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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세뱃돈을 훔쳤다.

그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올해 열 살이 된 딸은 그 나이 또래에 걸맞게 자기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학교에서 실내화를 잃어버리는 건 물론, 튼튼하지만 가격이 좀 있는 슬리퍼라던지, 걸치는 겉옷류, 물통 등  많은 것을 너무도 자주 잃어버리거나 두고 다닌다.

대개 그것들을 챙기는 것은 아내의 몫이어서 아내가 딸의 뒤를 쫓아다니며 챙겨 오는 덕에 그것들은 대개 원래 주인을 찾아온다.

초등 3학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유아 때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딸에게 아내가 다그치고 달래 봤지만 허사다. 열 살배기 딸은 이제 그 말을 완전히 한쪽 귀로 흘려버리는 것 같다. 물건을 못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 하나 엄마나 동생, 그리고 나에게 챙겨 받기를 원한다.


평소 자기 물건은 손도 못 대게 할 만큼 욕심이 많은 고집쟁이 딸이 자기 물건은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 동생에 비해 손이 두 배로 가는 편이다. 오늘도 할아버지가 새해라며 전해준 세뱃돈 봉투를 잃어버릴 것 같아 아빠가 보관해 준다고 했다. 두 살 어린 동생은 흔쾌히 아빠에게 맡긴다. 하지만 자기 것에 손대는 걸 싫어하는 이 고집쟁이는 자기가 잊지 않고 챙긴다며 봉투에 손도 못 대게 한다.


비슷한 또래의 조카들이 자기 봉투를 잘 챙기는 것에 비해 제 봉투는 어딘가 너부러져 있기에 티브이 선반 위에 올려두고 집으로 올 때 꼭 챙기라 몇 번을 다짐해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올 때 이 녀석에게 봉투는 안중에 없다. 하다 못한 내가 또 아이들 장난감 가방에 담아 챙겨 왔다.


집에 와서 동생이 맡긴 봉투를 열어보자 그제야 자기 봉투를 찾는다. 여느 때처럼 챙겨 왔지만 일부러 없는 체했다. 장난을 칠 요량으로 그랬는데 딸아이의 반응은 쿨하다. ‘담에 가면 찾아보지 뭐’ 잔뜩 속상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성숙한 반응이다.


여느 때처럼 하루가 지나 봉투를 돌려주려고 했다.

“담부턴 잃어버리고 오면 안 돼. 네 물건은 꼭 챙기렴” 여느 때처럼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애정 어린 잔소리를 생각하고 말이다.

손주가 여섯이나 되는 덕에 봉투에  손주 이름이 적혀있다.

이른 아침 일어나 장난감 가방을 정리하며 아이의 세뱃돈 봉투를 탁자에 올려놓으려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녀석 지금 아빠의 머리 꼭대기에 서려는 건 아닌가? 저 의외의 쿨함은 진심에서 나온 행동일까?’ 아님 어떤 형태로든지 봉투를 찾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비롯한 행동일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봉투는 엄마나 아빠가 챙겨 왔을 것 같으니 그냥 포기한 듯한 제스처 일지, 아님 떼쓰기를 통해 구상권 청구하듯 돈을 부모에게 먼저 받으려는 건지, 진짜로 쿨하게 포기했을지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이대로 세뱃돈 봉투를 준다는 건 수 읽기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니 세뱃돈 이번엔 이 아빠가 꿀꺽하마. 인생은 실전이고, 세상은 잃은 걸 통해 배우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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