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쩍빨에 사는 화가가 아침 일찍 방개네 집에 들이닥쳤다. 얼굴이 파랗고 노기가 등등하다. 분명 무슨 사태가 난 것이다. 화가의 표정만으로도 방개와 젊은이는 아침을 먹다 말고 밥알이 곧두설 것 같았다. 그런데 아침 일찍 수영을 나간다고 한 철희는 아직도 바다에서 돌아오질 않고 있었다.
"야, 철희 너 이놈 나와.
이 새끼가 어디 선생 물건에 손을 대고 지랄이야.
그게 얼마짜린데.
그러게 애초에 근본이 없는 놈은 집안에 들이는 게 아닌데.
내가 그런 걸 가르친다고 똥 멍청이 짓을 했노."
화가가 마당에 숨이 넘어가라고 뛰어 들어와서 높은 산에서 바위가 떨어질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철희는 바다에 수영 간다고 아침 일찍 나가서 아직 안들어 왔는데유 무슨 일이지유, 이렇게 일찌기..."
방개가 어쩐지 가슴이 떨려서 말을 더듬었다. 화가의 얼굴에 노기가 금방 자기 집에 불이라도 낼 듯 무서운 기세였기에 방개는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던 것이다.
"그럼 빨리 바다로 갑시다, 아무래도 이 녀석 튄 거 갔은데, 어제 화실에 놨던 내 로렉스 시계가 없어졌어요."
"네, 로렉스 시계요? 그거 완전히 비싼 건데."
젊은이가 깜짝 놀라며 목소리 톤이 높이 올라간다. 방개와 젊은이가 눈을 마주치자마자, 무조건 댓돌에 놓인 고무신을 신고 바다로 달리기 시작했다. 뚱뚱한 화가도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면서 숨을 헐떡이면서 그들을 쫒아서 바닷가로 달렸다. 세 남자가 아침부터 달리기라도 하듯이 여름 바다를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년 철희는 그 시각에 장항선 기차를 타기 위해 서천역에 벌써 와 있었다.
세 남자가 바다를 아무리 쏘다니며 철희를 찾아도 소년은 그곳에 이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바다를 한 바퀴 돌자 알게 되었지만, 로렉스 시계를 들고 달아난 철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는 세 사람 다 막연했다.
화가가 다시 입에 거품을 물으며 화를 냈다.
"그러게 내가 그 녀석 위험하다고 걱정을 했잖아유. 바보들처럼 그렇게 거리나 떠돌던 얘를 나한테 보내다니, 내가 바보였지, 당신들 보고 바보라고 하는 내가 천치고, 내가 그 비싼 물건을 깜빡하고 화실 구석에 올려 논게 문제지 , 아이고 어쩌나 내 그림보다 더 비싼 시곈데, 그거 내가 전시회 준비할 때 쓸려고 팔까 말까 하다가 여적지 둔건데, 결혼할 때 아내가 사가지고 온 유일한 재산인데, 내가 여기 내려올 때 마누라도 떠났는데, 기어이 시계까지 날 떠나는구나..... 흑흑흑"
화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바닷가의 모래사장에 털썩하니 주저앉았다. 방개와 젊은이는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저 화가의 얼굴이 파래지는 걸 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이 쪼그만 놈이 어디로 튄겨? 분명 기차 타고 서천역에서 아침 일찍 도망을 간 게 분명한데, 이제 택시를 불러서 가봐도 소용없을 것 같고, 어디서 찾겠어? "
화가는 자기가 무슨 수를 써도 이미 철희를 찾기는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만큼 철희는 나이는 어리지만 세상에서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고 세상에 이치를 환희 알고 있는 소년이란 것을 그는 간파했던 것이다.
"저, 화가 선상님 무척이나 죄송하고 송구하구먼요, 그런디 그 로락스 시계는 월마나 한데유, 지가 물어드려야 할텐디."
방개의 뜻하지 않은 말에 화가는 더 부화가 난다는 듯이 소리를 꽥하고 지른다.
"이 사람아 자네가 무슨 수로 로렉스 시계 값을 물겠나? 자네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도 그건 힘드네, 자네는 지금 살고 있는 쓰러져가는 집 한 채가 전부 아닌가 말여. 그건 스위스제 최고급 로렉스야, 국내에서는 몇 개 있지도 않다네, 내가 결혼할 때 우리 집 사람이 워낙 부잣집 딸이라서 그런 시계를 사가지고 온 거지. 나도 뭐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내로라는 대학에 미대를 나왔고, 전도 유망한 화가라서 젊었어도 인기가 하도 좋아서 여자들이 줄줄 따라다녔거든. 그래서 내가 부잣집 여잘 골라서 결혼했으니 그런 시계를 받은 거지."
