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온 것.

by 권길주

철희는 땀에 젖은 바지가 거의 벗어질 지경이 되어도 뛰고 또 뛰었다. 산길을 향해 뛰고,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로 뛰고, 비탈진 낙엽 위를 미끄러지며 뛰었다. 그러나 철희가 위험한 곡예를 한 것은 커다란 바위들이 있는 산의 정상 즈음에서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뛰고 나서였다.


"아악........ 악"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오면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철희가 바위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었다. 철희를 잡으러 쫓아가던 방개가 더 뛰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심장을 부여잡았다. 자기 숨이 끊어질 듯이 방개는 놀라서 한걸음도 더 이상 걷지를 못했다.


"철희야, 기다려."


어느 사이 달려왔는지 젊은이가 번갯불같이 철희가 떨어진 바위 아래로 쏜살 같이 달려 내려갔다. 철희는 바위 아래에서 큰 소나무 가지에 몸이 턱 하니 걸쳐 있었다. 사지가 널브러진 채로 집채만 한 소나무 위에 어린 철희는 걸쳐 있었다. 젊은이는 나무를 타는 거는 안 해봤는지 그 아래서 방개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방개가 달려가보니 철희의 모습이 꼭 하늘에서 잘못 떨어진 천사처럼 애처로웠다.


"아이구 이 녀석 하늘이 도왔구먼유. 지가 올라갈테니 잠깐 기다려봐유. 잠깐 기절했을지도 모르니께 조심해서 데리고 내려올께유."


방개는 나무 타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떠돌이로 살면서 여름이면 시원한 소나무나 떡갈나무에 올라가서 잔 적도 많아서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숭이를 능가하듯이 방개가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자 젊은이는 철희가 떨어져서 지금 생사를 헤매는지는 둘째치고 너무 놀래서 방개의 커다란 궁둥이를 아래에서 쳐다보고는 입을 떡 벌리고 사람이 나무 타는 재주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야, 철희야 정신 차려라. 여기 소나무 위니까. 잘못 움직여서 떨어지면 죽어."


철희는 하늘이 노랗고 별이 반짝거리는 걸 보니 여기는 아무래도 꿈속인 것 같은데, 왜 방개아저씨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다. 다행히 철희는 바위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지만, 금방 깨어났다. 방개는 철희가 떨어진 소나무 가지가 워낙 사람 장딴지만큼 두꺼운 것을 보고 올라왔기에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았기에 철희를 깨워서 아이를 등에 업었다.


열네 살 삐쩍 마른 철희는 방개의 등에 매달려 간신히 소나무에서 내려왔다. 젊은이가 철희를 방개의 등에서 내려주자, 철희는 가만히 땅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니 갑자기 자기 주위를 두리번대고 무엇인가를 막 찾기 시작했다. 그때 젊은이가 철희의 반쯤 혼이 나간 듯에 얼굴 앞에 로렉스 시계를 디밀었다.


"철희야 너 이거 찾는거지. 시계."


순간, 철희의 눈이 반짝하며 불쏘시개처럼 빛이 났다. 철희는 순식간에 젊은이의 손에서 시계를 낚아챘다.


"너, 그거 갖고 또 도망하고 싶니. 그럼 가지고 가. 우리는 이미 그 시계가 화가선생님 꺼 인 줄도 알고 그게 얼마나 비싼 건지도 알아, 그런데 그 물건은 네가 팔 수도 없고, 넌 그 물건을 가지고 또 달아나면 이제는 내가 널 경찰에 신고할 거야. 도둑으로.... 선택은 네가 해. 그걸 네 화가선생님께 갖다 드리고 네가 잘못을 빌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고 착하게 살 것인지 아니면 그걸 가지고 또 달아나서 내가 널 경찰에 신고할 테니 네가 오래도록 감옥 생활을 하면서 죄를 뉘우치든지. 선택은 네가 한다."


젊은이가 아주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조교처럼 차갑고 냉정한 표정이었다. 철희가 그의 목소리와 표정이 전혀 다른 모습에 기가 질렸는지 어깨를 움츠리고 숨을 골랐다.


