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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커피물 온도는 62도로 부탁해요.

학창 시절 농담이 현실이 될 줄 이야.

나는 음식을 먹을 때 온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재료의 신선도, 적당한 염도 등 중요한 부분이 많지만 특히 중요시 여기는 건 음식이 입에 닿을 때 온도이다.


집에서 아무리 좋은 고기를 사 와서 구워 먹어도 식당에서 먹는 고기 맛보다 못하다 여길 때가 많은데, 나는 그 이유를 온도차로 여기고 있다.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그 차이가 불판에서 바로 집어먹을 때와 접시에 옮기고 나서 먹는 사이에 온도차라 생각한다. 그 몇 도의 온도가 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라 생각한다.  

집에선 고길 먹을 땐 무쇠후라이팬으로 온도를 유지한다.

따뜻한 국물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별도의 작은 뚝배기 그릇에 국을 덜어 먹었었다. 일반 그릇에선 국의 온도가 금방 식기 때문이다. 좀 유별나긴 하지만 한 끼라도 제대로 즐겁게 식사를 하는 것이 행복일 테니.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인원수에 맞게 뚝배기 그릇을 가지고 있다.


매일 커피를 내려마시며, 어느   맛있고, 어느  맛이 덜했다. 커피를 내리는 법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서도 그런 차이가 종종 발생했다. 차이는 맛있는 온도였다.  온도를 잡고 싶었다. 입에  닿았을  가장 기쁨이 느껴지는 온도. 그래서 버거운 출근길에 커피로 위안을 얻을  으리라.

커피를 내리고 나서 뜨거운 물을 섞어 온도를 대략 맞춘다.

내가 찾아낸 가장 맛있는 온도는 62도쯤이다.

조금 뜨거운 정도인데 약간 후르릅하며 마시기 좋다. 좀 식혀가며 마시기에도 좋은 온도다. 아내는 이 온도가 뜨겁다고 한다. 출근할 때 텀블러에 따스한 커피를 내려주는 고마운 아내. 내가 커피 온도를 맞춰 먹는 걸 알고 맞춰주는 아내.


학창 시절 사물함에 다기를 두고 녹차 잎을 우려 찻잔에 녹차를 마시던 나. 고리타분한 내게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었다.

00는 나중에 결혼하면 ‘여보~ 녹차물 온도는 00도로 부탁해요.’라고 할 거라고.

다들 웃고 넘겼지만 친구들이 옳았다. 이 고리타분한 나는 지금도 여전하다.


여보~ 커피물 온도는 62도로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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