘 '동사 찾기'를 하고 있다. 그냥 사전에서 동사를 보면 밑줄 치고 대략 무슨 뜻인지만 읽고 넘어가는 것이다.


'동사 찾기'는 어린이용 외국어 이야기책과 함께 하면 좋다. 참 신기한 게 동사 찾기를 한번 하고 어린이책을 읽으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내가 언뜻 봤던 동사들이 하나둘씩 반갑게 나를 맞는다. 영어처럼 동사 하나하나 다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좋은 교재가 없는 이탈리아어인 만큼, 특히나 관용어가 고도로 발달한 언어이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한-이 사전을 통해 어휘력을 높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Comprehensible Input은 이해 가능한 의미가 소리든 글자든 머릿속에서 이해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해가 어려운 소리는 소음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맞는 소리다. 이해되지 않는 외국어를 열심히 듣고 있으면 졸리기만 할 뿐이지 학습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은 고통스러워도 팟캐스트를 일단 5분짜리, 10분짜리 들어보고 아는 어휘 찾기를 한다는 마음으로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읽기도 매우 중요하지만 소리를 자주 듣고 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글에 쓰여있는 어휘들은 소리로 발화되기 전까지는 절대 그 소리가 어떤지 알 수 없다. 사과맛을 아무리 분석해도 한입 베어 물지 않으면 사과맛을 전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어를 하면서 그저 경박하게 끝에서 두 번째만 올리면 다 이탈리아어 발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소리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입장에서 이탈리아어는 명량한 느낌이 있지만 그리 경박한 느낌의 언어는 아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퍼 마리오처럼 이탈리아어를 하지도 않는다. 방송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씨가 한국말을 과장된 느낌으로 말해서 그런지 이탈리아어도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발음으로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크리스티나씨의 억양이 좀 하이톤인 것을 제외하면 당연한 소리지만 그녀의 이탈리아어는 평범한 수준이다.


소리를 공부하지 않으면 결국 이탈리아 슈퍼마켓에서 "Sacchetti?" (봉투?)라고 물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헤매게 된다. Sacchetto를 열심히 봉투라고 끄적이며 암기했어도 실제로 들어보면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한 소리와 다르기 때문에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면 Youtube나 Netflix 등을 통해서 최대한 이탈리아어로 된 영상 등을 통해 소리를 익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또는 교재에 음원파일이 있는지 꼭 확인하고 음원파일을 토대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법은 Comprehensible Input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문법은 자동으로 습득되기 때문에 따로 공부하는 것은 지루하기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외국인들도 한국어 문법에 매달리는 외국인들의 경우 한국어 종결어미를 잘 선택하지 못하는 반면, 문법과 상관없이 공부한 외국인들은 한국어 종결어미를 무의식적으로 잘 선택해서 발화한다.


다만 이탈리아어는 그래도 동사 변화형에 대해서 조금은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탈리아어는 생각보다 논리적인 언어다. 예외는 있지만 동사 변화형이 어떤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그 규칙을 조금은 학습해두는 것이 언어 자체를 이해함에 있어서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어는 주어를 생략한다. 동사의 변화가 주어를 논리적으로 내포하고 있어서 주어를 생략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어와 다르게 강조를 위해서 말을 다 하고 마지막에 주어를 넣어서 강조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어의 You are는 이탈리아어로 Sei tu가 된다.


어디에 가다는 동사인 Andare 동사가 있다면, 가리발디는 1870년에 어디에 갔다 에서 갔다를 표현하는 방식과 내가 어제 서점에 갔다에 andare 동사는 변화형이 매우 상이하다. 첫 번째 가다 변화는 andò가 되고 두 번째는 sono andato가 된다. 영어처럼 변화형이 적은 언어가 아니고, 우리나라처럼 종결어미의 변화가 뉘앙스에 따라서 변화무쌍한 언어가 아니라 정해진 방식대로 변화하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글에서 갑작스레 원 과거(먼 과거 내지는 역사적 과거)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학습방법이 대체로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영어처럼 어린 시절부터 배경지식을 오래 동안 쌓아간 언어는 6개월, 1년에 완벽히 한다는 이야길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경지식 자체가 없고 아예 처음 시작하는 언어라면 사실 최소 3~4년은 잡고 공부해야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된다고 본다.


Comprehensible Input의 가장 좋은 방식은 원어민 교사가 24시간 같이 생활하며 하나하나 아기에게 말 가르치듯이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상황은 불가능하다. 현실을 무시하면서 학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언어 공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현실에서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재미있게 지속적으로 배우는 방법을 찾느냐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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