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잔잔한 물결이 이는 바다를 보면 모처럼만에 행복을 느꼈다.
자신의 몸이 아프면서 이상하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행복한 마음보다는 어딘지 우울하고 기분이 항상 찌뿌듯했는데, 오늘 아침은 모처럼 기분이 아주 상쾌하고 행복한 마음까지 일렁였다.
아무래도 어제 찾아온 목사가 사는 건너 마을에 갈 생각을 하니 벌써 예수님의 만찬상에 자신도 앉아 있는 것 같고 교회에서 잔치상이라도 자기에게 차려줄 것처럼 한껏 기분이 들떠버린 것이다.
방개는 집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먹을 거라고는 감자 한 개 없는 썰렁한 그 허름한 집을 나서서 아픈 배를 이끌고 교회로 갔다. 그런데 교회에는 개미 한 마리도 없고 아주 고즈넉하니 조용하기만 했다.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대다가 목사가 사는 것 같은 작은 초가집을 둘러봐도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커다란 나무문으로 된 성전 입구에 문을 열어보니 그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성전의 한가운데는 나무로 된 커다란 십자가만 큰 책상 같은 높은 탁자 뒤에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저 책상같이 큰 탁자는 목사님이 설교할 때 쓰시는 책상 같다고 방개는 생각을 했다. 교회는 한 이백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시골에서는 꽤나 큰 교회였다.
나무로 된 의자들이 나란히 있는 게 아주 깔끔하고 정갈했다. 그러나 방개는 그런 교회 분위기에서 이상하게 자신은 그 의자에 앉아보기가 두려웠다. 어쩐지 자신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죄를 많이 지은 죄인이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면서 아무래도 예수님 만찬상 같은 그런 이상스러운 잔치상에는 자기를 불러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얼른 그 성전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는 공연히 배도 아픈데 이곳까지 힘들게 왔나 보다 하고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부화가 나는 걸 참고 방개가 막 교회 마당을 나가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여자가 목소리가 시냇가에 흐르는 물처럼 잔잔하게 들려왔다.
"저 누구신지요?"
여자의 목소리가 참으로 나긋하니 부드럽고 매끄러워서 방개는 그 목소리에 홀린 듯이 뒤돌아섰다.
연분홍색 긴 원피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흰 피부의 고운 여자가 목사님 집에서 나오면서 방개를 부른 것이었다.
기풍 있는 가문의 양반집 안방마님처럼 부인의 자태가 참으로 덕스럽고 얌전했다.
"예, 지지는 저 아래 빈집에 있는 방개라구 하는디유, 어제 목사가 와서 날 기도해 줬는데 교회가 여기 있다구 하셔서 와봤지유. 그만 갈께유."
"어딜 가세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실래요. 목사님은 지금 심방 가셔서 안 계시지만 잠깐 거기 의자에 좀 앉아계시면 제가 들어가서 먹을 것 좀 싸가지고 올게요."
아무래도 여자는 목사의 아내 같았다. 그런데 방개는 자기가 배가 고픈걸 어떻게 알고 여자가 먹을 거를 싸가가고 나온다는 건지 그게 너무 놀라웠다. 방개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교회 마당에 있는 긴 나무 의자에 앉아서 여자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방개는 자기가 목사를 그냥 목사라고 불렀는데, 목사의 아내는 목사에게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 어쩐지 호칭을 잘 못 부른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목사집에서 나온 여자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커다란 광주리였다. 그런데 그 광주리 안에는 먹을게 가득하니 채워져 있어서 방개는 그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온갖 과일과 고기, 떡이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빵과 부침이까지 어지간한 잔치상에 있는 건 그 광주리 안에 다 들어있었다.
"이 이걸 저 주시는거래유, 아이구 워턱한데. 이걸 다...."
방개는 끝말을 이어가질 못했고, 더 이상 할 말도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저 입에서 벌써 침이 고여서 그 먹을 것을 그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고 싶은데 너무 고상한 여인 앞에서 남자가 체신없이 먹어댈 수가 없어서 인사가 잘 나오질 않았다.
"네 성도님 드리라고 목사님이 오늘 아침에 준비해 놓고 나가셨어요. 오늘 성도님이 교회에 찾아오실 것 같다고요. 목사님이 오늘 먼 곳에 심방만 아니면 성도님 집으로 이걸 가지고 가시려고 했거든요."
"네 지한테유, 이걸 가지구유."
방개는 왠지 가슴이 뛰고 두 방망이 치듯이 두근거리는 게 자기가 목사한테 잘 것도 없는데, 어쩌자고 이런 호사스러운 음식을 먹게 되는지 영문도 알 수 없지만, 목사가 자기에게 이 좋은 음식을 주려고 광주리 하나 담아 놓았다는 것과 그리고 자기가 교회에 오늘 올 줄 알았다는 것이 너무 기묘해서 그의 가슴이 두 방망이질 쳤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하나 님하고 뭔 소통을 하는가 보다 싶고 겁도 났기에 방개는 얼른 목사의 아내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목사의 아내가 광주리를 방개의 가슴에 안겨 주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웃으며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듯 그녀도 고개를 깊이 숙이는 것이 아닌가.
방개는 커다란 광주리에 들어 있는 음식에 눈을 맞추다가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죄스러운 생각도 들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어 걸음을 오리처럼 약간 기우뚱기우뚱하며 걸어서 그 교회 마당을 나왔다.
