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끈을 끊어내려고 해요.

by 권길주


밤은 깊고 산속에 새들도 잠이 들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잠을 잘 수 없는지 방문을 열어 놓고 달빛에 얼굴을 적셨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기만 하다. 그는 조금 전에 공동묘지에서 큰 소리로 방언기도를 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과 표정을 하고 평상시처럼 그렇게 조용히 있는 것이었다. 방개는 젊은이 집에서 잠시 눈만 붙였다가 새벽에 산을 내려올 생각으로 그의 방에 누웠다가 젊은이가 잠을 이루지 못하자 자신도 일어나서 앉았다.


"아저씨, 아저씨네 집은 어떤 집이셨어요, 가령 선조 때부터 이런 집이다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어른들이 뭐 내력이라고 하시던데..... "


방개는 아직은 젊은이한테 자기 얘길 자세히 말한 적이 없어서 멋쩍기는 했지만, 툭하고 한마디 던졌다.


"우리 아버지가 개판이었지. 내 어머니를 자기 집 머슴 딸이었는데, 논 몇 마지기 주구 첩으로 들여서 나를 낳았으니까.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도 첩을 둘이나 두고 살았다고 하시데. 워낙 그 근방에서 큰 부자였다고 하니까 옛날에는 다들 그렇게 땅떵이 좀 있으면 그렇게들 살았다고 하데유.


뭐 말하자면 진짜 공부를 많이 하는 학자 집안은 아녔어두, 일본 놈들 압잡이를 했는지는 몰라두 왜정 때 두 땅떵이를 지켰다고 하니 뭐. 천석꾼은 아니여도 할아버지때두 그 정도는 거의 갔나봐유. 그래서 우리 아버지두 핏줄대루 물려받고 산거지유. 술 마시는 거 좋아하구 기집 좋아하구유."


"아, 그러셨군요. 아저씨도 출생이 힘드셨으니 얼마나 태어날 때부터 마음 고생을 하셨을까,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할아버지가 한 말이라구두 하는데, 사람은 시대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고 하시데유, 한마디루 말해서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그렇게 시대에 맞춰서 살았다는 얘기지유.


그렇게 조상들이 덕을 안 쌓아 놔서 그런지, 난 육이오 전쟁통에 끌려갔었슈, 그때 우리 둘째형은 군대 갈 놈두 용케도 빼놨었는다는데 나는 내버려뒀다니께유, 그래서 난 열네살에 전쟁통에 끌려갔었지유.


그게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말하는 시대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문 난 재수가 되지게 없는 눔이구, 우리 배다른 형들은 재수가 억시게 좋은 눔덜이지유. 어쨌든 형들은 전쟁통에 일본에 가서 대학 공부한 인간두 있구, 그 돈 많이 든다는 프랑스인지 어디가서 그림 그리던 인간두 있었으니께유.


씨는 같은디 배가 달러서 그런가 물러두 우리 아버지는 날 무지 차별했슈. 그래서 난 집 식구들이 남들만두 뭇혀서 집에는 안가유, 가문 또 맞기나 허겄지유, 형들한티. 첩은 자식은 이 세상에서 살기가 힘들어유, 난 그래서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다 소리를 듣고 나서는 아버지가 어찌 되었는지도 궁금하지두 않었다니께유.


날 이렇게 고통스럽게 세상에 내보내구 뭐가 잘났다구 그렇게 뻔뻔하게 살아서 세상 즐길 것 가 즐기구 먹고 싶은거 다 먹구 사는지 난 아직두 아버지가 이해가 안가유. 하두 속이 상하니께 엄마 얘기는 하고 싶지두 않아유."



방개는 더 이상은 할말도 없다는 듯이 젊은이를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의 웃음은 달관을 넘어선 고단한 삶에 대한 지난한 슬픔이 배어있는 한숨이였다. 그러나 방개는 그런 삶에 대해서 이제는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한숨 한번 쉬고 마는 달관의 자세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아직은 그가 가진 슬픔을 그렇게 쉽게 털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젊은이가 가진 슬픔은 아직은 온도가 너무 뜨거우리 만치 그의 슬픔의 온도는 식지 않은채 화덕처럼 뜨겁다는 것을 방개는 그의 느끼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문 해봐. 워디 속디 답답한가 본데."


