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뒷면 Oct 31. 2023

내 마음의 등불

인정욕구

나는 오늘 체육관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제대로 된 공격은 시도조차 못하고 깔리고 뭉개져서 버둥거리다 항복했다. 항복과 탈출, 초보의 수련은 수없는 깔림과 도망침에 있다. 이거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 서투른 나를 의심하는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그저 몸을 쓰는 것만으로 즐거워하던 내가 이기고 싶은 마음을 앞세워 욕심을 부린다.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익숙한 그 욕구에 나를 태우려 한다. 인정에 대한 이 멈추지 않는 집착, 무엇을 달성하고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욕구, 이것에 내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정 자체에 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못하고 채우려는 이 욕구는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직장에서나 대우받지 체육관에서 나는 만만한 초급 스파링 상대다. 체급이나 기술이 월등한 선배님의 봐주기 없는 수련에 망가지고 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설익은 열정만 가지고 덤벼드는 초보다. 공격도 방어도 완성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휘둘리다 울컥하기도 한다. 나는 무시당해서도 패배해서도 넘어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실수와 어색함을 용납하지 않으며 나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놓은 것은 아닐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세상을 원망하고 미워할 대상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사랑이 넘쳐서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모든 관계에 상처와 거절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표면적으로는 괜찮은 것처럼 반응하지만 막상 상처와 거절 앞에 서면 내 존재가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린다. 내가 나를 수용하는 경험이 부족해서 상대의 작은 표정하나 말투 하나에 사로잡혀서 같은 생각에 몰두한다. 생각의 고리는 부정적인 파장을 맴돈다. 이해하지도 못할 상대의 반응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방식으로 생각이라는 함정에 빠져든다. 상대의 태도에 내가 해소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을 투사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본다고 한들 그것에 치우칠 이유는 없다. 그것은 타인의 감정일 뿐이다. 너의 태도와 반응을 수용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민감함은 상대의 반응을 경계 없이 그대로 흡수해서 확장되었다. 내 것은 내 것대로 상대의 것은 상대의 것으로 두는 것이 필요했다. 스파링의 절반은 신경전이다. 상대의 태도에 밀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자연스러우려면 무게중심이 내쪽에 있어야 한다. 신경은 쓰이지만 경계는 흔들리지 않게 된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주면서 내가 나를 가장 궁금해하면서 무게중심을 찾아야 했다.


잠시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허무하고 무가치한 느낌이 든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비난하고 평가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렇게 해서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사랑받을 만한 아이로 만들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좀 더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받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나를 채찍질하고 불태우면서 하루를 살았다. 매일의 나를 점수 매기면서 내 기준에서 만족스러워야 한다고 압박했다. 상대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어떤 행동을 하는 일을 반복했다. 인정욕구를 위해서 가만히 있어도 될 일을 떠맡고 후회하는 일도 있었다. 경계를 넘은 상대의 요구에도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서는 일을 반복했다. 성과에 옮아 매고 채찍질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혔다.


열정을 불태울수록 에너지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충동적으로 직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상태가 찾아오기도 했다. 손발이 뻣뻣해지고 침이 마르는 긴장감과 답답함에 숨을 고르기도 했다. 저녁이 되고 나면 감당할 수 없는 피로감에 몸이 가라앉았다. 아침에 불태운 열정이 저녁이 되면 무기력으로 변했다. 주중에 쏟아부은 에너지는 주말의 탈진으로 이어졌다. 나에 대한 촘촘한 잣대가 나를 빳빳하게 만들었다. 내가 세운 높은 기준 앞에서 제풀에 꺾이고서는 절망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했다. 의무감과 압박감에 휩싸인 하루가 보잘것없다고 지겨워하며 귀찮아했다. 되돌이켜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덮어버린 날들이 많았다.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과 관계를 전부 쥐어잡으려 했다. 과하고 넘치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고서는 왜 저들은 내 맘 같지 않냐고 투덜댔다. 의욕과 열정을 아무 때나 뿜어대고 종종거리면서 왜 저들은 가만히 있느냐고 불평했다. 불안을 누르지 못 가만히 있지 못한 것을 부지런함이라고 둘러대며 으스댔다. 동정과 연민을 아무 곳에나 질질 흘리고 다니면서 왜 니들은 혼자만 잘 살려하는 거냐며 비난했다. 아이처럼 마냥 보호받고 사랑받기를 갈망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뿜어내며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내 감정을 감추었다.


일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목적이 정해진 일로 씨름하며 살고 있을까? 목적 없이 하는 일, 그저 즐거워서 하는 일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읽고 쓰고 땀을 흘리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정리하다 소파에서 팩을 부치고 음악을 듣다 졸음에 빠지는 단순하고 게으른 하루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나를 돌보고 인식하는 하루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작은 상쾌함과 소소한 뿌듯함이 만드는 명확한 기쁨이 인정에 굶주린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진출처 :pintere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