젊은이는 화가가 아직은 속물근성을 벗어나지 못한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가 아닌 장사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장사꾼이거나 아니면 결혼에 실패한 남자로서 상처가 많거나 둘 중에 하나 같다고 젊은이는 생각을 했다. 화가가 유난히 감정의 심한 노출이 많은 걸 보니 아직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그림으로 승화하지는 못하는 치기 어린 화가라는 느낌도 들었던 것이다.
'저분이 자신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고 그림을 그린다면 기교는 훌륭할 테니 좋은 그림을 그리겠구먼, 물건 하나에 저렇게 목숨을 거는 거 보면 물욕이 아직도 강하군. 화가가 물욕이 그렇게 강해서 어떻게 그림에 정신에 세계를 깊이 투영하지....'
젊은이는 혼자서 속으로 그 화가의 붉었다 파랬다 하는 얼굴빛을 보고는 내심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이 문제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임을 처음부터 알았지만, 화가가 소년 철희에게 분이 풀릴 때까지 욕을 하거나 투덜거리는 것을 다 토해내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방개를 무시하는 소리를 하자, 방개가 무안하지 않도록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화가 선생님, 저한테 선생님처럼 똑같은 시계가 있어요. 로렉스 스위스제가 있습니다. 지금 서울 저희 집에 있으니 제가 서울에 올라가서 시계를 다음 주까지 갔다가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사람을 시켜서 가지고 오라고 할 테니 잃어버린 것은 걱정 마세요."
화가는 갑자기 이게 무슨 천둥벼락 치는 소리인가 싶어서 철희가 로렉스 시계를 들고 튄 것을 알고 숨 한 번 쉬지 않고 방개네 집에 달려온 것보다 더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무슨 맥이 빠진 사람처럼 갑자기 엉엉 대고 울기 시작했다. 정말 화가라는 이 남자는 자기감정을 숨길 줄을 모르는 철부지 같은 남자였다.
젊은이는 방개네 별채 서재에서 화가에게 자기가 똑같은 시계를 갖다 줄 것을 서약하는 서약서를 쓰고 그 아래에 자기 이름에 사인을 해서 화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조금은 화가에게 들려줬다.
화가는 젊은이가 우리나라의 큰 건설회사의 회장에 사위였다는 말에 더 이상은 할 말을 잃었는지 갑자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표정을 지으면 서 자신의 체면이 난감하게 된 것에 대해서 아주 자존심이 상해했다.
자기 자신의 본색이 드러난 것에 화가는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투덜거리듯이 말하며 젊은이에게 서약서를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말여,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그 녀석을 받긴 했지만, 그 녀석이 처음부터 차분하게 앉아서 그림이나 그리면서 살아갈 놈이 아닌 거는 알았어. 그래두 그림을 그리다 보면 고아지만 화가가 될 수도 있고, 세상을 함부로 살지는 않겠지 싶어서 좀 가르쳐 볼려구 했는데, 워낙은 거친 데서 산 녀석 같구먼."
화가는 소년을 나무라고는 있지만, 화를 가라앉치지 않고 무식한 사람처럼 자기의 본능을 드러낸 것이 내심 편치를 않은 이유가 딴 데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아내와의 불화로 가정을 지키며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던 상처들이 봄날에 거친 들판에서 피어나는 쑥부쟁이처럼 갑자기 방개와 젊은이 앞에서 드러난 것이다.
"남의 물건을 그렇게 비싼 걸 훔치면 당장 감옥에 가야 하는 거고 내가 말여 서천 경찰서에 당장 신고부터 하러 갈려고 했지만, 그래도 내가 교인이라서 그건 참고, 여길 먼저 온 거는 그래도 그 녀석이 그 비싼 거를 들고 달아나려니는 안 했거든. 그게 서울에서 집 한 채 값인데 말여, 어디서 그런 물건을 손을 대냐고, 간이 커도 보통 큰 녀석이 아니지.
분명히 그 물건 팔아먹으려면 그 애는 경찰한테 잡힐 텐데, 내가 빼내주지 않으면 깜빵가는건 당연한 일이여.