"철희야, 네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네 인생은 달라지는겨. 네가 이걸 가지고 도망을 가면 넌 평생 감옥살이를 들락날락할 수도 있는겨. 왜냐면 한번 찍혀서 교도소에 가면 네 인생이 필 일이 뭐가 있겄냐. 그러나 네가 이 시계 하나를 포기하면 넌 앞으로 멋진 화가도 될 수 있구, 나중에 화가 돼서 유명해지문 예쁜 색시도 얻어서 장가두 갈 수 있는겨, 철희야 인생이 달린 문제여 잘 생각해야혀. 여기서."


철희는 그 시계가 로렉스인지도 몰랐고, 그 시계의 값이 얼마나 비싼지도 몰랐다. 철희는 또래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어서 그 시계를 자전거포에 가서 헌자전거 한대와 바꾸려고 했던 것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아침이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왠지 참 부러웠던 철희의 소박한 꿈이 엄청난 일을 낸 것이었다.


시계를 다시 젊은이에 손에 올려놓은 철희는 눈물이 핑하고 돌면서 자전거를 포기하고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철희가 헌자전거를 한대 사려고 화가선생님의 시계를 훔쳤다는 말에 방개와 젊은이는 실소를 멈출 수가 없었다.


철희는 자기가 훔친 시계가 서울에서 집도 한채 살 수 있는 가격이라고 하자, 너무 놀랜 나머지 화가에게 자기는 시계를 가지고 갈 수 없다고 방개나 젊은이가 대신 가 달라고 손을 싹싹대고 빌었다. 그러자 젊은이가 그럼 셋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교육차원에서 철희를 혼자 보내고 화가선생님께 단단히 혼나도록 해볼 참이었지만 철희는 시계가 그렇게 비싼 것이라고 하자, 얼굴이 노래지면서 자신이 정말 감옥엘 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철희에게도 아버지의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시계를 돌려받은 화가는 달라진 모습을 하고는 철희를 대했다. 이제는 자기가 진정한 어른이 되고, 철희의 스승이 되지 않으면 젊은이에게 무슨 책을 잡힐까 하여 눈치를 본 것도 있고, 이번에 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본 것이었다. 그는 시계를 받자마자, 곧바로 서울에 올라가서 시계를 처분했다. 그리고 그는 헤어진 아내에게 로렉스 시계를 판 돈을 거의 다 주고 왔다고 했다.


"그건 애초에 내 물건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내가 아내를 선택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비싼 로렉스 시계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그 여자한테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내 전시회 할 때 액자값만 남기고 다 주고 왔어요. 지금은 남의 남자의 아내지만, 아내도 나와 헤어지고 또 가난한 화가랑 재혼했거든요. 내 후배뻘되는데, 둘은 무척 사랑하고 사는 거 같고 해서 나두 무척이나 시기도 나고 질투도 났었지만, 이제 한번 돌아선 여자의 마음을 잡기는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둘이서 잘 살으라고 돈을 다 주고 왔네요. 나야 이제는 철희나 잘 가르쳐서 저 녀석이 내 제자 노릇 잘하문 좋구요."


"아이구, 화가선생님 이번 전시회는 대박 나실 거 같은데요. 하하하"


젊은이가 화가의 변한 마음에 축복을 부어주었다. 여름 바다에 노을이 붉고 찬란하게 바다로 떨어졌다. 넷은 그 노을을 보면서 오늘따라 여름 바다의 노을이 지는 시간은 유난히 길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뻥쩍빨에 뚱뚱한 화가는 그림에 몰두했고, 철희도 방개가 사준 헌자전거를 타고 부지런히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다. 철희는 시계 사건으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이리 뒤뚱 저리 뒤뚱거리며 엉덩이를 하늘에 쳐올리고 헌 자전거를 타고 그림을 그리러 바닷가를 헤맸다.


"철희 녀석은 왜 저렇게 자전거를 웃기게 타나 몰라요. 꼭 엉덩짝을 씰룩 씰룩대고 타니 .......꼭 거위가 병아리를 잡으러 뒤뚱대며 마당을 막 뛰어다는거 같기도 하고, 암탉이 마당에 나온 쥐를 쫒아서 쏜살 같이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웃기지 않아요."


"쟤가 성격이 급하고 마음이 조급하니까 항상 급해서 그래. 빨리 달리려고 하는데, 다리는 짧지 자전거가 아무래도 조금 높아, 어른거를 사줬더니 말야. 얘들이 타기에 맞는 자전거가 헌거는 없더라구. 그래서 내가 어른거를 사줘서 그렇치 뭐......"


