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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Mar 09. 2023

커피의 길 = 음악의 길

from 콘스탄티노플 to 파리, 런던, 라이프치히

Jean Chardin, Journal du voyage du Chevalier Chardin en Perse (Paris, 1686)


바로크 클래식 음반 소개


음반명 : 커피의 길 (Routes du Café)

연주자 : 앙상블 마스크(Ensemble Masques), 올리비에 포르탱(Olivier Fortin)

레이블 : 알파 Alpha




표지를 보면 화려한 터번을 둘러쓴 터키 여인이 과자를 들고 커피를 즐기고 있다. 음반의 주제를 십분 반영하고 있는 그림이다. 무슨 내용일까? <커피의 길>은 커피 전래의 '루트'를 따라 음악 여행을 떠나는 상상력 넘치는 음반이다. 1554년 세계 최초의 카페가 생긴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에서 파리, 런던, 라이프치히까지 커피가 터키를 통해 유럽에 퍼져나간 길을 따라가며 16-18세기 커피와 관련된 음악을 배치했다. 오스만 터키의 음악부터 바흐의 <커피 칸타타>까지 레퍼토리 구성이 세계인의 음료 커피 만큼 스케일이 크고 다채롭다. 음반은 파리-런던-콘스탄티노플-라이프치히 순서로 구성되었는데 각 유럽의 음악 전후로 오스만 터키 음악을 배치해 동/서의 음악을 커피를 주제로 한데 묶는 참신한 시도가 돋보인다.  


파리

음반의 첫 시작은 터키의 피리인 네이(ney)로 연주한 터키 음악 탁심(taksim)으로 시작한다. 또한 아랍의 발현악기인 우드(oud)로 연주한 <Rast Dilârâ>는 최초의 레코딩으로 이 두 곡은 모두 18세기 오스만 터키의 음악가 오스만 데데(Osman Dede)의 작품이다. 데데의 작품과 매칭된 프랑스 음악은 그와 동시대 작곡가인 니콜라 베르니에(Nicolas  Bernier)의 칸타타 <커피 Le Caffe>이다. 베르니에는 프랑스 칸타타의 초기 작곡가이고(그가 최초 프랑스 칸타타 작곡자라는 연구도 있다) 베르사이유의 왕실 예배당에 봉직한 유명 음악가였다. 커피를 주제로 한 칸타타는 J.S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베르니에의 <커피>는 거의 잊혀진 곡이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1735년작이고 베르니에의 작품이 1703년에 출판되었으니 <커피>는 바흐 작품보다 훨씬 앞선 칸타타이다. 소프라노, 클라브생, 리코더, 베이스 비올로 두 칸타타의 악기 구성도 동일하다. 혹시 바흐가 베르니에의 작품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당시 커피 유행에 따라 커피를 주제로 한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커피가 단순히 음료를 넘어 사회적 현상이었음을 알려준다. 가사 일부를 옮겨보면 '넥타르와 포도주보다' 위대한 커피를 칭송하고 있다.


Ah, coffee, libation I adore,
May you rule and flow everywhere.
Banish nectar from the table of the Gods,
Flow, flow, extend your rule to every place.
Make constant war on the seductive grape!
아, 커피여, 내가 흠모하는 자유
네가 모든 곳에 흐르고 지배하리라
신들의 식탁에서 넥타르를 치우고
흘러라, 흘러라, 모든 곳을 지배하라
유혹적인 포도와 끊임없이 전쟁하여라



1669년 파리에 도착한 오스만 터키의 대사 일행은 파리에 처음으로 커피를 소개했다. 터키의 이국적인 물건에 호기심 많은 파리 시민들에게 터키 복장의 차림새로 중국산 컵에 커피를 대접했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커피를 맛 본 최초의 순간이다. 그후 6개월만에 커피는 파리 전역에서 유명해졌고 소문은 베르사이유궁의 루이 14세에게 까지 들어갔다. 루이 14세는 터키 대사를 궁에 초청해 리셉션을 열어 커피 맛을 보았다고 한다. 그 후 20년 뒤 1686년에는 파리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가 문을 연다. 베르사이유의 음악가 마랭 마레의 곡 <커피의 분출 Saillie du caffé>은 당시 프랑스 왕실 및 사교계에 커피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음악으로 알려주고 있다.


