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란다는 건, 방향이 생기는 것
모래 알갱이 반짝이는 모래톱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걷고 또 걷고. 걷다가 지치면 멈추어 수평선을 바라본다.
왜 바다였을까.
물이 그리웠던 것도 아닌데.
그저 한번 더 대화가 나누고 싶었다.
그리움은 무엇으로든 대신할 수 있다.
달리며 그리움을 달래 보고 흐르는 눈물에 그리움을 흘려보낸다.
용기가 필요했다. 마주할 용기가.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피하면 더 큰 그리움이 질 거란 사실을.
넘실대던 파도가 잠잠해질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로 결심했다.
끝나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끝없이 맴도는 이야기가 필요했으니까.
정처 없이 걷다 맴돌다 돌아왔을 때,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는 것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누구나 소중한 무언가를 품고 살아간다.
때론 그것이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 소중하단 생각을 못하고, 상실 후 뒤늦은 후회와 회상을 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갈 수 없는, 볼 수 없는 무언가를 통해 남겨진 우리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잊힘을 의미하지는 않듯, 상실의 힘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그보다 더 한 힘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결속한다.
‘상실’이란 어떠한 형태일까? 잃었을 때 휘청거리는 것, 놓쳤을 때 후두두 무너져 내리는 것.
우리가 품고 사는 소중함은 무엇이며, 그러한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
돌고 도는 이야기.
나의 소중한 무언가를 나누고, 뒤늦은 후회를 돌아보며 ‘아름다움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되어 둘러선 사람을, 마을을, 길을, 그리고 우뚝 선 그곳을 바라보게 된다.
상실의 시대.
그 시절을 살아가는 나는 상실을 통해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되뇌어 보고 싶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누군가의 아픔을 마주하고 기억해야 한다. 즐거움 만으로 인간은 성숙해질 수 없다.
사람은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때 따뜻함을 느낀다.
완벽한 100도씨보다 서로의 부족한 1도씨를 채워주는 곳.
청소년열정공간99도씨의 김부일 선생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끝없는 이야기는 애도하고픈 마음의 고백이었다. 만남과 이별.
시작과 끝. 가슴속 응달 없는 미소로 기억되는 작별이고 싶었다.
안녕이라 말하고 가슴에 새겨놓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문신처럼 영원토록 간직하고 싶었다.
바람 따라 걷다 보면 닿게 되는 곳으로.
그곳으로,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