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사는 남자.

by 권길주



순자가 떠나고 몇 년이 다시 흘렀다.


그 사이 방개는 검정고시를 합격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방개가 고민하는 것은 대학 공부를 어떤 과목을 할 것인가와 대학을 어디를 다녀야 할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기환은 방개가 지방 대학이 아닌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녀도 충분하다며 서울로 대학을 가기를 권했다. 등록금과 생활비는 물론 기환이 다 대주겠다는 조건이었다.



기환으로써는 그 모든 능력이 충분했고, 방개를 아버지 같이 생각하는 기환은 방개 아저씨가 순자씨를 잃은 슬픔을 딛고 책과 씨름하고 자신을 다독이며 시를 써서 드디어 문단에 등단까지 한 것이 기적과 같았다.



더구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합격했으니 이제는 대학교를 들어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지 다른 문제는 없는 것인데, 기환이 볼 때는 방개 아저씨는 천재까지는 아니지만 비상한 머리를 가진 것이 분명했기에 그 비상함을 이제라도 다시 펼쳐주는 게 자기의 도리이자 의무 같았다.


자기 목숨을 살려주고, 방개아저씨의 바닷가 오두막에서 자기가 신춘문예 3관왕이 되도록 자신을 보듬어준 것은 방개아저씨였기에 기환은 방개를 아버지처럼 평생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환은 방개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래도 글을 계속 쓰려면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득을 했고, 학교 공부도 계속해서 전쟁의 후유증으로 공부를 못한 방개의 한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방개아저씨는 순자씨가 죽고 나자, 이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방법으로 삶에 정착을 원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없이 떠돌고 살아서 순자 씨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에서 그는 이제는 자신이 정착을 해야만 무엇이든 지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난날의 삶은 바람처럼 떠돌면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면 이제는 정착이란 새 삶의 방식을 통해서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나무와 같았다.



한국전쟁 이후 소년병의 고통으로 그가 열다섯 살부터 떠돌아 다니고 방황하던 삶을 이제 사십 중반이 넘어서 정착을 하는 데까지는 삼십 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기환은 이런 한국전쟁의 고통스러운 역사와 방개아저씨의 삶을 소설로 1부 2부 3부로 나누어서 긴 장편을 쓰고 있는데 그 소설도 그에게는 이제 마지막 3부를 남겨 두고 있었다.



그도 매일신문에 연재소설을 쓰자니 무척이나 힘이 들긴 했지만, 학교 이사장직에 충실하면서 소설가로서의 글쓰기도 그는 치열하게 해 나갔다. 기환은 생각했다. 자신이 방개아저씨를 만난 것은 정말 삶에서 큰 선물이거나 기적일 거라고. 그가 아니었으면 자신에게 제2의 소설가의 인생, 군산에 명문사립고등학교를 세우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과 같은 대작을 써보고 싶었고, '레 미제라블'과 같은 사회성 짙은 소설을 써 보고 싶던 기환은 법대교수였던 아버지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삶의 방식과 방개아저씨의 헌신적인 삶이 방식이 어떤 양상으로 이 사회를 흘러가고 있나를 써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기환은 방개 아저씨가 만약에 첩에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한국전쟁에 소년병으로 끌려가지만 않았다면 시골의 부농의 아들로 자기 아버지처럼 공부를 잘해서 어떤 사회적 위치도 굳히고 살았을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드러내지 않는 포용력과 선한 능력이 방개아저씨가 갖춘 미덕이라고 그는 생각을 했고, 그런 사람이 이 나라의 중심축에 많이 있길 그는 은근히 바라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번 원고료로 고아나 힘든 가정에 아이들에게 무조건 대학 등록금을 대주는 해주는 일을 했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의 3대 일간지에 하나인 신문사에 연재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는 아침이면 빵과 계란 두 개, 우유 한잔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점심은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비빔밥이나 된장찌개로 점심을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아내가 차려주는 간소한 저녁 식사를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는 자동차를 사지 않았다. 어디든 걸어가거나 서울에 갈 때는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검소함이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부모에게도 주는 영향은 컸다. 그는 아버지가 몰던 최고급 승용차도 로렉스 시계도 물려받지를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방개아저씨처럼 힘든 사람을 포용하는 포용력과 어디서든 있는 그대로 가진 것을 누리는 자연인으로 살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환은 방개아저씨가 있는 바닷가 오두막에도 자주 왔고, 그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글을 쓰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밤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별들을 보면서 한 사람은 소설을 쓰고 한 사람은 시를 쓰고 둘은 그런 시간을 참 행복해했던 것이다.