"방개아저씨 ..... 여기요, 여기에 모시조개 많아유. 이거루 저녁에 칼국수 해줘유."


바닷가 모퉁이 갯벌에서 헌자전거를 받쳐놓고 철희가 젊은이와 방개에게 소리를 지른다. 그때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화가가 갯벌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 말고 노란 택시가 방개네 집 앞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그 택시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춰서 찰칵하고 소리를 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멋있는 코로나 택시에서 내린 여자는 핑크빛 원피스를 정강이까지 내려오게 입은 엉가엄마 윤희였다. 화가의 카메라가 자동으로 엉가엄마 윤희를 멀리서 포착해서 찍었다. 그녀는 머리에는 챙이 넓은 하늘색 망사 모자를 쓰고 있었다. 화가의 가슴이 이상하게 부풀어서 금세라도 터질 듯이 심장에서 심하게 쿵쾅대는 소리가 났다.


"잉, 엉가엄마가 왜 왔댜, 무슨 일이지. 또."


방개는 멀리서도 엉가엄마를 알아보고는 반가우면서도 왠지 그녀가 또 갑자기 자기 집에 찾아온 것이 그다지 기쁘지만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엉가엄마에게 또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택시기사가 차 뒤에 트렁크에서 짐을 몇 보따리를 내려주고는 그녀가 주는 택시비를 받고는 허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이고는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고 노란 택시는 떠났다.


엉가엄마가 마당을 들어서는 것을 보며 방개도 화가와 젊은이와 함께 갯벌을 지나서 방개네 집을 향해서 걸었다. 세 남자는 서로가 달리 말을 하지 않았지만, 화가의 가슴은 호기심과 궁금증보다는 알 수 없는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방개는 그때까지도 엉가엄마의 이름이 윤희인 것도 몰랐다. 윤희는 뽀얀 얼굴에 가늘게 뻗은 허리와 긴 다리가 핑크빛 원피스를 입고 마당에 서 있었는데, 아직도 삼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세련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빛은 왠지 핏기가 없이 창백했고, 몸에 생기도 없어 보였다. 방개는 엉가엄마를 보자마자 그녀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쩐 일이래유, 엉가엄마, 이 더운 날에유..."


엉가엄마는 갑자기 세 남자가 등장하자 약간 놀란 듯이 세 남자를 두리번 대다가 방개에게 다가가 얼른 손을 잡고 반가워했다. 그때 그녀의 행동을 보고 순간, 처음 본 여자의 행동에 질투를 느낀 건 화가였다. 화가는 엉가엄마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헤어진 아내를 처음 봤을 때 보다 더 가슴이 뛰었다. 그때 철없는 철희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자전거에서 내리며 땀에 절은 윗도리를 벗어서 펌프가 있는 샘가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철희는 물을 한바가지 퍼서 펌프에 붓고는 샘에서 차가운 물을 퍼올리자, 샘 앞에 놓인 고무함지에 금방 물이 하나 가득 넘실거렸다. 맑고 깨끗한 물이 시원하게 나오자 세 남자도 목이 말랐고, 엉가엄마 윤희도 목이 말라서 네사람은 자동으로 샘가로 모여들었다. 화가는 엉가엄마 윤희를 자세히 보니 윤곽이 모델로 그림을 그림을 그리면 참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엉가엄마는 낮선 두 남자가 있어도 개의치 않고 물을 한바가지 마시는 걸 보면 그녀도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몹시 목이 말랐던 모양이였다. 젊은이는 엉가엄마 윤희가 자기의 양이 될 것을 그 순간 믿었다. 그건 목회자로 전도사 훈련을 받는 그에게는 직감적으로 오는 영적인 느낌이였다.


"아, 저 여인이 슬픈 사연이 많은 것 같은데, 내 양이 될 사람이군. 나의 광야 교회에 교인이 한 분 더 오셨네."


젊은이는 엉가엄마가 오자 왠지 그녀가 자기의 양이 될 것을 알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다만 철모르는 철희만 어디서 온 예쁜 아줌마에게도 펌프질을 하며 물을 퍼주면서 집을 나간 엄마를 생각했다.


"내 엄마도 저리 이뻤는데......."


철희는 엉가엄마 윤희가 참 이쁜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고급옷과 그녀가 들고온 큰 가방이 세개나 되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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