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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 Nov 04. 2016

당신이 아는 이름 중 가장 특이한 이름은?

내 친구는 이름과 어울리는 친구였다.

난 초등학교 때 남자들과 주로 어울렸다. 여자들이라고 하면 나한텐 약간은 두려운 존재였고, 눈을 똑바로 잘 쳐다보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다. 집에서 강한 성격인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극성인 엄마 사이에 있다 보니, 그냥 가만히 있는게 절반은 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여파로 초등학교, 중학교..어쩌면 고등학교까지도 약간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까지 그렇게 여사친을 만들지 못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여자인 직원들한테는 '직원'보다 '여자'라는 개념이 좀 더 앞서는 것 같다.
 초증학교 때는 이름으로 놀리는 것이 한창이었다. 그건 그냥 단순 놀리는 게 재밌어서 그런건지, 관심의 표현을 놀리는 걸로 한간지는 몰라도 어렸을 때는 그런 것에서 희열을 느꼈다. 난 내가 두려워하는 여자애들을 그렇게 놀리는 것에 자존감을 높였던 것 같다. 마치 가상의 적을 설정해놓고 그 적을 묵사발을 내버리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과는 같은 원리였다.
 내 짝꿍 장빛나리는 어머니가 굉장히 고심해서 지은 이름인 것 같았다. 성은 어쩔 수 없다치고 한글이름은 내 시대에 그렇게 흔한 이름은 아니었다. 한자가 들어가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고, 그런 한자이름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약간은 고리타분하게 느꼈던 그 시대의 깨어있는 사람들이 민중의 언어 한글로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이름을 자기 자식들에게 지어줄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심지어는 뉴스에도 앵커가 잠깐의 시간을 할애하여 요즘 순한글로 이름을 짖는 것이 유행이라는 시시콜콜한 뉴스를 전달했던 것이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장빛나리는 그 정도로 나에게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이름이다.
 그 애는 순한글로 만들어진 이름이 자신을 얼마나 괴롭혔을지 몰랐을꺼다. 빛나리는 정말 그 아이를 빛나기를 염원하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이름이었겠지만, 어린 초등학교 시기, 흩날리는 민들레씨를 보면 민들레를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며,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나이에 탈모도 없는 그 친구의 별명을 빛나리로 만들어버렸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별명이었다.
 그러나 그 애는 나보다 키가 컸던 만큼 성격도 조숙했나 싶다. 굉장히 시크하게 그리고 퉁명스럽게 '그래 나 빛나리야'라고 말하며, 그냥 남자들의 무의미한 조소와 여간 짖궂은 장난질을 갈대사이의 바람처럼 쏘옥 빠져나가 바렸다.
 그러던 어느날 펑펑 우는 그 아이. 반년 정도의 놀림에 시달린 그 아이는 결국 눈물을 내보였다. 뭔가 잘못된거다. 그 아이는 더 이상 갈대 사이의 바람이 아니었다. 그 날은 무너져버린 젠가처럼 와장창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단순 특이한 이름때문에 받았던 공격, 지적, 장난이 결국 폭파된 댐에 넘쳐나는 물줄기처럼 감정을 뒤흔들었다.
 덜컥 겁이난 나는 갑자기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를 했다. 괜찮냐고. 미안하다고. 그때는 사과하는 센스조차도 상실해버린 것 같았다. '뭐가 미안한데?'에 대한 답변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울음을 다행이 멈추었다. 나를 향해 아무런 말도 안 했다. 그저, 울음을 멈추고 그날 종례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와 다시 말하기까지는 일주일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나는 그 이후부터는 그 친구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적이었던 그 친구의 밑바닥을 옆에서 감정적으로 느끼고 난 뒤 난 비로소 그 친구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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