방개도 멀리 있던 순자 씨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된 슬픔을 시를 쓰면서 많이 달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도와준 사람은 기환이 역할이 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윤택이와 함께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일도 여전했고, 윤택이도 욕심 많았던 형이 가산을 다 탕진하다시피 병마의 고통과 싸우다가 죽은 후에는 부쩍이나 방개를 가까이했다.



방개와 있으면 마음이 한없이 푸근하고 욕심이 없는 방개에게 늘 위로를 받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재산까지 다 가로챘던 윤택의 형은 삼 년이 넘는 긴 병마에 시달리며 그 많던 재산을 자신의 병마와 자식들 간의 재산 싸움으로 허망하게 모든 재산이 거의 탕진되다시피 했을 때 형은 세상을 떠났다.



그것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서 윤택도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기와 함께 배를 타러 가서 고기를 잡고, 과수원에 가지도 쳐주고, 과일도 따주고, 무거운 과일 상자를 뼈가 부러져라 리어카에 싣고 과일창고에 날아다 주는 일을 거들어 주는 것은 언제나 방개의 묵묵한 표정과 그의 힘이었다. 방개는 떠돌면서 농사일이든 나무를 캐는 일이든 짐승의 축사를 치우는 일이든 힘든 일이란 일은 다 해 본 사람이라서 일하는 것은 힘들지 않게 잘했다.



방개는 머리가 좋다 보니 일머리도 좋아서 보통사람보다는 지혜가 있게 일을 하는 편이라서 그것도 윤택에게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방개가 가진 문제는 일을 해주고 품값을 제대로 받지 않는 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만 살 수 있을 만큼만 돈을 요구했다.


"운동화나 하나 사게 운동화 값만 주구려. 나 돈 많으면 술 마셔서 안 되네, 난 이제 술은 끊었잖아.

그런데 돈이 있으면 다 사람이 사사로이 돈을 쓰게 되는 걸세, 나 아프면 약값이나 나중에 대주던가, "


방개는 일주일을 꼬박 일을 해주고도 겨우 운동화 하나 값이나, 고무신 한 켤레 값을 요구하니 윤택도 다른 것으로 방개를 채워주려고 가끔씩 서천장에 방개를 데리고 나가서 그에게 이것저것 사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방개는 집안에 물건을 들이는 것도 싫어했고, 계절마다 두세 벌이 넘는 옷도 딱 질색을 했다. 그러나 그는 윤택이 어느 날 사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무척이나 좋아라 했다. 혼자 있을 때 들으라고 사준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방개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방개는 가끔씩 라디오에 건전지를 매달아서 그걸 가방에 넣어 가지고 산에 가지고 올라갔다. 산에서 나무를 하는 동안에 들으면 나무할 때 전혀 힘들지가 않다고 했다.


윤택이도 형이 죽고 혼자 남은 형수가 자식들이 있는 도회지로 떠나자 고향에 왔지만 고아처럼 살아가는 형국이니 방개가 멀리 떠날까 늘 조바심을 냈다.



그는 생각했다. 형은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켜서 결국은 그 욕심이 낳은 죄로 인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던 끝에 병마를 얻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걸 제대로 막지 못한 형수는 결국 아버지의 재산을 팔아서 사업을 차렸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경험 없이 한 사업은 망하고 힘들게 된 자식 곁에 가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다시 해야 하는 형수가 않됐지만 그 모든 것은 인과응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은 방개를 만나서 방개가 몸이 부서져라 자기 통통배에서 고기를 잡아 주고, 과수원에서 일을 해주다 보니 방개는 어찌 보면 자기네 집에서는 없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꾼이자, 형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산을 개간해서 그곳에 과일나무를 심고 그 과일나무에서 사과, 배, 복숭아가 열릴 때까지 윤택은 도시에서 망하고 온 못난 동생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땀이 소금이 되도록 땡볕에서 일을 했다.



