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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은 Sep 01. 2024

10시간의 사투

#5 대장소장 절제, 방광 부분절제술

8월 8일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크론병으로 인해 염증과 유착이 심한 상태이고 현재 몸 컨디션도 완벽하게 올라오지 않은 상태라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었다. 만성염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일반적인 사람, 수술보다는 위험성과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나 보다. 더군다나 나는 장에만 염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장, 소장 벽이 녹으면서 방광까지도 누공이 생겨난 상태였기에 2~3가지의 수술을 한 번에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인생 처음 받아보는 수술이라 안 그래도 무서워죽겠는데... 처음 받는 수술이 이렇게나 대공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약 6~7시간 정도 소요될 수 있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점차 내 스스로의 표정이 굳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선생님이 가신 후 엄마와 단 둘이 남았을 때에는 폭풍눈물을 쏟아냈다. 정말 너무 무서웠다. 내 배를 가르고 구멍을 뚫고 장을 자르고 이어 붙이고... 막상 수술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입원하는 기간 동안 가져왔던 굳은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수술을 받고 나서 얼마나 아플지 감히 예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8월 9일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고 마침내 수술 당일이 밝아왔다. 금식을 해야 해서 아침과 점심은 안 먹어도 된다고 하셨고 덕분에 새벽 내내 못 잤던 잠을 아침에 조금이나마 잘 수 있었다.

아침 9시. 수술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는 생각에 엄마 손을 잡으며 무서움을 토해냈고,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아침 10시. 간호사 선생님이 갑자기 오셔서 수술 시간이 당겨졌다고 지금 당장 수술실로 내려가야 한다며 안내를 해주셨다. 분명 내가 알기론 몇 시간 정도가 남았을 텐데... 어렵고 복잡한 수술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앞에 있는 다른 환자의 일정이 변동된 건지 정말 너무 갑작스럽게 수술을 받게 되었다. 아직 긴장도 다 풀지 못했고 엄마와 하던 대화도 끝마치지 못했는데 말이다.


맞고 있던 수많은 수액과 영양제를 제거하고 수술용 수액 하나만을 연결했다. 신고 있던 슬리퍼도 수술실용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거동이 불편한 게 아니었기에 걸어서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3층에 있는 수술실로 향했다. 그리고 앞에서 엄마와 인사를 나눴다.


"우리 딸 잘하고 와. 엄마가 곁에서 못 지켜줘서 미안해. 기다리고 있을게. 사랑해."


평소에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엄마가 울었다. 손으로 볼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정말 엉엉 우셨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울어버리면 수술을 받을 때에도 진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애써 엄마의 눈물을 외면한 채 담담하게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잠깐의 대기 이후 간호사, 의사 선생님의 부축을 받아 수술대에 누웠다. 정말 추웠다. 온도가 낮은 것도 있지만 수술실 특유의 분위기가 서늘하고 오싹하게 느껴졌달까.

입고 있던 병원복을 모두 탈의하고 움직이지 않게끔 팔다리를 고정시켰다. 극도의 긴장감에 나도 모르는 새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고 가쁜 심호흡을 내뱉었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과 마취제가 곧 들어간다는 마취과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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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 눈 뜨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눈 뜨시고 심호흡하셔야 해요."


정신을 차려보니 수술이 끝나있었다. 내가 있던 곳은 회복실이었고 정말 극심한, 내 인생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통증이 확 몰려왔다. 아파서 몸에 힘을 주니 배가 찢어질 것 같았고, 입에선 절로 "으... 아.. 으..."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옆에는 다른 수술을 받고 나온 환자가 둘 정도 있었는데 아프다고 소리를 치는 분도 계셨다. 참고로 난 아프다는 말도 못 했다. 진짜 아파서 몸이 굳은 상태로 숨만 겨우 쉴 정도였달까.

한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대로 가다가는 겨우 차린 정신줄도 놓을 것 같아 있는 힘을 쥐어짜 아프다고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니 그제야 진통제를 놔주시더라. (나는 수술이 끝나면 알아서 바로 진통제를 처방해 주시는 줄 알았는데, 전신마취를 하고 나면 의식을 차리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해서 약간의 시간 텀을 두고 처방을 한다고 한다.)


몸 안으로 마약성 진통제 중 하나인 펜타닐이 들어왔다. 말로만 들었던 약이었는데 괜히 마약이 아닌가 보다. 투여를 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마자 몸에 있던 통증과 긴장감 등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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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정된 수술 시간은 최대 7시간이었지만 이후 남을 흉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개복수술과 복강경을 함께 진행한 탓에 총 10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엄마는 밖에서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내 딸은 언제 나오나, 혹시나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몸서리치고 계속해서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끝에 병실로 올라온 나를 보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고..



1차로 맞은 진통제의 약빨이 슬슬 떨어지려고 할 때라 배에 느껴지는 통증을 잔뜩 안은 채로 병실에 들어섰다. 사실 나는 이때의 기억이 전혀 없다. 엄마 말로는 자기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진통제.. 진통제.. 를 반복했다고 한다. 무통주사가 들어가고 조금 진정이 됐을 때야 편히 잠들 수 있었고 그렇게 8월 9일 큰 시련을 넘겼다.


정말 다시 느끼기 싫은, 다신 경험하기 싫은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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