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단우 Sep 23. 2022

내가 원해서 언더독이 된 건 아니야.

작가가 됐더니 망했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면 "있어 보이는"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했다.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경쾌하게 두드리는 그런 삶을.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시때때로 쓰고픈 글을 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카페에 가는 것은 콜로세움에 가는 것이었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떨어진 당을 충전해 HP를 채우는 것이었으며, 노트북을 두드릴 때마다 스트레스가 한 가닥씩 늘어갔으며,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글을 워라밸 없이 써 나간다는 것을 의미할 줄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풍요로운 현실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글을 읽거나 책을 사주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합니다"라는 말 뿐이었다. 말뿐인 감사에 지친 지인들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잔고가 텅 비다 못해 빚을 메꾸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입맛이 줄어들었다. 글을 쓴 뒤 살이 쭉쭉 빠진다. 나는 더 잘 쓰고 싶고 그걸로 먹고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나를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밥을 먹을 때마다 내 안의 또다른 자아가 외친다. "그렇게 써놓고도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냐?"고 말이다. 어찌보면 나는 자신을 매우 속물적인 작가로 만들어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것에만 혈안이 된 글을 쓰는 작가. 그런데도 여기에는 다 속사정이란 게 있다.


첫 작품인 <사모님! 청소하러 왔습니다>는 카톡으로 해고된 경력단절녀의 신명나는 고생 스토리로 대중들에게 어필되었다. 기획, 원고집필, 퇴고, 편집, 마케팅, 배본계약, 유통관리, 입고 등 다양한 분야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 어설픈 지점도 컸고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했다. 대체로 지인들이 구매해주고 입소문을 낸 덕분에 여러 갈래로 책이 퍼져나갔다. 어쩔 때는 방송에서 낭독이 되거나 저자로서 직접 초청받아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책의 성공과 내 삶의 질은 반비례했다. 보통 대중들은 SNS를 보고 작가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소위 "잘 나간다"라고들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오 이 작가님이 이렇게 잘 나갈 줄이야.'라고 생각하며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응원의 댓글을 달았으니까. 그것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주고, 그분의 활동범위를 넓혀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그런가하면 나는 자꾸만 낙하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직접 제작하고 생산하는 독립출판물의 경우, 생각지도 않은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데 예컨대 책방에 입고할 때 발생하는 배송비 같은 것들이다. 처음에라야 첫 책이 나오니까 기분도 좋고, 신기하기도 해서 신명나게 카드를 긁었지만 그것들이 자꾸자꾸 쌓이다보니 마치 카드빚 스노우볼 효과를 방불케 한다. 이런 와중에 파본이 생기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인쇄비로 투자한 카드빚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입고된 책방에서는 내 책이 팔렸는지 안팔렸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몰래 책방 SNS를 들어가보면 안보이는 구석 저만치에서 인테리어 용품처럼 진열되어 있는 걸 확인한다.


두번째 작품인 <그놈의 댕댕이>를 텀블벅으로 올렸을 때, 결과를 수용하기가 벅찼다. 탄탄한 서포터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자신만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텀블벅의 달성률을 더 높이기란 쉽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혀서 자주 주저앉았고, 그럼에도 펀딩 기한이 남아있는 동안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고 있노라는 인증글을 남겨야 했다. SNS상의 나는 밝고 긍정적이며 여러 활동을 하는 사람인데, 현실의 나는 불빛을 잃어가는 가로등같았다. 이런 내 속내도 모르고, 나를 만나면 "괜찮아요?"라고 묻기 보다는 "단우씨 요즘 잘 나가네~?", "얼굴 보기 힘드네. 바빠서 좋지?"라는 식의 비아냥이 더 늘어갔다. 네, 잘 나가요. 잘 나가서 죽겠어요.


농담처럼 주변에다 그냥 공장에 들어가서 핸드폰 조립을 하며 아무 생각없이 월급을 받는 삶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아무런 걱정없이 특히 경제적인 걱정없이 글만 쓰고 산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알만한 작가들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고 살겠지만, 양단우라는 사람은 양단우 자신밖에는 위로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무너지지 말아야지, 라며 언제나 되새김질 하지만 무너짐의 주기가 짧아지는 날에는 하염없이 무너져버린다. 오늘도 그러한 날이다. 인쇄비 카드값을 분할해서 납부하는 날. 그런데도 나는 웃으며 활기차게 살아가야 한다.


내가 원해서 언더독이 된 건 아닌데 상황이 나를 언더독으로 몰아간다. 모진 열등감에 허덕이면서도 마음의 균열을 꾸준하게 메워나가야 일상을 버틸 수 있다. 나는 재능이 없는 작가인 관계로, 또한 유명하지 않고 가난한 작가인 관계로, 언더독의 풀을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한다. 어쨌든 삶은 계속 되고, 앞으로 써야 할 글들로 가난해지고 재차 먹고 살 길을 열어가야 하니까. 언더독의 유일한 재능인 성실성이 나를 먹여 살릴 것이라 그렇게 믿을 수밖에.


자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원고를 집필하자. 대박을 기대하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