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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Oct 15. 2023

빵부스러기는 필요 없어

허기

15년 동안 남편의 애정을 의심했다. 그의 표정과 말과 행동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함부로 대하는 게 전부 내 잘못이라고 여겼다. 45년 동안 엄마의 사랑을 믿지 않았다. 변덕스러운 말과 행동에 마음이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오락가락하는 그들의 태도에 영향을 받았다. 마음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그들을 그리워했다. 그들의 마음을 얻을 방법을 고민했다. 나를 좋아할까 싫어할까 온 신경을 쓰고 조마조마했다. 얕은 마음마저 나를 벗어날까 봐 불안해했다.


 다정하게 대화를 하고 자질구레한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다. 평생 함께하기로 했으니 평생 절친이 될 거라고 기대했다. 그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함께 있어도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대화는 상적이었다. 그친구들과 많은 것을 공유했다. 엄마와 다정하게 여행을 하고 일상을 나누고 싶었다. 결혼생활의 적적함을 그녀의 공감으로 위로받고 싶었다. 엄마로 사는 일상의 버거움을 털어놓 싶었다. 열 열하고 촘촘하게 지지받고 싶었다. 그녀는 내 존재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녀의 시선은 동생에게 머물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양보하는 착한 아이이고 누나기를 강요했다. '네가 누나잖아, 양보해야지'  '엄마 말 잘 들어야 착지.'  ' 말 잘 들으면 이거 줄게. 이거 사줄게.'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그 말이 내 안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엄마 말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했던 어린아이였다. 그녀의 말이 법이었고 약속이었다. 어린 나는 그것을 믿고 지키려 노력했다. 더 하고 싶고 더 먹고 싶고 더 가지고 싶었지만 참았고 숨겼고 양보했다. 억울하고 슬펐지만 누나라는 역할에 충실했다. 혼자서 몰래 품은 마음들을 욕심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지 못했다. 사랑받기 위해서 엄마의 욕구에 순응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엄마의 뜻대로 동생에게 많은 것을 양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몫은 조금밖에 되지 않았다. 밉지만 사랑해서 그들의 사정을 헤아렸다. 내면의 착한 아이는 그들의 편에서 그럴만한 이유를 찾기 바빴다. 들끓는 분노와 억울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착한 아이라는 익숙한 역할에 주저앉았다. 그 역할 속으로 몸을 숨기면 불안함이 사그라들었다. 나를 조여 오는 죄책감에서 놓여나는 기분이었다.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초자아에 지배당했다. 


그녀는 불행의 시나리오를 쓰고 그곳에 내 이름이 적히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내가 아등바등하며 사는 일을 뒷짐 지고 평가하면서, 도움을 요청할 때는 차갑게 외면하면서, 좋은 일에는 욕심부린다고 혼을 내면서, 내 발전과 번영을 의심하고 눈 흘기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손에 쥐어주면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나에게 강요하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우겼다. 당신의 시나리오에 나를 욱여놓지 못해 안달하려는 마음을, 당신의 의도대로 하지 않아서 고생하는 꼴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나를 위한 걱정이라고 둘러댔다. 아무 때곤 찾아와 너 잘되라고 하 말들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았다. 근하고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주말을 함께 하는 일이 드물었다. 혼자서도 씩씩하지 않은 내가 문제인가 싶어 취미에 몰입하려 했다. 정교류 없는 관계는 의무적인 역할 놀이였다. 결혼한 남자의 흔한 무신경함이라고만 여겼다.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며 변화를 기대했다. 일방적으로 서운함을 터뜨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내 불만을 수용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머물기를 피하는 것처럼 집안에 머물지 않았다. 떠도는 바람처럼 집 밖을 서성였다. 정서적인 지지와 애정 욕구를 채우지 못했다. 을 고성과 협박으로 틀어막았다. 상처받고 며칠을 잠 못 들며 뒤척였다. 상대의 요구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쫓았다. 정서적인 친밀함을 나누려 마음을 꺼내면 비난하고 조롱했다. 예민하고 여린 마음을 위협하며 지배하려 했다. 그런 식으로 관계 안에 붙들어 두려 했다.