방개가 그에게 채근아닌 채근을 하며 그에 속을 열어보려한다.


"저는 참 사람이 사는게 왜 이렇게 이상한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집은 사대에 걸쳐서 시집 온 여자들이 다 일찍 죽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증조할머니부터 제 아내까지 그렇게 다들 삼십대에 다 아들 하나씩만 낳고 죽었으니 말예요. 이런 저주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집은 저주 받은 집 같아요. 흑흑흑 "


생각지도 않게 젊은이가 어깨를 떨어뜨리고 깊게 울기 시작했다.


"제 아내가 작년에 죽었어요. 서른다섯 살에......"


방개는 달래줄 말도 생각이 나질 않았고, 저주 같은 말도 깊이 말해줄 능력이 없어서 그저 엉거주춤 그가 우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달빛이 방안을 환히 비추며 그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아주 환하게 보여줬다. 오래오래 젊은이가 울고 나서 그는 눈물을 씻으며 말했다. 그 사이 방개가 타다 놓은 커피 한 잔이 다 식어 있었지만 그는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제 어머니가 제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것도 그때도 감당하질 못해서 제 어린 시절은 그저 말없는 소년으로 통할 정도로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는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편이에요.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제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고 누군가를 깊이 사귀게 된 사람이 내 아내였어요"


"그렀구먼요. 그런데 그 아내가 벌써 죽은거유. 아이구 무슨 너무 젊은 나이에 갔구먼유. 저주 라는 말도 나오게 생겼구먼, 그 집두. 내원 참. 쯪쯪쯪"


방개는 자기 엄마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그 젊은이의 아내가 서른다섯에 죽었다는 말에 가슴 한편이 무척이나 아파왔다.


"워떻게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떴데유, 아내가."


젊은이는 식어버린 커피가 아쉬운 듯 찻잔을 다시 바라본다. 그것을 본 방개가 어른 부엌에 가서 다시 뜨거운 커피를 두 잔 타 가지고 와서 자기 앞에도 잔을 내려놓고 젊은이 앞에 다시 커피잔을 밀어준다. 주객이 전도된 듯이 그는 그 집에 주인처럼 커피를 타 온 것이다.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사람하고 같이 밤을 보내게 되니 저두 제 감정이 북받쳐 올랐나 봐요. 사실 이 산에 와서 정신없이 집을 짓는다고 이래 저래 한 달가량 지나긴 했지만, 너무 외롭고, 때로는 무섭고 해서 다시 내려갈까 두 많이 망설였는데, 마침 아저씨가 오셔서 이렇게 저랑 공동묘지 기도도 같이 해주고 하니까 갑자기 아저씨한테 내 마음이 열린 것 같아요.


사실 친구들한테도 한 번도 찾아서 울거나 한 적이 없었고, 저는 형제가 없다 보니 아버지 밖에 없는데, 저희 아버지도 아무리 목사님이시긴 해두 엄마도 젊어서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엄마인 제 할머니도 젊어서 돌아가시고 제게는 증조할머니도 그렇게 일찍 세상을 뜨셨는데, 며느리인 제 아내마저 그렇게 일찍 세상을 하직하니 너무 고통스러워하셔서 저는 아버지에게 제 우는 모습을 상을 치를 때 외에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아저씨에게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네요."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산의 정적에 싸여서 나무들이 열기를 뿜어 내고 밤새도록 얼마나 싱그럽게 잠을 잤는지 보고 있었다. 그건 어쩌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었지 인간이 자연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산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 사이에서 위로라는 신선한 음료를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의 밤이 가고 이제는 어슴프레 새벽빛이 산의 옷가지 같은 나무들의 모습을 짙푸르게 드러냈다. 산은 정직한 사람의 등처럼 그렇게 사람에게 깊은 안도감을 주었다. 방개도 젊은이도 산 사이로 새벽 미명의 빛줄기가 비추이자 설레는 첫사랑을 대하듯이 각자의 마음에 조금의 기쁨도 밀려들어왔다.