이제 그의 얼굴은 서울 물을 먹은 허여멀건한 피부에서 소금기와 땡볕에 전 까만 얼굴이 되었지만, 그의 눈빛은 건강하고 밝게 빛이 났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부와 건강을 회복한 데는 방개의 덕이 크다고 생각한 것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늘 자신의 곁에서 일해준 방개형 덕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도 방개를 형처럼 따르고 그에게는 아끼지 않고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것이였다.


윤택은 친형을 돈과 욕심으로 잃었지만, 돈을 탐하지 않는 방개를 형 같은 사람으로 얻은 것이다. 그는 피를 나눈다다고 다 형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커서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돈을 탐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따르기 힘들지만, 방개처럼 돈을 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붙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인생의 맛을 그도 이제야 방개를 통해서 느끼게 된 것이다. 윤택은 자신이 더 배우지 못한 설움을 자식들이 유학을 가는 쪽으로 항상 생각을 열어 놨다.



그래서 그는 피땀을 흘리면서도 일을 했고, 딸만 셋이지만 그 딸들이 다 유학을 가서 공부할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는 딸들이 잘 사는 길은 오직 넓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윤택은 작년에 서울에 작은 방을 하나를 얻어서 딸과 아내를 서울로 보냈다. 아이들을 서울에서 공부를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윤택의 그런 선택에는 하나는 좋았지만, 하나는 좋지 않은 결과를 맺을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방개는 윤택이네 집에 일을 하러 가지 않을 때는 기환이가 사다둔 준 시집과 여러 가지 문학 관련 책들을 읽었고, 교회를 갔다 온 주일에는 성경을 읽었다. 방개는 이제 교회에도 등록을 했다. 자신이 언제까지 서천에 살지는 몰라도 등록이란 것을 해서 교회가 그의 삶에 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방개는 아직은 교회에서 그다지 유난스럽게 봉사를 하거나 헌신을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대다수의 교인들이 여자인 것이 불편해서 주일날 예배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가끔씩 부흥회가 있을 때 참석하는 것 말고는 새벽기도를 가거나 수요예배나 금요철야 같은 시간에는 참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주일 예배를 보고 오면 꼬박 하루는 성경을 읽다 보니 어느 사이 성경은 신구약을 몇 번이나 통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방개는 하나님의 존재는 자기와는 너무나 먼 존재 같았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은 헌금이라든지 그런 거와는 거리가 멀었고, 눈이 많이 오는 날 교회 가는 길을 새벽에 일어나서 쓴다든지 교회에 무슨 공사가 있을 때는 가서 열심히 일을 해주는 정도였다. 그는 헌금을 자랑하듯이 내는 어느 권사에게 하루는 이상한 묘욕을 당하고 나서 더욱 헌금에는 신경을 쓰지를 않았던 것이다.


"아니, 방개 성도님은 교회에 오면서 성미쌀도 가져올 줄을 모르나 봐요, 일주일 동안 밥할 때마다 쌀을 한주먹씩 떠 놨다가 그걸 가지고 오시라고 했는데, 왜 성미를 안가져와유."



"지가 자꾸만 정신이 없어서 성미를 잃어버리네유, 그래서 쌀을 한되박만 가지고 올려구 했는디, 그것두 자꾸 까먹구유."



"그러니까, 윤택씨네 집에 일을 가면 품값을 제대루 받아서 헌금두 가져오구, 밥하시기 전에 성미쌀도 미리 떼놓고 정신차려서 신앙생활하셔야지 그게 뭐예요. 하나님 한테 오면서 거지마냥 그냥 빈손으로 다니구. 남의 집 일은 그냥 해주구, 그래서 남들 잘 살게 해주문 뭐해유, 다 그러니까 방개 성도님을 깔보잖아유, 아니, 교회를 다니문 세상두 밝히 살아야혀지유, 그래서 쓰것유. 바보맨키루, 세상 사람들에게는 공짜요, 하나님께는 인색하게 스리 빈손 들고 교회를 오다니 쯪쯪."




