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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Aug 26. 2023

06. 탭댄스를 배워요

   “저는 탭댄스를 배워요.”

이렇게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놀라면서 재차 물어본다. 탭댄스? 왜? 어쩌다?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 제 버킷리스트 1번이었거든요.

어릴 적 마구잡이로 휘갈겨 적곤 했던 버킷리스트. 진짜 1번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쩌면 5번쯤은 되었을까. 그래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있다. 어릴 적에 본 영화 “시카고”에서 배우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보고 탭댄스에 반했던 것. 그리고 지금은 그 리스트의 1번이 맞는다는 것.




나는 몸치다. 몸으로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젬병이다. 발동작에 신경 쓰면 손에 버퍼링이 걸린다. 손동작에 힘을 주면 발은 소리만으로도 삼천포엘 간다. 선생님께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고슴도치가 아닌 모친께서 얘기를 들으시고는 웃음기 뺀 목소리로 너무나 당연한 조언을 하셨다.

“너는 남들보다 한 스무 번은 더 연습해야 해.”

더 나아가서는 그런 말씀도 하셨다.

“못하는 걸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다른 취미로 넘어가 보는 것은 어때?”

단박에 싫다는 말이 나왔다. 아직 할 만큼 해낸 것이 아니었으므로. 징이 박힌 구두로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를 낼 때, 나는 계속 신이 났으므로.     




인상적인 화요일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심적으로 몹시 지쳤다. 집으로 가야겠단 생각만으로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사무실을 벗어나고 보니 버틸만했다. 힘을 내보기로 했다. 나는 잰걸음으로 미끄러지듯이 지하철을 탔다. 집을 지나쳐 탭댄스 학원으로 갔다. 그러고는 여느 때와 같이 형편없는 발재간을 부렸다. -아니다. 피곤하긴 했던 터라, 사실은 그간의 '여느 때'보다도 형편이 없었으리라.- 나는 겨우 20초 분량의 안무를 한 시간 동안 끙끙 앓으면서 배웠다.

억겁 같은 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묘하게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그러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어떤 것이 점점 커지며 나를 울렁였다.      




최근에 업무가 바뀌었다. 나는 영광의 화요일도 잊어버릴 만큼 겁부터 허겁지겁 먹었다. 일 적응을 먼저 해야겠다는 핑계로 탭댄스를 비롯하여 좋아라 하는 것들을 잠시 접어두었다. 금방 깨달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조만간 그것들을 다시 펼쳐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나는 업무에 꼼짝없이 잡히고야 말았다. 정신 차리고 보면 거대한 지우개가 나의 하루를 박박 지워댄 것 같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다 나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 안 되겠다. 지우개가 나를 지우기 전에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야겠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해야지.     


저는 지금 탭댄스를 배우고 있어요.


또각또각!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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