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
여름 아침의 산빛은 정말 푸르렀고, 이슬이 맺혀 있는 소나무의 향기는 진했다.
방개는 젊은이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며 또 '님의 침묵'을 웅얼거렸다.
바다로 통하는 산의 바람이 시원하게 둘의 가슴속 열기를 식혀줬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아직도 두 사람의 가슴속에 어떤 열기로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이 방개네 집에 마당에 막 들어섰을 때 집안에는 뜻밖에 손님이 있었다. 눈빛이 아주 매섭게 생긴 소년 하나가 방개네 집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뒤져 먹다가 놀란 듯이 마당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 소년은 빈집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방개가 먹다 남은 밥을 누룽지로 만들어 놓은 것을 그 소년은 주먹에 쥐고 마당 앞에 서서 갑자기 들이닥친 주인을 보고 놀랐는지 발을 움적 이질 못했다.
"넌 누구냐?"
방개가 소년을 보고 놀라지 않게 웃으며 천천히 먼저 말을 건넸다.
방개의 질문에 그 소년은 날카롭게 눈을 반짝이더니 잠시 후, 안도한 빛이 역력한 표정으로 겨우 말을 했다.
"네, 철희라고 해요. 아저씨."
아저씨라는 칭호에 방개가 빙그레 먼저 소년을 보고 웃어주자, 소년도 안심을 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누룽지를 감추었던 손을 뒤에서 옆으로 내려놨다. 방개랑 젊은이는 같이 그 소년의 손의 움직임을 보고 한바탕 웃어제끼니 어느 사이 소년은 누룽지를 입에 갖다 대고 오물거리는 것이 아닌가.
방개는 소년이 무척이나 배가 고프다는 것을 그 순간 파악했다. 그때 옆에 있던 젊은이가 소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젊은이는 방개가 열어준 별채 서재를 구경하면서 소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방개는 석유곤로에다는 해물탕을 끓이고 강낭콩을 한 주먹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밥을 하기 시작했다.
냉장고도 없고, 가스레인지도 없는 부엌이지만 석유곤로 위에 올려놓은 해물탕이 양은 냄비 안에서 보글거리며 어느 사이 맛있는 냄새를 온 집안에 진동시켰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까만 솥단지에 밥을 하는 것도 방개에게는 오래된 일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밥물이 하얗게 넘치면서 밥은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방개는 소년이 궁금했지만, 우선 밥과 해물탕을 끓이고 오이지를 썰고 텃밭에서 상추와 고추도 따다 씻고, 된장과 고추장을 퍼서 종지에 담고 해서 한 상 가득 상을 차렸다. 까만 솥단지를 보면서 방개는 소록도로 간 젊은 과부도 궁금했다.
"와, 아저씨 밥상을 금방 차리셨네요. 반찬도 많은 걸요."
젊은이는 소년과 마주 앉아서 무슨 얘기인가를 진지하게 하다가 밥상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고기 빼고는 다 있네, 난 고기가 좋은데."
소년이 굶주린 눈빛으로 밥상을 둘러보더니 고기가 없다고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고기가 먹고 싶었구먼, 얘야 내가 저녁에 닭 한 마리 잡아서 삶아줄 테니 우선 이 해물탕 먼저 먹어봐라."
방개가 소년을 달래면서 밥을 먹으라고 하자 소년이 먼저 숟가락을 들고 밥상 앞으로 돌격을 했다. 소년은 밥과 찌개를 혼자 다 먹다시피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댔다. 방개와 젊은이는 소년에게 밥상을 양보한 셈 치고 밥과 국물만 조금씩 떠먹고 있었다.
배가 터질 정도로 밥을 다 먹은 소년은 그 자리에 눕더니 이곳이 어딘지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이 노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젊은이는 방개와 둘이 밥상을 치우고 마당의 커다란 미류나무그늘 아래 만들어 놓은 나무 평상에 앉았다. 방개는 물건 만드는 것은 그다지 솜씨가 없어서 얼기설기 대강 나무만 짜서 만든 평상이라서 어설프긴 했지만, 그래도 여름밤엔 그 평상에 누워 밤바다의 철새들 소리와 파도소리를 들었다.
"재는 어디서 왔데유? 물어봤슈?"
방개는 젊은이가 소년이 누구인지를 얼마나 파악했는지 궁금했다.
