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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May 21. 2024

0. 우리, 후쿠오카 갈래?

제주도 나 홀로 여행에서 후쿠오카 가족여행이 되어버리기까지.

남편은 1년에 한 번, 해외 출장을 다녀온다. 남들은 부러워만 하는데 (심지어 나까지도) 남편은 출장이란 말만 나오면 울상이 된다. 일로 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하는 소리냐부터 시작해서 집돌이에게는 기구하고 박복한 팔자라는 말까지. 

올해에도 어김없이 출장 일정이 나왔다. 이번엔 워싱턴이래. 그에게서 한창 나들이하기 좋은 5월 중순에 워싱턴이라는 말을 들으니, 내 마음에 봄바람이 살랑 일었다. 괜스레 나도 집을 비우고 싶었다. 아무래도 작년 강릉에서의 나 홀로 여행이 꽤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그때처럼 제주행 비행기표를 덜컥 사버렸다. 숙소를 알아보려고 휴대폰을 켜는데, 화면에 여동생의 이름이 떴다. 나는 신이 나서 두서없이 조잘댔다.

- 남편 출장에 맞춰서 나도 제주도나 한 3박 4일 정도 다녀오려고 해!

동생은 대뜸 내 걱정부터 해줬다. 

- 제주도가 얼마나 넓은데. 언니는 운전도 못 하면서 혼자 어떻게 다녀오려고 그래. 내가 운전해 줄 테니까 같이 갈래?

동생의 배려에 나는 일말의 고민 않고 좋다고 했다. 일정을 간단히 공유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도를 보면서 이곳저곳을 훑었다. 지도 위에서 나는 어디든 날아서 갔다. 검색을 마치고 휴대폰의 화면이 꺼졌다. 싱글벙글한 내 얼굴이 화면에 잠시 비칠 때쯤, 동생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다시 왔다.

- 언니. 이럴 게 아니라 다음 달이면 아빠 생신도 돌아오는데, 이참에 우리 친정 가족끼리 해외여행 어때?

- 아, 그럴까. 

그날 저녁까지 내 것이었던 제주도행 티켓은 이내 바로 다른 누군가의 자리가 되었다.




여동생의 제안으로 나 홀로 여행은 가족여행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과 남동생까지 내 일정에 맞춰주었다. 본격적으로 우리 삼 남매는 행선지를 고민했다. 처음에는 대만을 생각했었다. 여행 난도가 높지 않고 볼 것, 먹을 것이 많아서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행선지라고 생각했다. 특히 국립대만 박물관은 모두가 궁금해했던 곳이라 패키지로는 성에 안 찰 것 같아 자유여행을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첫 가족 해외여행이니만큼 무리 말고 패키지로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여행사를 알아보고 예약을 마쳤다. 인원이 채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돌이켜보니 시련 축에도 끼지 못하는) 시련이 엎쳤다. 화롄지역에서 지진이 났단다. 덮친 격으로 확정 날짜는 다가오는데 최소 확정 인원은 채워지지 않는 거다. 여행사에 채근해 보았더니 지난주에도 대만 가신 분들이 많으니 좀 기다려보란다. 대체로 성격이 급한 우리 남매는 인내심에 동이 나서 다른 곳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 몰라 부모님께 의견을 여쭈니 여진이 걱정된다고 하셨다. 결국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기로 하고 패키지 신청을 취소했다. 선뜻 다음을 생각지 못하고 있는 내게 다음을 제안해 준 이는 이번에도 역시 여동생이었다.

- 요즘 후쿠오카 많이 간다던데, 거긴 어떨까?

- 그래? 한번 가 볼까.

- 자유여행으로 일정 짜서 다녀볼까?

- 그... 그럴까. 그래볼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인생. 나의 목적지는 제주도에서 대만을 거쳐 최종적으로 후쿠오카가 되었다. 

우리 가족 여행, 과연 순탄케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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