방개는 갑자기 그 목사의 아내 앞에서 이상하게 걸음이 잘 걸리질 않았기에 오리걸음을 걸으며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교회 마당을 다 나왔을 즈음 방개는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목사 아내가 그 자리에 선채로 그대로 가만히 방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방개의 마음에 다시 이상한 마음이 들며 자신도 모르게 방개는 광주리를 마당에 살그머니 내려놓고는 다시 뒤돌아서 그 목사의 아내 앞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방개는 다리가 휘인 듯이 엉덩이는 뒤로 빠지는 이상한 오리걸음을 걸으며 목사의 아내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를 말을 툭하니 내뱉었다.
"저 말여유, 혹시 이 교회에 지 같이 더럽구 냄새나는 사람두 댕겨두 돼유."
목사의 아내가 입에 하얀 박꽃을 물은듯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당연하지요. 언제든 오세요."
방개는 그 말을 듣자 자신이 공중에서 지금 곡예를 하는 곡예사가 된 것 같은 신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이번에는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듯이 뒤도 안 돌아보고 교회마당을 가로질렀다.
마음 같아서는 목사 아내 앞에서 물구나무서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신나는 마음을 누르고 송아지가 외양간에서 처음으로 나올 때처럼 신이 나서 겅중겅중 뛰었다.
방개는 교회마당을 한참 지나서 산비얄에서 겨우 그 신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광주리를 붙잡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팥고물이 그득하게 들어 있는 팥고물떡과 노란 콩가루와 호박꼬지를 넣어서 만든 호박시루떡이 어찌나 단지 안은 자리에서 배가 터지도록 떡을 다 먹고 과일을 이것저것 먹고 나니 통증으로 수시로 배가 아프던 것도 잊을 수가 있었다.
방개는 구들도 다 고장이 나서 불조차 땔 수 없는 허름한 폐가였던 이 빈집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온 그 기분 좋은 느낌을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 기분은 자기가 순자를 짝사랑하는 마음 하고도 달랐고, 엉가엄마가 제정신이 돌아와서 자기에게 비단이불에 옷장까지 갖추어 놓고 손님대접을 융숭히 하며 가족처럼 대하는 것과도 다른 표현하기가 곤란한 아니 어쩌면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특별한 대접을 목사 부인에게 받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슨 먹을거리나 입을 거리를 받아봤을 때 대다수는 방개를 거지취급을 하거나 비렁뱅이 취급을 했지 목사의 아내처럼 공손하고 예의를 갖춘 인사를 받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었는데, 이런 융수한 대접을 받고 보니 방개 자신이 하루아침에 자신이 아주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내 몸뚱이서 이렇게 썩은 내도 나고 시큼털털한 냄새도 나는디 , 워떡하지, 워디 가서 목욕을 하고 내일은 교회을 다시 가봐야하는디."
방개는 우선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몸에 때를 불린 다음에 집에 와서 불을 때서 더운물로 목욕을 하며 때를 박박문 대서 꺼멓게 더께가 낀 자신의 때를 돌멩이로 밀어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몇 번 더 교회를 갈지는 물러두, 우선 몸에 때부터 딲어야 하것어.
아이구 때가 워째 이리 많데.... 누가 날 교회에 오라구 하것어. 당최 이건 아니여."
방개는 마음이 급해서 저녁 바다의 낮은 물가에 가서 몸을 담그며 때마침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바다에 몸을 담그리 저 멀리 바닷속으로 흠뻑 빠진 노을이 방개의 마음을 둥글둥글 잘 익은 호박처럼 주홍빛으로 물들여 주었다.
그리고 밀물과 썰물은 방개가 열네 살에 한국전쟁에서 무시무시한 총성을 들으며 전쟁통에 소년병으로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공포에 질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던 그 무서웠던 전쟁의 기억들을 소멸시켜 주었다.
방개는 그날 그 바닷가에서 이상한 경험을 한 것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전쟁통에서 포탄소리와 친구 헌병이 가 사지가 찢겨서 죽었던 무시무시한 공포가 생각이 나도 하나도 무섭지를 않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와서 집에서 더운물에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누워도 예전에 그 전쟁통을 다시 떠올려도 포탄과 총성이 울리던 전쟁터의 어떤 장면도 두렵지가 않았고, 열네 살 소년병이었던 한국전쟁 당시의 공포가 그날 밤에는 환청으로 들려오질 않았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환청도 없고, 무서움도 없고, 그 어떤 방해의 소리도 없이 방개는 깊은 잠을 자면서 어렴풋 바닷가에 들려오는 파도소리만 아련히 들으면서 오랜만에 달디 단 잠을 잤다. 바다의 소라와 고동들이 그리고 바다의 깊은 해수면 아래의 물고기들이 각기 다른 악기소리를 내는지 어디선가 천상의 악기들이 연주를 하는 것처럼 방개의 그날 밤 꿈결에는 바다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의 악기소리들만 들려왔다.
방개는 목욕재계를 한 자기를 받아줄 교회에서 무슨 일인지 모를 재미난 일도 슬픈 일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멀리 있는 친구 덕구와 사랑하는 순자, 그리고 엉가엄마, 덕구의 조카들 이쁜 엉가가 보고 싶어졌다.
죽으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 진 것이 아무래도 자신이 금방 죽지는 않으려나 하는 안도감으로도 방개를 고요히 감싸 안았다. 어느새 깊어진 병이 피도 토하고 고름도 쏟아지는 것을 보며 혼자 두려움에 떨던 몇 달간에 시간이 멈춘 듯이 새벽의 미명이 밝게 그 집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