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제는 평냉으로 해줘. 재밌을 것 같아.”
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글을 적을 때마다, 남편이 건넸던 말이다. 전국에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며, 글의 조회수를 지금보다 더 많이 늘릴 수 있을 거라며 얼른 써달라고 보챘다.
남편이 평양냉면을 처음 접한 것은 10여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업 사원 시절, 남편의 담당 교수님과 여의도에 유명한 평양냉면을 먹었단다. 그의 평양냉면이 첫맛에 찌릿하진 않았단다. 이 맛은 대체 뭐지? 했단다. 다행인 건지 교수님과의 식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단다. 그렇게 식사 기회가 늘어갈수록 평양냉면을 먹을 횟수도 많아졌을 테지. 먹다 보면 빠져드는 것이 평양냉면의 맛이라고 남편은 말했다. 지금은 평양냉면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한 명이다. 만약 남편이 음식과 결혼을 했다면, 국밥은 정실부인이고 평양냉면은 애첩정도 될까.
남편은 어쩌다 평양냉면 특유의 슴슴한 맛을 이다지 사랑하게 됐을까. 며칠 밤이고 낮이고 그 문장에 물음표를 갖다 붙여보았다. 그러다 어떤 생각에 도달했다. 온갖 술과 자극적인 음식으로 몸을 더럽히고 나서의, 그동안 그가 먹어왔던 것에 대한 고해성사이지 않을까 하는.
일주일에 한 번, 그는 평양냉면을 주문한다. 주문서에 당신의 몸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한 고백을 담는다. 그릇에 코를 박아가며, 그릇을 들어 올리며 맑은 육수로 세례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그릇을 비우며 다음 일주일 동안 저지를 고행을 준비한다. 그렇게 치면 남편의 평양냉면을 향한 사랑은 성스러운 의식인 셈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의 첫 주말, 그것도 일요일에 남편은 벚꽃놀이를 가자고 했다. 여의도 윤중로까지 가야겠단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여의도에는 남편을 평냉의 늪에 빠뜨린 평양냉면집이 있다.
“평양냉면 먹으러 가는 거지?”
“아니야, 마누라랑 벚꽃도 보고 겸사겸사 가는 거지!”
나는 냉면집 주변에 핀 벚꽃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벚꽃 옆에 위치한 냉면집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아리송한 마음을 지니고 서울로 향했다.
일요일 점심을 비껴간 시간이면 식당은 한산하겠지, 했던 우리의 예상은 철저한 오판이었다. 벚꽃이 너무 예뻐서였는지, 평양냉면을 먹기에 좋은 날씨였던 건지 식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남편은 급히 달려갔으나 대기표에는 66이 쓰여 있었다. 회전율이 높으니 기다릴까 하며 나의 눈치를 살피던 남편은 금세 단념했다. 내 배꼽시계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나 있었으므로. 괜찮아 옆집도 맛집이야, 하면서 남편은 칼국숫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순서를 한번 기다려볼 걸 그랬다. 수년 전에 손사래 쳤던 것들 중에서 하나 정도는 이제는 즐길 여유가 생겼는데. 좀 기다렸다가 남편이 아끼는 낙과 맛을 같이 누려볼걸.
여보, 안 되겠다.
조만간 여의도 다시 한번 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