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공대 출신이었다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전공 수업을 많이 듣지 않았다. 본인의 입으로 교양학부 출신이라고 우스갯소리할 정도다. 그가 들었던 교양 과목 중에는 “미술의 세계”도 있었다. ‘미술은 싫어하면서 왜?’라고 물었더니 기가 막힌 현답이 돌아왔다.
“전공과목이 더 싫으니깐.”
그 수업 중에는 영상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다. 그는 착수하기에 앞서 자기가 찍었던 사진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화질이 조악한 휴대폰 사진들 사이에서 그는 낚시에 성공한 듯이 말했다.
“이걸 써야겠어.”
그러고는 그는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내가 아는 사진이었다. 바로 며칠 앞서서 그가 찍어두었던 마른 멸치 안주 사진. 그는 멸치 몸통을 알뜰하게 떼어먹고 나서 남은 멸치 대가리들을 가지런히 누이고 사진을 찍었더랬다. 눈빛은 퀭하고 입은 벌어진 채로 바짝 말라붙어버린 멸치들(정확히 말하면 대가리들)이 거기에 있었다. 사진 속 그것들은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의 재미없는 훈화 말씀을 듣는 것처럼 열과 줄을 맞춰 누워있었다.
장난으로 찍은 사진을 사용하겠다는 말을 나는 빈말인 줄 알고 넘겼으나, 그는 진심이었다. 정말로 그 사진을 넣어 영상을 만들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갈색 화면 위에 쓰인 정직한 굴림체 자기소개, 우울하면서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 그리고 취업과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고통받는 편두통 환자의 진솔한 고백. 물론 멸치 대가리가 자기 같다는 고백을 살짝 끼운 것까지. 어렸던 나는 영상을 보는 내내 깔깔 웃으면서 ‘이게 뭐야’라는 말만 남발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나 보다. 그 영상에 어찌나 감동하셨던지, 교수님은 남편의 과제를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셨단다. 그리고 끝내 그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아마도 그 평생에 미술 과목에서 얻은 최고점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훈장처럼 이야기하는 그의 추억거리 중 하나다.
요즘 들어, 그렇게 그 멸치 대가리들이 생각이 난다. 당시에 그를 응급실까지 몰아갔던 각종 스트레스는 사라졌지만, 이제는 다른 것들이 그를 잠식해 간다.
그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 많다. 그가 출근할 때면 나는 그에게 ‘이따 봐’라는 인사를 건네지만, 사실은 ‘내일 봐’라는 말이 알맞을 정도로 그의 퇴근은 항상 늦다.
출장은 또 어떤지.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간단한 옷가지를 싸둬야 한다. 1년에 한 번은 해외로도 출장을 간다. 팔자에 없던 것 같았던 역마살이 생긴 거냐는 푸념이 늘어간다.
집돌이인 남편은 원치 않게 방랑자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주말은 녹초상태다. 몸통은 겨우 건사해 냈지만, 영혼이 바싹 마른 거대 멸치가 되어버린 남편. 혹시 교수님은 아셨던 걸까. 그의 삶이 머리만 남은 멸치와 다를 바가 없게 될 거란 걸.
안타깝게도 과제로 제출했던 영상은 영영 사라져 버렸다. 요즘 같은 때 같이 보면서 어릴 적의 당신이 이런 생각을 가졌구나, 그랬구나 하고 싶은데. 지금 보면 귀여웠을 그 당시의 고민을 지금의 당신하고 같이 도닥여주고 싶은데 기회가 사라져 버려서 너무 아쉽다.
대신에,
여보, 아쉬운 대로 주말에 마른안주에 맥주 한 잔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