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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자전거를 제대로 탔다

덕분에 집에 올 땐 아내 차에 실려왔다.

목요일 점심, 뜬금없이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 평소 연락 없던 친구가 산행하는 사진을 하나 올렸다.

주말에 자전거 타기를 취미로 하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친구인데, 오래간만에 연차를 쓰고 등산을 하나보다 싶었다.


목금엔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터라 ‘담엔 날 맞춰서 같이 가자’ 말했는데 그 말이 올라오기 무섭게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내일 출근하냐?


마침 제출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오늘 마감했고, 오랜 시간을 들여 제출한 프로젝트도 리젝 됐고, 당분간 바쁠 것 하나 없는 나날들만 남아있었다. (일의 특성상 바쁜 시기엔 주말도 없이 자정을 넘어까지 바쁠 때도 많다.)


친구야~ 보통 조만간은 담날을 말하진 않지 않니?
그래 가볍게 한번 돌지 뭐


제대로 된 자전거도 없지만, 가볍게 몸 한번 풀 요량으로 가볍게 응했다. 학창 시절 자전거 국토 순례도 한 적 있었으니 내심 자신감도 조금은 있었다.


출근 없는 날, 아침 열 시는 부엉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겐 하루를 여는 시각이다. 늦은 새벽까지 시간을 보낸 덕에 아직 침대에 뒹굴거리고 있는데 친구 녀석의 연락이 왔다. 이제 출발하냐 물으니 벌써 주차장에 도착해있단다. 원래 열두 시에 만나 식사 후 라이딩이 일정이었는데, 역시 부지런함이 몸에 밴 친구다. 풀세팅의 친구에 비해 내 모습은 초라하다. 마땅한 라이딩 바지도 없어 대충 즐겨입는 냉장고바지를 걸쳐입고, 색깔도 다른 짝짝이 장갑을 대충끼고 나서는데 내 몹쓸 체력을 잘 아는 아내가 걱정스레 말한다.



혹시 힘들면 말해, 태우러 갈 테니


초보운전의 아내를 부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배려에 고마움을 전하고 길을 나섰다(이 말이 없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초보운전의 아내를 부르지 못했으리라, 작은 배려의 고마움이란).


결국 여기서 아내를 부르고야 말았다


소도시로 이사 와서 근처 자전거길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는데, 친구 덕에 제대로 자전거길을 달려볼 수 있었다. 봉하마을을 지나고 나니 화포천을 따라 밀양까지 낙동강을 따라 잘 정비된 자전거길이 나타났다.

강을 따라 멋진 길이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부산에서 쭉 살아온 덕에 이런 평지가 끝없이 이어진 것이 너무도 반갑고 고마웠다. 더군다나 강변을 따라 이어진 길이라니. 주변에 정돈된 가로수덕에 그늘도 적당하고, 강변을 따라 부는 가벼운 바람이 뺨을 스칠 때 느껴지는 감성이 너무도 좋다. 행복함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다. 바람을 가르는 이런 행복감을 언제 느껴본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조용히 행동으로 이끌어주는 고마운 친구

내가 너무도 바라고 있던 이 자전거 산책이었지만, 늘 시작하지 못했었다. 자전거 도로까지 캐리어 없이 오는 것도 걱정이었고, 이런저런 사소한 걱정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더랬다. 언젠가 해봐야지 하던 일이 하루 만에 이뤄지고 있었다.


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스스로 이 길을 달려올 수 있었을까? 


아마 오랜 후에야 이 길을 올 수 있었겠지. 스스로 생각이 무르익고, 실행되기까지, 그 에너지가 조금씩 모여 행동으로 만들어질 역치가 되기까진.


언젠간 해봐야지 다짐하고 있던 일을 이 친구가 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당겨준 것이다. 약간의 효소가 막걸리를 제대로 익혀주듯, 친구가 필요한 때에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다.


친구는 이번 한 달을 휴식일로 정했단다. 사회 초년생으로 입사한 기업에서 쭈욱 근무하던 친구는 이십 년 만에 첨으로 삶에 쉼표를 찍고 있었다. 그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덕에 이번 쉼 동안 하고 싶어 별렸던 일들을 다 해볼 거란다. 그래서 어젠 당일치기로 지리산 산행도 다녀오고, 오늘은 낙동강 자전거 타기, 담주엔 동해안을 따라 일주일 자전거 여행을 떠날 거란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우리가 40대 가장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지친 체력으로 쉬고 있는 내게 친구가 준 사탕, 그리고 여유로운 바람.


한참 자전거를 타다 보니 벌써 30킬로가 넘었다. 마음은 너무도 상쾌하고 기쁜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다리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질 않고, 엉덩이가 배겨 자전거에 앉기도 힘들다. 너무 평소 몸과 마음은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지론을 가진 내게 몸과 마음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자전거의 속도는 이미 한참 쳐져있어서 지금 속도론 집에까지 가려면 세 시간은 더 달려야 할 것 같단다. 집까지 남은 거리는 17킬로인데 지금 내 상태론 불가다. 창피함은 잠깐이다.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목적지를 다시 정하니 4킬로 정도만 더 달리면 된다. 자전거 앱으로 보니 19분 거리. 저 정돈 갈 수 있겠다 싶어 겨우 자전거에 다시 오른다. 겨우겨우 목적지에 다랐다. 초보운전의 아내는 벌써 도착해있단다. 아마 부근에서 길이 엇갈린 모양인데 내가 찾아갈 엄두가 나질 다시 전활 건다. 아내의 차가 보인다. 즐겨보는 오지체험 프로그램에서 구조 포인트에 닿은 느낌이다.

이때의 홀가분함을 늘 느껴보고 싶었다.


내겐 구조헬기보다 멋진 그대여.

나의 작은 성취를 글로 남긴다.

비록 초기 취지와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 중요한 이벤트를 글로 남겨본다. 글쓰기는 내게 상당히 의미 있는 성취와 기록이 되니 일상을 담는다. 초기 의도와는 조금 달라지더라도 글쓰기를 계속해보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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