16-18세기 유럽에서는 터키풍이 유행했고 이런 현상을 프랑스어로 '튀르크리(turquerie)'라고 불렀는데 이 유행의 시발점은 16세기 프랑스와 오스만 터키가 동맹을 맺은 사건이었다. 1536년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는 라이벌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을 견재하기 위해 오스만 터키와 동맹을 맺는다. 양국은 무역에서 있어 혜택을 제공하며 상인, 관리, 예술가 등을 파견해 인적 교류를 활성화했는데 자연스럽게 프랑스는 커피를 비롯해 터키풍 유행을 유럽에 전파하는 관문이 되었다. 1699년 프랑스의 화가 장 밥티스트 방무르(Jean-Baptiste Vanmour)는 오스만 터키의 프랑스 대사 일행에 합류해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했다. 그는 거주하는 동안 콘스탄티노플의 다양한 인종, 유럽 대사들이 술탄을 알현하는 장면, 터키인의 풍습과 일상을 수백점의 그림으로 남겼으며 일부는 터키를 방문한 유럽인들에게 판매되기도 했다. 또한 오스만 터키의 다양한 패션과 인물을 묘사한 동판화 작품들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고 5개의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오스만 터키 문화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아래 그림은 방무르의 <커피를 마시는 여인들>인데 하렘의 터키 여인들의 패션, 쿠션과 카페트 등 터키인의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아래 작자미상의 그림은 이 음반의 표지로 사용된 작품으로 18세기 프랑스 화파로 분류되고 있는 그림이다. 터번과 옷의 문양과 패턴, 앉는 방식, 생활 소품 등 터키인의 일상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당시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커피와 과자를 먹는 풍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과도 별로 다를게 없다. 18세기 프랑스 화가들이 동방의 이국적 문화에 큰 관심이 있었음을, 특히 복식에 대한 관찰과 묘사를 보면 터키 패션에 큰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터키의 풍습을 다룬 그림의 소재로 커피가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터키의 커피 문화가 프랑스인들에게 큰 관심사였고 식문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이런 '튀르크리' 문화는 20세기 들어 오리엔탈리즘의 비판적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장-밥티스트 방무르, <커피 마시는 여인들>, 18세기



작자 미상(프랑스 화파), <커피 마시는 터키 여인> 18세기



런던

다음으로 여행할 커피의 도시는 런던이다. 영국의 음악가 매튜 로크(Matthew Locke)가 17세기 중반 런던 최초의 커피 하우스 '더 턱스 헤드(The Turk's Head)'에서 정치가인 사뮤엘 핍스(Samuerl Pepys)를 만나 음악적 교감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당시 커피 하우스는 시사 토론의 장이었며 또한 음악 등 예술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따라서 음반에 실린 매튜 로크의 음악 <판타지아 Fantasia>는 음악의 장소로서 당시 커피 하우스의 면모를 알려주는 곡으로 음반에 포함되었다. 함께 매칭된 터키의 음악은 <와흐다 사라방드 Wahda Sarabande>이다. 와흐다는 중동의 리듬 종류이고 사라방드는 스페인의 바로크 춤곡이다. 그런데 사라방드는 최초에 페르시아의 음악이었고 이베리아 반도가 무슬림 세력 하에 있을 때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 음악으로 변형,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와흐다 사랑방드>는 따라서 양 문명의 음악 양식이 결합해 동서양 퓨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중동의 음악 양식으로 보는게 더 맞을 것 같다. 타악기 리듬을 타고 느긋하고 유연하게 흐르는 아라비아의 선율이 흥취를 한껏 돋군다.


커피는 런던에서 어떤 일을 했을까? 영국의 첫 커피하우스는 1652년 옥스포드에 터키 출신 유대인에 의해 문을 열었고 같은 해 런던에서 커피하우스 '더 턱스 헤드(The Turk's Head)'가 오픈했다. '터키인의 머리'가 카페명이니 런던에서도 터키풍이 어지간히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8세기까지 수많은 커피하우스가 런던에 생겨났고 커피 유행의 사회적 물결을 타고 커피하우스는 정치, 경제, 예술, 과학의 토론장이 되었다. 커피하우스는 시사 토론장 외에도 해상무역과 금융업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해 영국의 근대 산업을 견인하는 역할도 했다. 선장, 무역업자, 보험업자 등이 커피를 마시며 비즈니스를 논했고 커피 하우스는 이들의 상업활동이 벌어지는 물리적 공간이 되었다. 해상무역을 통한 부의 창출, 근대화/산업화 흐름에서 금융/무역 사무소이자 지식 생산소의 역할을 커피 하우스가 수행했다. 현재 영국의 큰 은행 중의 하나인 로이드 뱅크(Lloyd Bank)도 18세기 '로이드 커피하우스'를 기반으로 해상보험업을 시작해 크게 성공한 기업이다. 지금도 런던의 금융지구인 '뱅크(BANK) 지역의 오래된 골목길에는 당시 상인들이 모여 무역을 논했던 퍼브와 커피하우스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다. 영국의 카페는 지식이 모이고 권력이 형성돼 국부를 키우는 근대화의 허브로 작동했고 이런 점에서 다른 나라의 카페보다 더 뚜렷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를 묘사한 드로잉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다음은 유럽 커피 유행의 시발점인 콘스탄티노플이다. 오늘날의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의 음악으로는 터키의 음악가 탄부리 케밀 베이(Tanburi Cemil Bey)의 곡 <탁심과 마후르 페스레브 Taksim & Mahur Peşrev>가 연주된다. 터키의 류트 혹은 까끌한 소릿결이 해금과 음향적으로 유사한 탐부르로 연주하는 이 곡은 매우 고아한 흥취가 있으며 곡의 말미가 <커피 칸타타>의 도입부로 바로 연결되는 마법과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그 효과를 노리고 <커피 칸타타> 앞에 이 곡을 배치한 것 같다. 터키의 음악과 독일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재밌는 아이디어! 콘스탄티노플은 카페의 발상지이다. 1554년 콘스탄티노플에 세계 최초의 카페가 생겼을 때 이 독특한 공간에 교사, 관리, 군인, 상인, 여행객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공공의 장에서 토론과 지식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터키인들의 카페를 '지식의 학교'라고 부르기도 했다. 음악도 연주되었으며 이야기꾼들이 모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퍼포먼스도 열렸다. 그야말로 복합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다음은 프랑스인 장 샤르댕의 1686년작 기행문에서 발췌한 콘스탄티노플의 커피 살롱에 관한 묘사이다.