난데없는 어느 권사의 헌금 핀잔에 방개는 얼굴이 달아올랐고, 그 뒤로 그는 교회에 갈까 말까 무척이나 망설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중재를 하신 분은 교회의 목사님 이셨다.


"방개 성도님, 걱정 말아요, 신앙 생활이란 것은 다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십일조다 성미다 해서 저는 아직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하는 분이 아닌데 그런거 강요해서 헌금 걷는 목사가 아니예요.



그리고 헌금 많이 한다고 신앙이 좋은 것도 절대로 아니고요, 그 권사님도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아니라서 저도 늘 그분이 교인들 대할 때마다 불안해요, 그 분이 헌금은 많이 하시지만 성도들을 헌금으로 시험들게 해서 교회를 나가게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내가 아주 곤란합니다.



그러니 이번 일로 너무 상처받지 마시고 헌금 때문에 고민하지 마세요. 그저 교회에 오실때는 하나님 만나러 기쁜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저는 방개성도님이 이 마을에 오셔서 몸도 많이 좋아지구, 새로운 사람들도 잘 사귀시고, 그들에게 다 도움을 주고 사시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무척 기뻐하시는 분이라는거 잘 압니다. 천국 가는 길은 헌금을 많이 했다고 가는 길이 절대 아닙니다.



구원은 회개하고 거듭나야 가는 길입니다. 방개 성도님은 착하시고 순수하시니 언젠가는 큰 성령을 받아서 주님의 일꾼이 되실걸 저는 믿습니다."



방개는 목사에게 고마운 것이 있었다.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이 비인 바닷가의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누워 있을 때 그를 발견하고 살려준 것은 지금 다니는 교회의 목사였고, 목사 부부의 돌봄과 교인들의 돌봄이 있었기에 자신이 살아난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리고 순자 씨가 자살을 한 뒤 그가 교회 마당에 쓰러져 있을 때도 그를 삼일 동안 잘 보살펴서 살려낸 분들도 목사 부부였기에 그는 말은 안 해도 늘 목사 부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은 윤택이나 기환이 덕구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사람끼리의 의리나 가족애 같은 것이 아닌 신과 결합된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마음이었던 것이었다.



세상을 살지만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또 다른 안심과 영적인 다른 세계가 교회에는 있었기에 방개도 이제는 교회에 등록을 하고 보니 자기에게도 또 다른 가족들이 많이 생겨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혼자 사는 중년 남자가 그 공동체의 이 구석 저 구석에 끼자니 그 자리들 마다 다 여자 성도들이 있다 보니 그는 여자들과 같이 있는 자리는 불편해서 그런 저런 자리를 피했다.



여름 무더위에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가는 일을 피하고 윤택과 방개는 여름에는 바다 일을 좀 쉬기로 했다. 이제 윤택의 과수원은 제법 산에서 과수원으로 자리를 잡아서 수확도 꽤 되어 가니 바다일과 과수원 일을 다 같이 병행하려면 두 사람의 체력도 잘 조절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방개도 이제는 너무 거칠고 힘든 일을 하기에는 나이도 점점 먹다 보니 체력을 아주 많이 소진하고 나면 며칠은 몸져누울 때도 있어서 기환이 와서는 가끔씩 윤택에게 방개에게 너무 힘든 일을 시키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도 한 것이었다. 방개는 기환이가 주는 용돈만 가져도 충분히 생활은 가능했지만, 방개는 기환에게도 책이나 옷 그리고 가끔씩 그가 사들고 오는 고기 외에는 돈을 잘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기환이 학교 아이들과 고아들에게 들어가는 장학금이 큰 것을 알기에 그에게 허튼 돈을 받는 것을 죄스러워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환이 갖다 주는 책은 늘 언제나 반가운 손님 같이 책을 받는 것은 즐거워했다. 방개도 기환을 만나서 이제는 책을 몇천 권은 읽었으니 그가 기환이란 청년과 바닷가 오두막에서 살게 된 것도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 순자가 죽고 덕구가 엄청나게 부자가 돼서 천안에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가보니 정말 덕구는 부자도 보통 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엉가 엄마도 이제는 방개를 포기한 채 아직도 젊은 약사와 연애를 하고 살지만, 그 여자는 자신의 일을 너무 야무지게 하다 보니 양장점을 해서 번 돈으로 엉가엄마도 온양에서는 꽤나 떵떵거리고 사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엉가엄마의 고독을 젊은 약사가 다 채워주지는 못하는지 그녀는 늘 방개를 그리워한다고 덕구가 말했다.



