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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Feb 13. 2024

나 자신만큼 소중한 사람.

다른 사람이 나 자신만큼 소중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내 경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이 다를 것 같다.

다른 사람이 가족을 포함하는 의미라면, 내 대답은 “그렇다.”가 될 것이다.

나에게 가족은 나만큼, 혹은 나 이상으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 존재의 다른 모습인 두 딸들은 여전히 내 삶의 행복이다.

처음 세상에 온 아이를 보았을 때의 묘하고 벅찬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몹시도 작은 존재, 나를 바라보던 맑은 눈동자, 마냥 조심스럽고 소중했던 마음!

딸이 처음 이유식을 먹던 날, 숟가락으로 입에 음식을 넣어주면서 나도 따라 “아~” 하고 입을 벌렸다. 마치 내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딸이 맛있게 먹으면,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 아마도 세상 모든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권정생의 “엄마 까투리”는 그렇게 자식에 대한 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그림책이다.

산불이 나서 모든 동물들이 불을 피해 멀리 달아났지만, 날지 못하는 아기 새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엄마 까투리는, 죽음으로 새끼들을 보듬어 뜨거운 불길로부터 지켜주었다. 슬프고도 감동적인 엄마 까투리의 모성애는 자기 생존의 본능보다 강했다. 극한의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어떨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 역시 엄마 까투리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생존의 본능만큼이나 강력한 유전자의 명령일 수 있다. 자식은 나의 다른 모습이자 나의 영속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와 연결되지 않는 타인은 어떨까?

지금까지 나는,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대체로 다른 이들을 위해 양보하면서 살아왔다. 가능한 이기적으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많은 경우 힘들거나 불편한 일을 꺼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타인이 나보다 소중해서라기보다는 사회적 약속과 예절의 영향이 컸고, 응당 그래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타인이 나만큼 소중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내가 있어야 타인도, 세상도 존재한다고 생각했기에, 완벽한 타인이 나만큼 소중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트롤의 아이>는 『닐스의 신기한 모험』으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의 국민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셀마 라게를뢰프’ 원작의 그림책이다.

아기 트롤을 업고 가던 트롤이 농부의 아이를 보고, 제 아기를 내려놓고 농부의 예쁜 아기를 데려간다. 아이를 빼앗긴 농부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다 트롤의 아기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트롤에게 아기를 빼앗긴 농부는 슬픔과 분노로, 트롤의 아기를 미워하고 학대하지만, 농부의 아내는 이를 막고, 트롤의 아이를 사랑으로 돌본다. 트롤의 아이에게서 자신의 아이를 본 것이다. 

그러던 중, 농부의 집에 큰 불이 나자 농부는 트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는다. 이를 본 농부의 아내는 뜨거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트롤을 구해낸다. 하지만, 농부는 트롤의 아이와 같이 살 수는 없다며, 집을 나간다.

집을 나선 농부는 한 아이를 발견하는 데, 바로 트롤이 데려간 그의 아들이었다.

기쁨에 겨워 아이를 품에 안은 농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네게서 탄 냄새가 나는 구나.”

“그야 당연하지요. 아빠가 트롤의 아이를 불 속에 집어 던졌을 때, 트롤도 저를 불구덩이 속에 던져 넣었거든요. 그 때 엄마가 트롤을 구해내지 않았더라면 저는 불에 타 죽고 말았을 거예요. 아빠가 트롤의 아이를 떨어뜨렸을 때 트롤도 저를 떨어뜨렸고, 엄마가 트롤의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을 때 트롤도 제게 버터 바른 빵을 주었어요.”


<다른 사람도 나만큼 소중할까?>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이 책이 떠올랐다.

농부와 농부의 아내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했다. 농부는 아이를 빼앗긴 슬픔과 분노로 트롤의 아이를 미워하지만, 그의 아내는 트롤의 아이를 통해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고, 사랑과 연민으로 트롤의 아이를 돌본다. 농부와 그의 아내는 아이에 대한 사랑은 같았지만, 그 방식은 달랐던 것이다.

자신의 아이만 사랑했던 농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른 사랑으로 연결된 농부의 아내!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방식은 자신들의 아이에게 그대로, 거울처럼 투영되었다. 

농부의 아내가 보여준 사랑이 우리가 다른 존재에 대해 가져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


몇 년 전, 수많은 아이들이 세월호에 갇혀 바닷물 속으로 침몰되고 꽃같은 생명을 잃었다.

그 때, 우리 모두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 함께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했었다.

그 마음의 연결, 공감과 연민만이 이기적 사랑의 탈출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을 나와 내 아이, 내 가족만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사랑만큼 다른 이의 사랑도 소중함을 공감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더 큰 존중과 사랑, 연민으로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라는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랑에서 한걸음 나아가, 타인과 연결되어 함께 공감하고,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이 곧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나와 나의 가족만이 내가 아니라, 자타불이(自他不二), 온 우주가 하나임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는 날이 나에게도 꼭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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