살롱은 크고 넓으며 지붕이 높고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주민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이자 유흥 장소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가장 좋은 장소에 위치해 있다. 많은 카페가 살롱 중앙에 수영장과 분수를 가지고 있다. (…) 이 살롱은 약 3피트 높이의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과 복도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바닥 위에 사람들이 동양 방식으로 앉는다. 살롱은 새벽부터 문을 열고 이 시간과 저녁 무렵에 방문객이 가장 많다. 커피는 최대한의 주의와 세심함으로 빠르게 서비스 되고 소비된다.



라이프치히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여행지는 독일의 라이프치히이다. J.S 바흐의 도시.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 27년(1723-1750)을 재직했고 이 도시에서 생을 마감했다. 커피를 주제로 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 <커피 칸타타>가 이 도시에서 탄생했다. 독일에 커피가 소개된 때는 1670년경이었다. 1679년 영국의 상인이 함부르크에 첫번째 카페를 열었고 이후 영국인들이 독일 북부 지역에 커피를 공급했다. 독일 남부에는 주로 이탈리아인들이 커피를 공급했다고 한다. 고트프리트 찜머만이라는 독일인이 라이프치히에 1715년에 처음 카페를 열었고 그 공간에서 음악회도 개최했다. 바흐의 1735년 작품 <커피 칸타타>도 이 카페에서 연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커피 칸타타>는 바흐의 종교적 칸타타와 다른 세속 칸타타라고 분류되는데 커피에 중독된 딸과 훈계하는 아버지 사이의 대화를 코믹하게 그린 음악이다. 대사를 주고 받는 일종의 소극 오페라로 커피 찬양 일색의 유쾌한 노랫말이 당시 독일의 커피 열풍을 실감나게 들려준다.  


Ah, how sweet the taste of coffee, Better than a thousand kisses, Finer than moscato wine. Coffee, oh I must have coffee: To refresh me, to revive me, Give me coffee, drink divine!


아, 커피의 맛은 얼마나 달콤한지, 천 번의 키스보다 더 좋고, 모스카토 와인보다 더 훌륭합니다. 커피, 오 나는 커피를 마셔야 해 : 기분전환을 위해, 활력을 위해, 커피를 주세요. 신성을 마셔요!



이제 음악을 통해 커피 전례의 길을 모두 걸어보았다. 베네치아와 비엔나가 빠진 게 아쉽지만 매우 지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레퍼토리 구성이다. 터키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퍼져 나간 커피 문화는 당시 동방에서 온 물건에 대한 서양의 관심과 함께 하였다. 터키 취향은 곧 유럽 고유의 커피 문화를 만들어 내는 시작점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 우리는 커피 문화의 기원을 막연히 서양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 한국의 카페에서 파는 커피 음료의 명칭은 대부분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취하고 있고 우리는 서양의 음료를 소비하는 기분으로 커피를 마신다. 그런데 커피의 기원은 에티오피아이고 카페의 시작은 오스만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이다. 에티오피아와 오스만 제국의 문화는 우리에게 왜곡없이 전달되는 것일까? 우리는 서양이라는 프리즘을 거쳐 동양을 공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음반도 오리엔탈리즘인가? 음악을 들으며 그런 생각에도 잠시 빠져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8xcRYMa5V8

바흐, 커피 칸타타


https://www.youtube.com/watch?v=6UxkZW19RlA

터키의 음악 <와흐다 사라방드 wahda sarabande>



https://www.youtube.com/watch?v=qcDZsVPsers

오스만 제국의 전통음악 등 음반의 주요곡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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