그러나 방개는 순자가 죽고 나서는 아직도 온양에 갈 생각을 잘 안 했다. 덕구가 천안에 삼층짜리 건물을 다 짓고 축하잔치를 하던 날 엉가엄마도 그 잔치에 참여하러 천안을 왔들때 엉가를 본 것이 다지 그는 엉가엄마에게 어떤 연락도 따로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엉가엄마는 참으로 빼어난 멋쟁이로 변신을 해서 십여 년 전에 그 여자가 방개와 함께 거지로 살면서 떠돌아다녔다거나 미친 여자로 살았다는 것을 누구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본시 손재주가 탁월했고, 그 여자는 그저 남편의 폭력으로 정신이 잠시 허공을 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방개에게는 들었다.

검은색 벨벳 투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엉가엄마는 누가 봐도 멋쟁이에 귀티가 나는 독신녀 같았다.



그에 비해 덕구의 아내는 시골에 사는 아녀자답게 양순하니 순박해서 덕구가 이제는 도회지의 갑부 노릇을 하면 그 아내가 어찌 될까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덕구는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부동산에 일찍 눈을 떠서 도고와 온양에서 부동산을 했는데, 그는 이제는 천안에서 자기 건물 일층에 부동산 사무실까지 낸 것이었다.



덕구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 줄 아는 시야가 열렸고, 그런 능력을 타고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성품에 가장 좋은 것은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자기 것을 다 털어서라도 그에게 먹을 양식을 주거나 병원비를 내주는 것이었고, 동네의 가난한 집 아이들이 등록금이 없다고 하면 선뜻 그것을 내주는 것에는 절대 인색하지를 않았다. 덕구의 건물에서 잔치를 하던 날 엉가엄마는 방개에게 한마디를 한 것으로 그녀의 마음의 모든 것을 내어 보였다.



"나는 이상하게 지금도 양장점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방개씨와 살았던 생각만 나요. 남편하고 살던 기억은 하다도 안 나는데, 왜 방개씨와 떠돌아다닐 때 생각, 덕구 양반이 상엿집에 우리를 데려다 놓고 집을 짓던 생각, 방개씨를 원두막에서 처음 만나서 방개씨가 따다 준 수박과 참외를 정신없이 먹던 생각,


그리고 덕구 양반 사랑채에서 살던 생각,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서 내가 방개씨 방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비단 이불과 요를 깔아 놓았지만, 한 번도 오지 않는 당신이 야속해서 그 방을 이제는 잘 청소도 안 하고 그냥 먼지만 쌓아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방문 앞에 작은 토방에 앉으면 그렇게 마음이 쓸쓸할 수가 없어요.



당신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을 몰랐던 것 같아요. 사는 건 아무 걱정이 없는데 왜 옛날 생각만 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당신이 내 남자이길 바라지는 않아요.


이젠. 그런데 두 당신이 내 곁에 우리 엉가 곁에 없다는 것은 이상하게 꼭 남편이 없는 것 같고 엉가 아버지가 없는 것 같으니 정말 내가 이상한 여자인가요."



