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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 Jan 30. 2017

낭만적 Exit 그리고 그 이후 일상적 고민 No.1

창업도 해보고 회사 매각도 해봤지만, 나에게 남은 건 뭐였을까. 

어느덧 내 회사를 매각하고, 레코벨에 들어온지 2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벌써 2017년 2월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지만, 시간은 이미 흘렀고, 나는 대표라는 타이틀 즉 선장에서 해임되고, 본부장이라는 타이틀로 회사의 중간 직책을 맡게된지가 벌써 저렇게 시간이 흘렀다. 회사 매각을 결정할 당시에는 우리 팀원들과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었고, 나도 그 당시에 그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와서도 우리의 성장은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나아갈 수 있었고, 지금도 훌륭한 사람들 곁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전자공학과를 나와서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첫 직장생활을 했다. 나는 향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내 통장에 이체되어 들어오는 엄마 용돈으로는 받을 수 없었던 0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거대한 숫자를 처음보곤 꽤나 흥청망청 돈을 쓰고 그 시절을 보냈다. 나의 길은 오로지 유학이라며, 나의 길은 오로지 엔지니어라며 별다른 가능성을 후보군에 올리지도 않은 채 그렇게 아무런 대비없이 살았다. 어느 순간 나와 반도체 칩 설계 엔지니어는 상극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내에 고객사라고는 삼성전자 하나밖에 없으며, 그 외의 모든 기업들은 다 죽어나갔고, 이 업계에서는 조금만 잘 나간다고 하면, 삼성전자한테 견제를 받는 그런 말도 안되는 시장의 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착취당하는 반도체 설계의 엔지니어의 삶...대학원 랩 생활과 비슷한 회사 분위기가 나의 반골기질과 이성의 관심에 대한 강한 집착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난 좀 더 '대체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인 '컨설팅', '금융' 그리고 아직 포기 못한 '유학' 이 세가지 길을 동시에 준비하며, '컨설팅'에 조금 더 무게를 실고 있는 중이었다. 


너무나 많았던 청춘의 진로 고민들


그러던 중에 갑작스럽게 '내 사업'이라는 단어에 대한 동경을 다시금 환기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선배 한명과 동기 한명이 같이 창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창업이 뭐 그렇게 쉬운거냐?'


그 당시에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이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던 시간이 많았을 때 (아마 2010년쯤 이었을 것이다) 나는 갑자기 우후죽순 생겨나는 인터넷 회사들을 하나씩 지켜보기 시작했다. 학교 동기가 창업자가 있었던 티몬, 그리고 내가 열심히 사용을 시작했던 이음 등이 아주 대표적이었는데, 조금씩 내가 상상하던 '인터넷 사업'의 결과물들을 내가 이용해보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나의 가까운 지인들이 창업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셜커머스 메타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그랬다. 소셜커머스가 우후죽순 생겨났기 때문에, 수많은 딜들이 있었고, 이 사이트는 그 중에서도 좋은 딜을 만화와 같은 컨텐츠 형태로 소개를 시켜주고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었다. 처음에 약간의 자극적인 마케팅 방식으로 이목을 끌었으나, 너무 이른 형태의 서비스였다. 결국에는 늦게 나온 '쿠차'와 '쿠폰모아'가 그 시장의 지분을 모두 가져갔다.  그러나 그 메타서비스를 접고 피봇하여 (사실상 피봇보다는 재창업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개인화 영화 추천 서비스로 턴오버했다. 그것이 '와챠'의 시작이었다. 


엔지니어링 베이스의 전문성을 더 키우는 것을 포기하고 나도 낭만주의적 창업에 동참했다. 이 새로운 국가 선언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았고, 그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은 선후배가 아닌 이전 반도체 업체에 다니던 동료들 위주로 편성이 되었다. 나는 그에 대한 선봉장을 맡게 되었고, 더이상 엔지니어가 아닌 회사의 모든 일을 관리해야되는 사람으로서의 포지션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발을 하면서 아직 남아있는 코딩 능력을 회사 성장에 기여하려 했으나, 그보다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회사의 미어캣과 같이 기회를 염탐하는 롤을 자처했다. 


항상 대표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사업을 3년, 그리고 레코벨 합류 그리고 2년. 

나는 엔지니어와 기획, 영업을 모두 경험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에 대한 롤을 그 문제없이 수행했다. 그리고, 치명적으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찾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무언가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창업가로서 나는 시장의 기회를 발견하려 무던히 애썼고, 결국 회사 매각을 함으로써, 초반에 창업가 능력에 대한 입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공룡 입성으로 쪼그라든 시장이 되어 그 노력이 빛을 바랬고, 레코벨 합류 후에는 수많은 B2B 영업/기획/알고리즘 개발을 하면서 수많은 업체들을 마주하고 있지만, 국내 B2B 시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다. 담당자와 상사를 만족시켜줘야되는 스킬들이 필요한데, 그것을 위해서는 전문가 뺨치는 PPT 또는 통계 차트들과 상대방을 매료시키는 말빨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러저럭 할 뿐이지, 대기업 임원들의 뇌에 싸다구날릴 수 있을 정도의 말빨이나 발표는 아직도 익숙치 않다. 


쉽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은 회사 매출을 책임진다. 


 돌이켜보면, 난 좀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다. 창업가로서, 직장인으로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고. 그러나 특정 업무에 대해서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의 업무를 떼서 하나씩 손에 쥐어줬다. 그러다보니, 한 분야만을 지독하리만큼 끝까지 파는 것에 대해서 좀 소홀히 했었던 것 같다. 어느정도 적당히 하다가, 끝까지 파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특정 분야 최고 전문가가 아니라, '적당히만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젠 적당히만 하는 사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적당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가질 수 있을정도로 잘해야지만 충분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이제 '전문가'라는 칭호를 선사받을 수 있을 정도로 깊게 공부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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