방개는 사람은 이래서 슬픔도 잊고 사는가 보다 하고 산의 등성이 너머로 보이는 아침해가 어둠을 깨치고 고개를 내미는 것을 바라보았다.


"우리 증조할머니도,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였던 할머니도, 그리고 내 어머니도, 그다음엔 내 아내도 다 우리 집에서는 병이 들어서 죽었어요. 젊은 아내들이 말이에요. 증조할머니는 백여 년 전에 사람이니까 일제강점기 때였겠죠. 그때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임신 중독증으로 배 속에 아기랑 함께 죽었다고 하고, 우리 할머니는 전쟁 때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에서 풀뿌리 같은 걸 캐 먹고 식구들이 연명했는데 그중에 독초가 있었는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래고 제 어머니는 아버지가 한참 목회를 시작했을 때 개척 교회라서 고생을 많이 해서 인지 급자기 암이 걸렸었거든요. 위암이요. 그래서 몇 달 만에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제 아내는 또 간암이 말기에 발견이 돼서 어떻게 손을 대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를 갔어요.


이게 무슨 저주인지 모르겠어요. 제 집안에 젊은 며느리들이 다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에요. 아버지는 제 아내가 하늘나라 간 뒤로는 목회를 그만두시려고 몇 번이나 그러시더라고요. 자기가 집안에 병마의 저주도 끊어내지 못한 능력이 없는 목사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저주를 끊어보려고 산에 올라와서 가장 기도하기 힘들다는 공동묘지를 기도처로 택한 거지요. 그것도 좀 세다고 소문이 난 이곳을 찾아온 거고요. 그런데 솔직히 너무 무섭기도 하고 그만두고 싶은 심정인데, 제게도 아들이 하나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아들한테는 이 저주를 물려주고 싶지가 않았어요. 저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결혼했는데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을 보내게 되면 어쩌나 싶은 게 너무 기가막히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내 자식에게는 이런 상처와 고통을 대물림해주고 싶지는 않았던 거지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 아내도 너무너무 사랑한 아들이었으니까요. 제 아들은 지금 저희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도 아마 손주가 없었으면 지금 목회도 접구 식음을 전폐하고 계실지도 몰라요. 제 아들 녀석은 참 잘생기기도 했고, 지혜가 얼마나 많은지 피아노를 아주 잘 치곤 하지요."


젊은이는 조용조용 아주 차분하게 갈색의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자신의 얘길 풀어냈다. 방개는 이 젊은이를 오늘은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시원한 해물탕을 끓여서 대접해 줘야겠다고 속으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윤택에 배에 태워서 먼바다에 나가서 고기도 같이 잡으며 바다 구경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초록의 산이 아침 햇살로 반짝이는 몸을 드러냈다. 산에서 밤새 두 사람을 지켜두던 정령들이 천사가 되어 두 사람의 앞날을 새롭게 인도할 듯이 날개를 펼치는 것 같은 느낌이 왜 드는지 방개는 자기도 모르게 천사들에게 손짓을 하며 반갑다고 말하고 싶었다.


"젊은이 이제 그런 저주받은 인생은 떨치고 나랑 내려가서 시원하게 해물탕이나 한 그릇 해 먹세나. 그리고 배 타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나 좀 잡자고, 자네가 그런 힘든 기도를 하려면 잘 먹어야 버티지 않남. 내가 말여 매일 밤에 와서 도와는 줄 테니까 말이여, 오늘처럼 이렇게 같이 공동묘지에서 기도하고 커피 마시고 그럼 되잖어."


젊은이는 슬퍼할 새도 없이 갑자기 방개아저씨가 자기 손을 잡고 일어나니 엉저주춤 다른 말도 못 하고 일어났다. 그에게도 새 인생이 시작되려는지 그동안 슬픔에 짓눌려서 매일 천근만근 같았던 무거운 몸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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