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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 Apr 11. 2016

주말 아닌 '주말'

24시간이 모자란 요즘

#갑자기 대학교 친구 중에 두 명이나 결혼한다고 하여, 요란하게 홍대에서 술을 마신 다음 날인 오늘. 난 목이 너무 아팠다. 이게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술을 마시며 콧구멍을 벌렁벌렁거리면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다가 목이 나간건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은 일어날 때부터 물한잔을 하지 않으면 가래가 나올 것 같은 상태였다. 첫 술은 빼갈을 먹어서 그런지, 목만 아프고 머리는 금방 회복 가능할 정도의 가벼운 아픔이 있었다. 가볍게 물 한잔을 마시고, 깨어난 숲속의 공주와 같이 밝은 빛이 착륙하는 거실 소파에 살포시 앉았다. 이미 가족 중에 누군가가 보고 있던 TV를 옆에서 같이 보기 시작했다. 


#옆에는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새로운 직장 생활을 상상하며, 어제 대전에 집을 알아봤더랬다. 실평수 17평정도의 아주 깔끔한 새아파트. 사진도 보여주면서 그 집에서의 삶은 정말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세마디쯤 할 때쯤, 어제 계약한 그 아주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계약에 대해서 거짓말한 내용이 있나보다. 표정이 심각했다. 그리고는 엄마가 물을 마시면서 오더니 소방수역할을 자처하며, 전화기를 들고는 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진하다느니, 부동산을 잘 모른다더니, 융자를 기고 하는게 좋다느니, 갑자기 그 아주머니한테 부동산 시장에 대한 퀵한 과외와 함께, 뭔가 쇼부를 보시고는 탁탁 마무리했다. 뭔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부동산 투자의 워렌버핏과 같은 우리 엄마는 부동산 빠꼼이같았다. 나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대화를 마치고 안방에서 아이폰을 들고 나오는 엄마를 보니 눈이 부셨다. 참 멋진 엄마다.


#이제 다같이 무도 시청 시간이다. 매월 6900원정도를 POOQ에게 헌납하는 이유는 언제든 가족들과 무한도전을 다같이 볼 수 있어서였다. 토욜에 방송한 무한도전을 다음날 아침 칼칼한 목상태에도 볼 수 있다. 거기에 어머니가 해준 김치말이국수와 같이 먹으면, 무한도전이 더 재밌다. 오늘 처음 만들어준 것이긴 하지만, 저 정도 일반화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김치말이 국수와 무한도전은 그정도로 꽤나 어울렸다. 


#요즘 나한테는 일요일 오후는 왠만하면 일 + 독서를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정의를 해버리니, 오히려 토요일에는 맘껏 스트레스를 푸는 노는 걸로 온종일 투자할 수 있었다. 참 놀기 좋은 명분이다. 오늘도 그 명분을 따르고 지키려고 하는데, 왠걸, 산책하자는 여자친구의 문자. 


아..집에서 여유있게 일하고 싶었는데, 산책하고 집에 다시 들어와서 일하면, 너무 빠듯할 것 같았다. 


난 네이버 뉴스를 뒤졌다. 항상 네이버뉴스는 나에게 영감을 준다. 나에게 사회에 아주 중요한 이슈들을 나에게 물어다 주면서 아주 쓸데없으면서 눈길을 뺏는 뉴스들을 전달해주면서 내 시간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영감을 얻으러 네이버 뉴스에 들어갔다. 


"오늘 미세먼지 주의보.. 집에 있을 것" 


난 여자친구에게 중국에서 날라오는 미세먼지는 몸에 매우 좋지 않고, 너의 집 창문조차도 닫아야할 것이라는 말을 전달했다. 여자친구에게 공포를 심겨준 것이다. 


여자친구는 공포에 떨었다. 미세먼지가 혈관으로 들어가 체내에서 축적되며, 혈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괴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매우 무서웠을 것이다. 난 내 설득하는 모습이 꽤나 자랑스러웠다. 


# 하지만 안 보면, 아쉬운 건 뭐 사귀는 사이라면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난 관절을 혹사시키는 산책은 하지 말고 서래마을이나 가서 커피나 마시면서 각자 할일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여자친구도 흔쾌히 오케이. 그것이 오후를 다 잡아먹을 거라 상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 대략 맛있는 파이,크로아상 등등과 커피를 시켜놓고 일을 시작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페북을 시작했다. 여자친구가 면박을 줬다. 한대 쥐어박힘을 당하고. 나는 일을 했다. 나름 집중이 잘 됬더라.


여자친구와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한다는 건 꽤나 효율적인 것이었다. 모든 의무를 다 해내는 효과처럼 보이는 효과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 덤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영화도 봤다. '스포트라이트'라는 저널리즘에 관련된 영화인데, 실화기반으로 영활르 참 잘 만들었다. 미국판 '도가니'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깊은 믿음,신앙과 거기서 파생되는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관행들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소재가 아동성폭행이라 이를 갈면서 봤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구조체에 대한 문제점으로 풀어내서 근본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자세가 참 흥미로웠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이 멤돌았는데

"신부수업을 듣는 신부들, 굉장히 고된 성경공부를 오랫동안 하고, 절제된 삶을 몇십년동안 살아가는 신부들이 평범한 인간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엄마의 고됨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저 신부 시스템은 카톨릭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권위 만들기 작업 중 하나일 뿐이다."


별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참 재밌게 봤다.(급 마무리 후다닥)


#주말에도 끊임없는 이벤트로 나는 시간이 빠르게 죽어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 주말이 꽉찬 주말이라는 것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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