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ISE CANCELLING

어지러운 세상에 25만 원과 내가 단둘이 남겨진 기분

by 송윤지


얼마 전 에어팟 프로를 구입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에어팟을 잃어버린 이유에서다. 집에 돌아와 귀에 꽂힌 콩나물 두 짝도 집에 넣어주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내 집은 잘 찾아 들어가면서 에어팟네 집은 길거리에 버리고 오는 나 자신이 미웠다. 알맹이만 남은 에어팟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작은 콩나물의 숨을 거두어 버린 파렴치한이 된 기분이었다.

에어팟 충전기 분실에 대해 이야기하자 주변 사람들은 충전기만 구해보라는 조언을 해줬다. 만만치 않은 가격 탓에 나에게 남겨진 두 콩나물을 중고 충전기로 소생시킬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꿨다. ‘노이즈 캔슬링’. 내 에어팟에는 없고 그들의 에어팟에는 있는 그 기능이 내 지갑을 열었다.

사실 이전에 선배의 에어팟으로 노이즈 캔슬링을 경험해본 적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회기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시끄러웠던 버스가 한순간에 조용해지는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에어팟으로 들었던 노래는 아직도 신비롭게 느껴진다. 윤하 노래의 첫 소절이 모든 목소리를 제치고 귀에 박힌 찰나가 있었다. ‘나는 잘 지내-’ 한 마디에 버스 안 공기가 푸른색으로 변했다.

그러니까, 노이즈 캔슬링을 켜기만 하면 내 공간이 분리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띠링하고 울리는 알림음이 내 주변에 결계가 쳐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 보폭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느끼지 못하는 짜릿함이 상당하다. 종종 모든 것들과 두 발짝 떨어지고 싶어 하는 나에게 도피처를 주는 것 같다. 듣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통화 소리도, 연식을 강제로 느끼게 하는 버스의 엔진 소리도 들을 필요가 없다. 청각만 분리해서 어느 사찰로 보내고 싶은 퇴근길에서도 노이즈 캔슬링과 함께라면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된다.

오늘의 늦은 오후에도 나는 고립된 채 집으로 돌아갈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만 지나면 나는 기다란 신길역 환승구간에서 맹목적으로 퇴근하는 사람들과 발맞추어 걷고 있다.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 버린 동인천행 급행열차에서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사람이 되어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때 마침 나는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질려버린 몸에서 영혼을 빼 천천히 걸어오라고 해야지. 뛰지도 헐떡이지도 말고. 누구도 밀치지 말고 가만히 걸어오라고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 계획이 틀어졌다. 내가 집에 갈 수 있는 루트는 지하철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인천에 도착하는 방법을 선택해보기로 한 것이다. 평소에는 버스 배차시간이 잔인하게 길어서 시도해보지 않은 길이었다. 그리고 괜한 도전을 싫어하는 탓에 꾸역꾸역 지하철에 몸을 싣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내 퇴근에 맞추어 버스가 오고 있었다. 버스를 한 번 타고 선유도역에서 내렸다. 다음 버스를 타는 정류장까지는 거리가 있어 10분 정도 걸어야만 했다.

노이즈 캔슬링을 끈 것은 내릴 정류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버스 알림을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초행길에 조금은 긴장한 채로 제때 버스에서 내려서 지도를 따라갔다. 그냥 직진을 두 번 하면 되는 방법에 길치는 이 루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난생처음 보는 길이었다. 매일 똑같던 퇴근길에서 낯선 풍경을 보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 이곳은 여전히 당산역과 합정역으로 향하는 차들의 소음이 지나치지만, 왠지 그대로 들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정류장이었던 선유도공원 앞은 <서울의 찐 퇴근길>이라는 제목을 붙여줬다. 끼어들기가 난무하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도로의 약육강식에 운전에 대한 의지를 조금 접었다. 내 시선 속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고 모두가 무척 빨랐다. 그래도 오늘은 이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걷다가 마주친 누군가의 반려 닭과(이거 진짜임. 길거리에서 어떤 아저씨가 사랑스럽게 쓰다듬고 있었음) , 나와 초면인 모든 장면들에 이름 모를 애정이 솟아났다.

그래서 오늘은 노이즈 캔슬링을 껐다. 내가 처음 만나는 것들을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다. 노이즈 캔슬링 대신 어딘가를 정처 없이 걷고 있을 영혼을 가져왔다. 처음의 시선들과 함께라면 내가 대신 걸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소리를 동력으로 걷는 힘이 생겼다. 나는 종종 어떤 것들과는 두 발짝 연결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선유도공원 근처에서 에어팟을 뺀 대략 10분 간의 시간은 고립되기 좋아하는 나에게 연결의 힘을 가르쳤다. 똑같은 소리, 지겨운 풍경을 새로운 내가 맞이할 수 있다. 나는 내일과 언제나 초면일 테니, 매일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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