술을 마시고 친구를 만나고 늦게까지 티브이를 보고 주말에는 늦잠을 잤다. 그런 일이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얘기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다툼도 눈물도 애원도 설득도 소용이 없었다. 에 묶여서 집안을 맴도는 나는 그저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힘에 부쳐 앓아누워도 자기 욕구가 먼저였다. 자기에게 맞춰주기를 강요했다. 에게 당연히 할 수 있는 요구, 집안일을 도우라, 육아에 참여해라, 장을  말하지 못했다. 아무 때고 불같이 화를 내고 빈정거다.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면서도 그의 눈치를 보았다. 기대가 꺾이는 일이 반복되니 포기하게 되었다. 현실의 그는 나의 욕구에 응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은 어리석은 기대였다.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자기 편할 대로 나를 들쑤셔서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치는 사람,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 낙관 대신 비관을 불러내는 사람, 불안을 일으켜 평온함을 손쉽게 망치는 사람, 그들 곁에 있으면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복잡해지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엄마에게 차갑게 쏘아대고는 왜 심란한 건지? 에게 무심하게 대하고선 왜 불안한 건지? 행동과 말을 돌이키며 초조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작 불쾌하고 마음이 상한 건 나인데 제대로 받아주지 못한 게 아닐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 반복해서 걱정했다. 정성과 희생을 다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관계, 내 모든 것을 탈탈 쏟아부어야 유지되는 관계, 다가수록 비참해지는 관계, 이 관계에 매달리며 희망을 걸었. 무례한 그를 이해하려 애쓰고 쉽게 용서하며 상처받는 일을 되풀이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충족할 수 없는 애정을 갈구하며 애태운 이유는 무엇일까?


인정과 사랑에 대한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허기가 졌다. 외면하려 할수록 부풀어 올랐다. 감당수 없을 만큼 커져서 작은 관심에 사로잡혔다. 외롭고 굶주린 나는 그의 빵부스러기를 쫓아다다. 허기의 골이 깊어갈수록 작은 조각들은 강렬하고 달콤했다. 자극적인 불량식품처럼 잠깐의 위안이 아쉬워서 아무 때곤 그것을 받아먹으려 달려들고 엎드렸다. 내 욕구를 덮어놓고는 상황에 맞지 않아도 거절하지 못했다. 얄팍한 말과 행동에 설레고 흥분했다. 그들의 베푸는 호의에 넋을 놓고 쉽게 마음을 풀어놓았다. 찔금 찔금 던지는 빵부스러기배고픔을 달고 그들이 나를 위해 숨겨놓은 사랑일 거라고 위안했다. 금세 허기질 테지만 그것마저 물리칠 힘이 없었다.


그들의 건조함은 나를 외롭게 했다. 오랫동안 수용받지 못한 경험이 나를 아프게 했다. 한 사람에게서 오는 편안함, 따뜻함, 안정된 사랑에서 오는 충만감, 정서적인 지지와 충족욕구, 그것을 채우지 못해 허했다. 나는 밑 빠진 독이 아닐까? 스스로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고 그것에 모든 상황을 이어 맞추는 건 아닐까? 상대에게 온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의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애정과 인정 없이는 살 수 없는 걸까?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 없이는 살 수 을까?


나를 옭아매는 혼돈과 반복되는 불안의 근원을 찾고 싶다. 목적으로 사랑을 갈구한 나의 순수함은 잘못이 다. 애정의 욕구를 협박으로 욱여넣고 불안으로 덧칠한 들에게서 벗어날 것이다. 랑에 허덕이다 빵부스러기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것이다. 철저히 내 입장에서 내 마음속의 불편함을 찾아서 나를 인식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림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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