뭐 전당포에 맡기려 해도 그 녀석은 완전 사기를 당하거나 신고를 당하게 되어 있어요, 물건이 워낙 비싼 거라서.
그런데 젊은이가 똑같은 시계를 날 준다고 이렇게 서약서를 써서 줬으니까 내가 서천 경찰서에 신고는 안 함세. 그러나 여기 서약서에 쓴 대로 시계는 제 날짜에 가지고 와야 하네. 젊은이."
화가는 서약서를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는 방개에게는 인사도 안 하고 젊은이에게만 고개를 푹숙여 인사를 하고는 방개네 마당에 거품이 가득한 침을 서너 번 퉤퉤 거리고 뱉고는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나갔다.
방개와 젊은이는 화가가 나간 마당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미루나무 아래 평상에서 한숨을 돌렸다. 한여름에 겨울에나 부는 해풍에 머리를 맞은 듯이 두 사람 다 얼이 나가있었다. 아침도 먹다 말어서 인지 배도 몹시 고프고 한낮에 더위에 땀이 솟구쳤다. 땡볕을 걸어 나간 화가도 길바닥에서 계속 더위를 먹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철희에게 욕을 해대며 뻥 쩍 빨로 돌아갔다.
"철희가 일찍부터 도둑질하고 그래서 그 물건이 얼마 나가는지도 모르고 시계를 가지고 도망간 거 같은데, 그 녀석 잡히면 감옥에 가야 하는데, 우선 철희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도록 간절히 기도하자고요 방개아저씨."
"그럼 당연하지. 우리가 두 손 모아서 기도해야지. 그애가 세상 물정을 몰라두 한참 모르는 거구, 은혜도 모르는 애인거지. 그래두 화가 양반이 수업료는 싸게 받는다구 해서 내가 물감 값만 갔다가 드리구 했는디 말여."
"한 달이나 됐나요. 철희가 온지가."
"음..... 한 달이 조금 넘었지요. 여름 초에 와서 이제 여름이 막바지니께."
"아무래도 우리의 사랑이 부족했나 봐요. 저두 철희에게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긴 했지만, 그 애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게는 못해줬으니 말이에요."
두 사람은 미루나무 그늘에 햇빛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비치자, 반들반들 거리는 미루나무 잎새를 한없이 바라보다가 서로 아무 말하지 않고 철희가 혹시나 산에 젊은이 집에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서둘러서 산을 타고 올라갔다.
방개도 젊은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처럼 더워서 우선은 계곡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젊은이 집에 올라가기로 했다. 두 사람이 계곡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계곡 가까이 갔을 때 어디선가 동물이 튀어나오듯이 어떤 물체가 후다닥 하고 튀면서 산으로 뛰어 올라가는 소리를 들었다.
"철희다."
젊은이가 낮게 소리를 냈다. 그때 철희는 가파른 산을 궁둥이를 뒤로 쭉 빼고 노루처럼 뛰기 시작했다. 방개는 노루궁둥이라는 말이 퍼뜩 떠올라서 철희가 뛰는 뒷모습을 보자, 배꼽을 잡고 그 자리에서 웃기 시작했다.
어디로 뛸지를 몰라서 계곡의 바위와 단풍나무 사이로 뛰는 어린 철희의 당황한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노루궁둥이처럼 엉덩이를 뒤로 져치고 뛰는 게 더 우스웠던 것이다.
헐렁한 반바지가 반쯤 벗겨질 듯해서 철희의 허연 엉덩이가 꼭 물에 빠진 생쥐처럼 우습게도 보여서 젊은이도 그 아이를 잡으려 하기보다는 웃음보따리를 먼저 터트렸다. 정말 독 안에 든 쥐가 큰 독에서 빠져나오려고 뛰긴 뛰는데 제자리걸음만 하는 꼴이었다.
젊은이는 웃으면서도 철희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두 갈래 길이 열렸다고 생각을 했다.
한 길은 그가 아주 선한 싸움을 하며 그림을 다시 그리는 일일 것이고, 다른 한 길은 저 시계를 들고 이 산을 넘어서 어딘가로 도망을 가서 살다가 어느 날 아버지처럼 감옥에나 드나드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젊은이는 철희가 산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그 순간 잠깐 계곡의 바위에 앉아서 기도를 했다. 방개는 철희가 뛰어가는 산속을 같이 뛰어갔다. 그는 젊은이가 기도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