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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Jan 28. 2023

바이올린, 나 홀로

17-18세기 무반주 바이올린 음악의 걸작


바로크 클래식 음반 소개


음반명:  뚜따 쏠라 (Tutta Sola) - 바흐, 마테이스, 빌스마이어, 베스토프, 타르티니

연주자: 레이첼 포저 / 바이올린 (Rachel Podger)

레이블: 채널클래식(Channel Classics)




클래식 음악은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에 그 해석의 차이를 즐기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같은 곡을 녹음한 음반들이 즐비하지만 몇몇 유명 레퍼토리만 계속 반복된다면 재미없을 것이다. 비슷한 류의 음반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최근에는 곡을 선정하고 음반을 구성하는 방식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졌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곡과 작곡가를 소개하거나, 참신한 주제 아래 기존의 곡들을 새롭게 매칭해 배치하거나, 악기에 변화를 주어 다르게 편곡을 하거나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독특한 개념으로 음반을 구성한다.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의 이 음반은 선곡과 구성 그리고 그것을 엮는 주제가 모두 독창적이다. 음반의 제목 'Tutta Sola'는 이탈리아어로, 영어로는 'all alone', 우리말로는 '완전히 홀로'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창의적이게도 레이첼 포저는 17-18세기에 작곡된 '반주 없이' 바이올린 솔로로 연주하는 곡을 모아 67분의 연주에 모두 담았다.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은 당연히 J.S.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이다. 바이올린 한대로 낼 수 있는 기교와 음악성을 모두 즐길수 있는 이 작품은 이 장르에 있어 가장 독보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바흐가 최고, 최초는 당연히 아니다. 이런 류의 무반주 곡들은 바흐 이전에도 전 유럽에 걸쳐 연주되고 있었다. 레이첼 포저가 2013년에 비버, 타르티니, 바흐 등의 무반주 바이얼린 작품만 모아서 음반을 냈었고, 2015년에 냈던 비버의 <묵주 소나타> 중 마지막 무반주 파사칼리아 악장은 포저가 격정적으로 연주해 유명세를 얻은 곡이기도 하다. 그만큼 포저는 이 분야에 있어 뛰어난 경력을 쌓아왔고 이 음반은 그녀의 일관된 관심의 집약체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면 누구나 바흐라는 거대한 산을 만나게 되고 문화 강의에서든, FM 라디오에서든, 음악 칼럼에서든 그를 칭송하는 글을 수없이 많이 읽게 된다. 나는 한때 바흐가 서양음악의 모든 양식을 최초, 최대로 집대성한 인물인 줄 알았다. 독일-오스트리아계 고전, 낭만 레퍼토리에 편중된 한국 클래식 음악계 담론 속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얼핏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음악을 듣게 되면서 부터 바흐 이전에 수없이 많은 양식이 이미 존재했으며, 독일 음악 이전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음악이 선진과 혁신을 선도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바흐의 음악에서 코렐리의 영향, 프랑스 춤곡의 영향은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레이첼 포저의 이 음반은 그런 음악사적 지평을 넓혀주는 음반이다. 그녀는 바흐로 음반의 첫 곡을 시작했지만 그 산이 등장하기 전 수많은 봉우리가 존재했음을 17-18세기 독일, 이탈리아의 음악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음반의 가치는 그것에 있다.



첫 곡은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이다.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웅장한 레퍼토리를 솔로 바이올린으로 편곡했는데 그 이유가 있다. 이 오르간 곡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바이올린 연주 패턴과 유사함이 곡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애초에 바이올린 곡으로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레이첼 포저는 이 파이프 오르간 레퍼토리에 담긴 바이올린의 본성에 주목하고 있다.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선곡에서 제외해  진부함을 피해가면서 바흐를 오마주하며 파격적인 도입부를 선보인 셈이다. <묵주 소나타>에서 바이올린의 기교를 마음껏 뽑냈던 작곡가 비버의 제자였던 빌스마이어의 파르티타는 아리아, 미뉴엣, 지그 등 당대의 춤곡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당시 춤곡 형식의 바이올린 솔로 작품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한 파울 폰 베스토프는 드레스덴 궁전에서 1674-1697년에 일했으며 바이마르 궁에서도 일했다. 당대의 바이올린 비르투오조 답게 바이올린의 기교를 탐구하고 선율적으로 매우 세련된 음악을 선보였다. 베스토프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은 프랑스에까지도 소개될 만큼 인기를 끌었는데, 1703년에 바흐를 바이마르에서 만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학자들은 이 만남 이후.바흐가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을 구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악마의 트릴>로 잘 알려진 타르티니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위대한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의 <소나타 D장조 D2>는 이 음반에서 가장 장대하고 인상적인 작품으로 마치 현대적인 파가니니를 연상시킬 만큼 스릴넘치는 기교로 가득하다. 제목을 가린다면 이것이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치스>인지, 타르티니의 음악인지 맞출 수 없을 정도. 타르티니의 스타일리시한 면이 대담하게 나타나있으며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피치가 가슴을 찌르고, 발랄한 리듬이 곡예를 부리며 춤을 추는 듯 하다. 작품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연주자의 집중력과 그 힘에 실려 끌려나오는 열정이 감상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등 혼신의 연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음반에는 유명 음악가의 곡만 실려있는 것이 아니다. 레이첼 포저는 역사적인 도큐먼트도 조사해 도큐먼트에 실린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을 발굴해 녹음했다. 18세기 런던의 음악출판업자 존 월시는 1705년 바이올린 악보집을 펴냈는데 그 당시 영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코렐리를 비롯해 가스파리니, 비탈리, 로나티의 이탈리아 곡들을 출판해 런던에 소개했다. 내쉬는 이 작곡가들을 바이올린의 위대한 거장들이라고 적어놓았고 이것을 통해 이탈리아 바이올린 양식이 영국에까지 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포저는 이 곡들을 발췌해 녹음했다. 월시의 악보 컬렉션 뿐만 아니라 포저는 또 하나의 역사적 악보를 음반에 실었는데 오스트리아 남쪽에 있는 성 게오르기안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는 '클라겐푸르트 문서'는 무반주 바이올린곡을 수십점 담은 은둔의 악보이다. 1680년대 중반경에 작곡된 작품으로 보이며 수도원의 수녀들이 작곡하고 연주한 곡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 쿠랑트, 사랑방드, 지그와 같은 바로크 춤곡으로 이미 바흐 이전에 춤곡에 바탕한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역사적 자료이다. 또 하나는 '노게이라 문서'이다. 바이올린의 운지법을 담은 기록으로 포르투갈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드로 로페스 노게이라라는 당대의 비르투오조가 남긴 악보이다. 172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18세기 바이올린 연주사의 역사적 한 장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음반은 구성 자체가 매우 학구적이다.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의 역사적 문맥을 살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자료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음색, 리듬넘치고 서정적인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도 충분히 모자람이 없다. 각 곡은 사변적이지 않고 친숙하고 흥겹다. 바로크 춤곡에 바탕을 둔 곡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연습곡으로 사용된 곡이기도 하기에 기교적인 즐거움을 느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참 많은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여러 악기들이 동원된 거대한 작품들도 좋지만, 이렇게 단촐하고 허허롭게 바이올린 한 대 들고나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음악이라는 예술이 가진 작지만 큰 힘에 새삼 놀라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TVJ0BtIoMA



https://www.youtube.com/watch?v=399SbbAog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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