"네, 이름은 철희구요, 열네 살이라고 하네요. 고아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고아가 됐는데, 남동생 하고 둘이 살면서 구두닦이도 하고 껌도 팔고 소매치기도 하면서 그동안 살았다고 하는데, 얼마 전에 남동생을 성당에 신부님이 데리고 가셨다고 하네요. 신부님이 데리고 가서 남동생을 학교도 보내고 해서 남동생은 학교를 다니지만 자기는 공부도 싫어하고 해서 양아치들하고 놀다가 거기서 형들이 때리고 해서 도망쳤다고 해요. 아버지가 원래 조폭이라고 하네요. 지금은 아버지가 감옥에 가 있다고 하네요. 감옥에 간지는 오래됐다고 하는 걸 보니까 아버지란 사람이 질이 좀 안 좋았나 봐요. 엄마는 자기들을 두고 다른 깡패랑 도망갔다고 하는 걸 보니 아이는 아주 상처가 많고 난폭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원래 그림을 잘 그려서 자기도 그림 그리는 거는 아주 좋아한다고 하네요."
"음.... 그려, 그림에 소질이 있겠구먼. 그럼 우리가 저 얘 데리고 삽시다, 그래서 화가로 키워봐유."
"그럼, 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학교가 가기 싫다고 하니 누구에게 그림을 가르쳐달라고 하죠. 이런 시골에는 미술학원도 없고, 군산이나 대전을 보내야 하는데...."
"잠깐만유, 내가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화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슈, 서울서 유명한 화가였는디 바다 그리러 내려왔다가 저기 바다 끝에 뻥쩍빨에서 산다는디."
갑자기 젊은이가 박장대소를 한다. 손바닥까지 치면서 웃는것이 아닌가.
"왜유, 내가 뭔 말을 잘못했남유?"
"아니요, 그 그게 아니라 '뻥쩍빨'이 무슨 동네 이름인가요. 하두 웃겨서요."
"히히히, 맞어유, 동네 이름이 '뻥쩍빨'인디 워낙 웃기는 이름이지유. 나두 무슨 뜻인지두 물러유. 사람들이 저 바다 끝에 동네를 '뻥쩍빨' '뻥쩍빨'해서 그런가 보다 하구 사는거지유."
방개는 젊은이가 소년을 잘 다룰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소년이 일어나면 닭을 잡아서 백숙을 해줄 테니 닭을 잡는 동안 아이랑 수박을 먹으라며 수박을 한통 따라가 찬물에 담가 놓고 자기는 뒷마당에 닭을 잡으러 갔다.
다섯 마리나 되는 토종닭 중에서 제일 큰 닭을 방개는 모가지를 딱 잡고 끌고 닭장에서 끌고 나왔다. 먼저 뒷마당에 물을 끓이고 닭을 잡기 시작했다.
방개도 닭을 잡는 일은 싫었지만, 소년에게 잘 먹여야 그 아이가 우선 안심하고 자기 집이나 젊은이의 집에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닭의 목을 칼로 치니 시뻘건 피가 솟구쳤다.
방개는 닭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다음 닭털을 일일이 손으로 다 뽑았다. 가끔씩 고기가 먹고 싶으면 서천장에 가서 닭을 사다가 삶아 먹기도 하고 잡아서 먹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생닭을 잡아서 음식을 하려니 내키지는 않았지만 방개는 정성을 다해서 산에서 따온 능이버섯과 해산물 말린 것도 이것저것 넣어서 삼계탕을 맛있게 끓였다.
소년이 자고 일어나서 눈을 비빈 시간은 어스름 저녁시간이었다. 무척이나 고난한 시간을 보냈는지 아이는 땀에 찌든 옷을 입고 있어서 방개는 자기가 입던 옷 중에 깨끗한 걸로 갈아 입으라고 하고 목욕을 하라고 하니 샘가에서 소년이 옷을 훌러덩 하고 벗어던지자, 젊은이가 소년의 등에 때를 밀어주면서 목욕을 시켰다. 까만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젊은이는 아프지 않게 잘 밀어 주자 소년은 얼굴이 점점 등불처럼 환해졌다.
목욕을 한 소년의 본 얼굴은 남자아이가 쌍꺼풀이 깊이 진 얼굴이 약간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온 것 같이 이국적이고 멋있게 생겼다. 소년은 닭백숙을 보자 혼자서 닭다리를 양쪽으로 잡고 우적우적 뼈까지 삼킬 것 같이 닭을 거의 다 먹어치웠다.
젊은이는 아내를 잃은 슬픔이나 저주 따위는 다 잊은 듯이 그 소년에게 매료되어 그 아이를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방개네 집에 있는 별채에서 저녁이 늦도록 산에 올라가질 않았다.
"아휴, 나두 열네살에 소년병에 끌려갔다가 그때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떠돌이가 되었는데, 저 아이두 열네살이라고 하니까 참 이상한 맘두 드네유,"
소년은 닭백숙을 한 양푼 먹고 또 잠이 들어버렸다. 방개가 자기 집에서 살아도 된다고 하자 소년이 무슨 생각인가를 하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깊이 잠이 든 것이었다. 지치고 곤한 표정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을 걸 보면 소년은 오랜 시간 떠돌아다닌 것이 분명했다.
