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는 다른 휴무
호텔에는 많은 부서가 있다. '호텔' 하면 대부분 떠올리는 부서는 Front Desk/Front Office 혹은 Food & Beverage (식음/레스토랑)이다. 당연히 접객하는 부서이다 보니 이렇게 두 부서가 바로 떠오를 수밖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손님을 응대하는데 꼭 필요한 부서들, 예를 들어 front office, F&B, Housekeeping, Culinary 등등 이런 부서들을 호텔에서는 Operation이라고 부른다. Sales/Finance/HR 같은 경우에는 백오피스라고 부른다.
오퍼레이션에서 뛰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휴무가 많이 다르다. 백오피스 근무하는 직원들은 일반 회사원들처럼 월요일~금요일, 9시~6시 근무이지만 오퍼레이션은 2교대 혹은 3교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출근하는 날짜도, 시간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
가끔은 이틀 일하고 이틀 쉬고, 3일을 일하고 이틀을 쉴 때도 있다. 물론 하루씩 쉬는 날도 있지만 직장인들처럼 금요일만 손꼽아 기다리는 일도, 월요병을 겪을 일도 없다. 간혹 5일을 달릴 때도 있지만 (우리들은 달린다는 말을 많이 쓴다. 뭘 그렇게들 달리는지,,) 그렇게 많이 달리면 3일을 쉴 때도 있다. 3일 쉴 때는 잠깐 부산에 다녀올 수도 있고, 제주도에도 다녀올 수 있다. 하하하!
그래서 스케쥴러가 따로 있다. 매달 20~25일 사이에 항상 스케쥴러가 'DO(=Day Off) 신청받습니다~'라고 카톡방에 공유를 하면 그때부터 눈치싸움? 이 시작된다. 주말엔 늘 바쁘기 때문에 두 명 이상이 겹쳐서 쉬기란 힘들다. 특히 코로나로 세계가 흉흉해진 요즘 관광산업, 호텔업, 항공업엔 뼈를 때리는 수준이 아니라 뼈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타격이 컸고, 그로 인해 인원도 많이 축소되었다. 이런 시국에 주말에 두 명 이상이 빠져버리게 되면 정말 너무너무 바쁘다. 가끔씩 밥 먹는 시간도 없을 정도랄까. 어차피 두 명이 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보통 주말보다는 평일에 마음 편하게 100% 적용될 수 있게 DO를 신청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주말은 진짜 주말이 아니라 평일 주말이 되어 버린다. 호텔에 처음 입사했을 땐 아직 취업을 못한 친구들이 있어서 평일에 쉬어도 함께 할 친구들이 있어서 어딜 놀러 가도 사람들이 적어 기다리는 시간도 적었고, 여유롭게 놀러 다닐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에버랜드에 놀러 가서 T Express를 바로 탄다던가, 주말이면 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맛집에 가면 대기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다던가, 쇼핑을 느긋하게 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혹은 엄마랑 브런치 타임을 즐길 수 있다. 가끔 서로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는 시간을 갖는데 봇물이 한번 터지면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평일 DO는 모녀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 된다. 회사 뒷담은 엄마랑 하는 게 제일 속 시원하다. 그래서 묵혀놨던 회사에 대한 감정을 풀기 아주 적절하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내가 해주는 회사 이야기를 무슨 드라마 보는 것처럼 아주 흥미로워하기 때문에 서로 상부상조하는 격이랄까.
그런데 20대 후반이 되니 다들 직장인이 되어버렸고, 평일에 친구들 만나는 게 정말 많이 힘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동료 이상의 관계인 친구로 발전하여 함께 여행도 다니면서 쉬는 날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도 한다(다른 직장인들도 그런가?). 그래서 또 다른 좋은 점이 있다면 우리는 비수기에 남들보다 저렴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 코로나 전에는 가까운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제주도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 면세 인도장을 가더라도 휴가철 때마다 대기번호를 들고 모여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면세품을 받아 시장바닥 같은 곳에서 제대로 잘 받았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고, gate마다 줄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영화관도 아이들 없는 시간을 선택해서 조용히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회사 사람과 친구가 되기란 참 힘든 것 같으면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쉬운 일이 되어 버린다. 아닌가? 일반 직장인들에게도 쉬운 일이려나!
단점이 있다면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버린다는 것. 아빠와 내 동생은 회사에 다니니 내가 쉬는 평일 저녁이나 돼야 얼굴을 볼 수 있다. 주말엔 내가 일을 해버리니 외식하는 것도 힘들고, 시간을 맞춰서 가족 여행을 가는 것도 어렵다. 가끔 주말에 오전에 일을 하게 되어 일찍 퇴근해서 오는 날이 되어야만 가까스로 외식을 할 수는 있다. 다만 외식한 다음 날에도 오전에 출근해야 한다면,,?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을 때는 오전 6시 30분까지 가려면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새벽 5시에 오는 첫 차를 무조건 타야 했다. 그래서 일찍 자야 하니 외식하는 시간도 빨라지고, 밥만 먹고 끝이다. 가끔 엄마는 남들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직업을 다시 구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물을 때가 있다. 비단 가족과의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쉬워서 그런게 아니라 남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아 참, 또 다른 단점이 있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오늘은 나의 DO이다. 내일은 토요일인데도 DO이다. 이렇게 황금 같은 금요일, 토요일에 쉬게 되다니. 진짜 이건 몇 안 되는 환상의 스케줄이다. 그런데 이런 날 쉬게 되면 막상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도 많다. 스케줄이 보통 월말에 나오는데 월초 금요일 토요일에 쉬게 되어 친구들한테 연락을 하게 되면 이미 약속이 있어 못 만날 것 같다는 답변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렇게 벚꽃이 피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이 시기엔 더더욱,, 이럴 땐 가끔 외롭기도 하고, 남자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괜히 약속 있는 친구들이 야속하기도 한다.
참,, 단점과 장점이 너무 극명한 스케줄 근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스케줄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혼자만의 여행을 좋아하고, 혼자만의 등산도 좋아하고, 혼자만의 영화감상도 좋아하니 그나마 이런 On and Off 라이프를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스케줄 근무가 좋다고 하더라도,,,, 그냥 나는 돈 많은 백수가 꿈이다.
사실 저렇게 써놓고 끝내려고 하는 찰나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진짜로!!!). 내일(토요일) 원래 근무하려던 직원에게 일이 생겨 못나올 것 같다며 대신 나와달라고,, 이럴 때도 있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