엉가엄마는 연애를 하지만 외로웠다. 그 외로움은 방개만이 채워줄 수 있는 인간애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이라고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엉가엄마로서도 참 애매한 노릇이었다. 젊은 약사와 연애를 한다는 것은 분명 여자로서 새 인생의 길목에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선도 있었고, 그에게서는 다 채울 수 없는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그것이 방개만이 가진 인간의 깊은 사랑, 인간애였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덕구뿐이었다. 덕구는 방개도 알고 엉가엄마도 알았기에 두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덕구의 생각에는 언제 가는 방개가 엉가 엄마 옆에 오겠지만, 그것은 남녀를 뛰어넘은 또 다른 인간사의 인연이 맺어져야 할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첫사랑이자 끝사랑이 될 것 같은 순자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덕구는 누구보다도 방개에 대해서 안타까워했고, 그를 위로해주고 싶어 했지만, 다행히 방개는 그 아픔을 고스란히 시를 쓰면서 이겨냈고, 윤택이와 바다와 과수원 일을 하면서 이겨낸 점에 대해 덕구는 방개를 참으로 자랑스레 여겼다. 그리고 시인이 된 방개가 덕구가 볼 때는 참 멋있었던 것이었다.



엉가엄마가 양장점을 냈을 때 덕구의 아내가 무척이나 엉가엄마 윤희를 부러워하고 샘도 냈던 것처럼 덕구도 시인이 된 방개를 진심으로 축하는 했지만 내심 글을 쓸 줄 아는 방개가 그렇게 부러웠고, 시인이란 칭호를 받고 살아가는 문인인 된 방개가 부러운 것은 배우지 못한 덕구로써는 넘지 못할 선이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중학교를 중퇴한 방개는 자기가 볼 때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덕구의 처지로써는 배움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기초가 튼튼한 집 같아 보였던 것이었다. 그래도 덕구도 부동산에 눈을 뜨고 천안에서 부동산업자와 함께 자기 건물에 부동산 간판을 걸고 보니 자기도 꽤나 출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동산 간판을 걸고는 중골에서 아침에 기차를 타고 천안까지 출퇴근을 하면서 천안에서 부동산 사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덕구가 부동산을 시작할 때 천안과 아산에는 대기업들이 서서히 몰려오면서 개발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덕구의 부동산은 돈이 눈덩이처럼 굴러 다녔고,


방개는 그런 덕구의 부와는 상관없이 시나 쓰면서 살아가는 어촌의 품팔이였다.


그래도 둘은 만나기만 하면 형제보다 더 뜨거운 우정을 나누는 편이었다. 변할 수 없는 관계는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상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둘은 변하지 않고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개가 무더운 바닷바람을 피해서 산의 계곡을 찾아서 산에 올라간 것은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집에서 한 삼십 분 이상을 걸어가면 산이 있었는데 그 산에 가면 작은 계곡이 있었고, 그곳은 더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서 방개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배터리를 새로 갈아 끼워서 그것이 빠지지 않도록 고무줄로 칭칭 감아서는 가방에 넣고, 거기에 주먹밥도 한 덩이 넣고, 참외도 한 개를 넣은 다음 책 하나를 들고 방개는 산을 올라갔다.



그가 산의 중턱에서 거의 계곡 가까이 갔을 때 예전에 없던 집이 하나 보였다. 그 집은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통나무집인데 집이라기보다는 원두막을 산에 지어 놓은 꼴 같았다. 그런데 그 통나무 집에 솔나무로 지붕을 해 놓고 , 그 위에는 비닐도 덮은 것이 그래도 사람이 여름에는 살 수 있을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통나무 집에서 웬 젊은 남자가 앉아 있다가 방개를 보고는 깜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남자는 젊고 훤칠하니 아주 잘생겼다. 나이는 삼십 대 후반 정도나 사십 대 초 정도로 젊었다. 그는 혼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방개는 그가 읽은 책이 성경이란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왜 이 산속에서 성경책을 젊은 남자가 읽고 있고 있는지 방개는 궁금했다. 방개가 먼저 그에게 인사를 하고 통나무집 마루에 앉아도 되는지를 물었다.



"네 앉으세요, 저는 며칠 전에 이곳에 올라왔어요. 아직 집을 다 짓지는 못했는데, 여기다 집을 간단하게 지어보려고 지금 공사 중입니다. "



산속에 젊은 남자는 예의가 아주 발랐다. 목소리도 아주 점잖은 것이 보통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의 이미가 아주 훤한 것이 방개는 처음이지만 마음에 끌렸다. 방개가 가방에서 주먹밥과 참외를 꺼내서 나눠 먹자고 하니 그 젊은이가 자기 짐에서 마른오징어를 꺼내서 먹으라고 내놓았다. 둘의 만남은 그렇게 산속에서 시작되었다.