철희는 그날부터 방개아저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방개네 집에 책이 많은 것을 보고는 낮에는 방개네 집에 와서 책을 읽고 싶다고 해서 방개가 그러라고 해서 세 사람은 그날부터 거의 붙어있다시피 살게 되었다. 방개는 뻥쩍빨 동네에 사는 화가에게 소년을 데리고 가서 그림을 배우게 해달라고 하니 화가가 일주일에 한 시간만 가르쳐 준다고 해서 소년은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소년은 겁이 없었다. 그래서 공동묘지에서 젊은이가 기도를 하는 한밤중에도 방개와 젊은이를 따라다녔고, 화가네 집에도 가서 그림을 배우는 것도 열심히 했지만, 교회와 학교는 가기 싫다며 기환이가 찾아와서 몇 번을 설득을 해도 학교는 가지 않았고, 목사님이 또래 아이들을 방개네 집에 전도하러 보내도 교회도 가질 않았다. 어딘가에 속해서 있는 것은 싫다는 것이 소년 철희의 나름대로의 신념이었던 것이다.
"방개 성도님 그 철희라는 아이가 그림에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으니 굳이 학교 안 보내도 되는데, 그 아이가 문제가 있어요."
교회 마당에서 화가가 방개를 붙잡고 한 말이었다.
" 그아이는 분명히 그림보다는 자기 아버지를 따라서 조폭 같은 세계에 빠질 위험이 있어 보여요. 얘가 어딘가 난폭한데가 있거든."
방개는 화가의 말에 깊은 고민이 생겼다. 철희에게 폭력성이 있는 것을 자기도 알았지만, 이국적으로 잘생긴 그 아이의 모습에는 화가가 얼마나 어울릴까를 생각하면 그런 세계에는 절대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도 자기가 아이를 잘 달래 보겠다고는 하지만 그 아이의 날카롭고 예리한 심성을 잘 다독이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다고 방개에게 말하며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고 자기가 성경공부를 시켜보겠다고 했다.
성경이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제일 빠를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방개는 교회는 다녀도 성경이 이 아이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는 걱정을 했다.
젊은이는 병마의 저주를 끊는 기도보다는 사랑하던 아내를 잊을 수 없어서 방황하는 마음이 컸다며 철희와 방개아저씨를 만나서 자기의 애절한 사랑이 이상한 방향으로 희석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아저씨, 난 내 아내가 정말 알퐁스 도테의 '별'에서 나오는 사랑스러운 스테파네트 아가씨였다고 했죠.
난 목동이었고요. 정말 난 목동처럼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 아들이었고, 우리 아내는 거부의 딸이었죠.
우리나라의 몇 번째 안 가는 건설회사 회장 딸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가난한 날 절대 가난하게 여지질 않았어요. 그녀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게 주고 싶어 했죠.
처음부터. 그래서 전 그녀가 가진 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도 않았고, 엄청난 재력을 가진 처갓집에 가서도 전혀 꿀리지도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 아내는 정말 날 사랑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 엄청난 처갓집의 돈으로 생명을 살 수는 없었는지 전 정말 대한민국의 의사들이 다 실력이 없다고 엄청나게 투덜댔었어요. 우리 처갓집에 돈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내 아내의 병을 하나 못 고치느냐고 얼마나 의사들한테 따졌는데요.
제가 미친놈이였지요. 어떻게 생명을 돈 주고 살 수 있으며 죽을 사람을 돈 있다고 다 살리겠어요."
그러나 젊은이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공동묘지에서 기도를 했다. 그것은 자기와 하나님과의 약속이라고 했다. 그러나 방개와 소년은 비가 심하게 오거나 날씨가 안 좋을 때는 젊은이 집에서 누워서 잠을 자거나 책을 읽으며 젊은이가 산기도를 마치고 내려올 때까지 집을 지켜주었고, 세 사람은 날이 밝으면 다시 방개네 집에 모여서 밥을 먹고, 바다에 가기도 하고 고기를 잡기도 했다.
윤택이는 소년은 배에 태워주질 않았다. 너무 어리다는 것이었는데, 고기잡이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도 어린 철희는 배에 잘 태우질 않았다.
방개아저씨 때문에 젊은이도 가끔씩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윤택은 젊은이가 잘생기고 마음도 착하다면서 무척이나 젊은이를 신뢰하고 좋아해서 자기 집에 과수원에서 일을 할 때도 젊은이를 불러서 과일도 주고 야채도 주고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하면서 교회에는 가질 않아도 그 젊은이가 하나님 이야기를 해주면 아주 심각하게 듣고는 했다.