"젊은 사람이 왜 산속에서 살려고 하나 물르겠네."


방개는 궁금했다. 이렇게 인물도 좋고 예의도 있는 귀티 나는 젊은 남자가 왜 산속에서 살려고 이런 허술한 집을 지어 놨는지 말이다.


"여기는 공동묘지도 있고 해서 아무도 안 올라와서 사는데 이런디다가 집을 지으면 귀신이 나올지두 물러유, 잘 생각해봐유, 뭐 혹시 세상에서 잘 못한거 있어서 도망댕기남유."



젊은 남자가 방개의 말에 웃음이 퍽하고 터졌다. 그는 박장대소를 하듯이 웃더니 말했다.



"저는 진짜 귀신이 있나 싸워보려고 이 산에 공동묘지가 있다구 해서 왔는데요. 하하하,"



"뭐유, 그 말이 진짜유."



"진짜 일 수도 있고, 아닐 수 도 있지만, 사실 저는 기도를 하려구 이 산에 올라왔어요. 저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전도사예요.


그런데 제가 앞으로 목회를 잘하려면 기도를 많이 해놔야 해서 저는 작정하고 이 산에 오른 겁니다. 산기도를 해서 영역을 쌓으려고요. 앞으로 삼 년간 이 산에서 살 생각으로 산 주인에게 허락도 받고 집을 짓는 거예요.



여름엔 시원한 통나무 오두막, 겨울엔 따스한 흙집을 지으려는데 제 생각처럼 집은 지을 수가 없을 것 같네요. 그래서 내일부터는 목수를 좀 모시고 와서 흙집을 지어야 할 것 같아요. 혼자 살아도 삼 년 정도 살려면 최소한 방한칸 부엌 한 칸은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제 기도터는 저기 위에 있는 공동묘지예요. 거기서 밤마다 귀신들하고 싸우는 기도를 해야죠. 저는 나중에 저희 아버지처럼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려면 그 정도 기도는 해야 하거든요.


지금까지는 완전히 세상에서 양아치처럼 살았으니까요."


방개는 이 젊은이가 생긴 건 멀쩡한데 정신은 온전치가 않다고 생각을 했다. 아니 귀신과 싸우려고 공동묘지에서 산기도를 하다니 이게 웬 대낮에 귀신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그래도 그가 기도를 하겠다는 전도사라니 우선은 방개가 그 집을 같이 지어주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기도는 낮에 산 아랫동네에 있는 자기 다니는 교회를 가서 하라고 말했다.



"네, 제가 서울에 저희 아버지 교회도 놔두고 왜 여기 산에 올라왔는데요, 이곳에서 바다도 보고 산속에 공동묘지에서 밤에 기도를 하다 보면 저도 능력을 받지 않겠어요.



목회는 영적인 능력이 없으면 하기가 힘들어요. 신학대학 나오고 유학 갔다 와도 영적인 능력이 없으면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가 힘든 것이 목회라고 저희 아버지가 누차 강조하셨고, 저희 아버지는 이런 정도까지는 말렸지만, 저는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목회를 하려면 기도의 산을 넘지 않고는 목회자들이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이구, 이 사람이 하는 말을 나는 알어 들을 수는 없구 말여, 집 짓는거는 내가 도와줌세, 요 근처에서 흙을 퍼다가 집을 지으문 되니까 목수나 한 사람 불러와봐유, 대강 지어두 지붕두 해야 하니께."



젊은 남자는 방개가 교회에 다닌 다는 말에 무척 반가워했다. 그러나 젊은 남자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상처가 인생에 파여있는 것을 방개도 얼마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젊은 남자는 그 상처를 피해서 산속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방개는 알게 되었다.



사람의 상처가 깊으면 사람을 기피하게 되는 건 목사나 전도사도 마찬가지인 것을 방개는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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