"방개아저씨 나는 산기도 하러 작정하고 여기 산속에 숨어들었는데, 저는 지금 광야 교회를 하는 느낌이에요. 철희도 그렇고 윤택이 형도 그렇고 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 있는 광야 교인들 같아요.
서울역에 가면 거지들이 많이 있는데, 거기서 드리는 예배를 광야교회 예배라고도 하거든요. 교회는 없지만 떠돌아다니는 사람들과 같이 드리는 예배가 광야의 예배니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도 예배를 드린 것처럼요."
"하하, 그럼 우리 아예 서울역에 가서 거지들하고 같이 광야교회를 차려유, 젊은이는 원래 전도사였잖아유. 하하하"
"방개아저씨 그럴까유, 우리 철희 데리구 서울역에 가서 거지들하고 살면서 광야교회나 할까요. 거기서 거지들 밥도 해주고, 라면도 끓여주면서 광야에서 살아볼까요. 하하하 그게 좋겠네요."
"에이 이 사람아 , 거 서울역에서 거지로 사는 사람들이 보통이겠어. 이 힘든 시대에 가정 깨지고 감옥 갔다오고, 뭐 다 그런 사람들이 거지가 됐겠지. 나도 기환이 형제 안만났으면 지금도 거지처럼 살고 있을걸, 그런데 이런 떠돌이나 거지들이 일하기도 싫어하지 술만 퍼먹지 문제가 많어."
"흐흐흐 다 문제 많은 사람들이 사는게 세상인데요 뭘, 저보다는 다 낳은것 같아요. 저처럼 이렇게 아내 한 사람도 잊지 못하고 찔찔거리고 사는 이런 못난 사내도 있는걸요 뭐."
방개는 젊은이가 산에서 기도할 때마다 꺼이꺼이 심한 통곡을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본 지라 그에 말이 맞다고 생각을 했다. 젊은이는 자기와 함께 있든 어린 철희와 함께 있든 이상하게 마음 한쪽은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그렇게 힘이 없었고, 아직도 갈 길을 다 못 정한 듯이 방황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방개는 자기가 순자를 잊기 위해 시를 쓰던 때와 달리 젊은이가 아내를 그리워하고 애타하는 마음은 피부에 거죽을 벗겨내고 그 속살들에 핏줄 하나하나까지 아픈 느낌이었다.
몸을 섞고 살면서 자식을 낳은 부부의 애틋한 사모곡을 방개는 제대로 알 턱이 없지만, 젊은이가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 아내를 잃은 슬픔의 진한 곡조가 그의 기도소리와 통곡에서 다 드러났기에 방개는 언제나 젊은이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려고 많은 애를 썼다.
요즘은 윤택도 방개보다 더 젊은이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보여서 방개는 윤택이 자기와는 이제 참으로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방개는 문득문득 덕구와 엉가엄마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순자를 생각하면서 쓴 시들을 고이고이 노트에 적어서 그것으로 첫 시집을 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개는 첫 시집의 제목을 '아직은 사월'이라고 정했다. 순자에게 진달래꽃을 꺾어다 주던 사월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사월
내가 마지막으로 당신은 본 것은
동그란 무덤이었소.
뻐꾸기도 없고, 산비둘기도 없고,
소쩍새도 없고,
왜 새들이 그날에 그곳에는 없었는지요.
당신이 누워있는 동그란 무덤에는
왜 그날 새들도 없고 나만 홀로 있었는지 모르겠소.
그런데 당신의 체온이 아직은 따스할 것 같아서
내가 당신 손을 잡아보려고 했더니
당신의 곁에는 예전에 내가 꺾어다 준
진달래가 한 묶음 있었소.
그리고
십자가 목걸이가 있었소.
난 당신이 천국에 가 있길 지금도 간절히 바라지요.
당신은 분명 이 세상에서 잘 부르지 못했던
노래를 부를 것이요.
당신이 귀가 먹었다고 귀머거리라고
이 세상에서는 누가 당신에게 노래를 가르쳐줍디까.
그러나 분명 당신은 그곳에서는 꾀꼬리 같은 소리로
이 세상에 슬픔을 다 털어낸
가벼운 목소리로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부를 것이요.
내가 가르쳐주지 못한 방개타령도 아마 부를지도 모르겠소.
당신은 내가 만든 방개타령도 아직 모르나요.
다시 사월이 오면 진달래꽃은 필터이고
당신의 노래도 분명 내 귀에 들려올 것이요.
그러나 아직은 먼 갯벌에 눈이 나부끼는
겨울 이오.
그래도 기다려요.
내가 진달래꽃을 꺽어서 당신이 있는
동그란 무덤에 갈때까지
거기 그렇게 있어만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