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청산할 결심

by 권길주

방개가 사흘이나 목사의 사택에서 거의 혼수상태로 잠만 자고 일어나니 목사님과 사모님이 그를 안타까이 지켜보고 있다가 반색을 했다.


"어휴, 방개 성도님 이제야 눈을 뜨시네요. 좀 괜찮으세요."


목사가 방개의 손을 잡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사모도 방개의 동태를 살피더니 얼른 주방에 가서 꿀차와 따끈하게 데운 미음죽을 가지고 나왔다. 방개는 가만히 누워 있다가 몸을 조금 움직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꿀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몸에 기운이 조금 들어온 듯했다.


"성도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저희 교회 마당에서 쓰러진 걸 제가 업고 와서 여기 사택에서 사흘이나 숨만 겨우 쉬면서 눈도 못 뜨셨었는데...."


방개는 그래도 목사가 자길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고에서부터 삼일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먹지도 않고 천리 가까이 걸어서 서천 비인 앞바다까지 도착하고 보니 이미 온몸은 땅바닥을 기어 다닐 정도밖에 힘이 남아 있지를 않았던 것이다. 방개는 목사가 잡은 손에서 온기를 느끼며 다시 몸을 벽에 기대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네, 목사님 제가 혼자서 무진장 짝사랑했던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여자가 작년에 시집을 갔는데, 글쎄 저수지에 빠져서 죽었네요. 거길 갔다가 왔어유."


"어머나, 세상에 우리 성도님 힘든 일 겪으셨네요. 아휴, 마음이 많은 아프시겠어요."


거실 한쪽에서 방개에게 연신 먹을 거를 내오던 사모가 얼른 방개의 옆에 앉아서 방개를 위로한다. 사모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방개는 부끄러움에 얼른 눈물을 훔쳤다.


"방개 성도님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도 돼요.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방개는 그때 얼른 자기가 교회에 왜 찾아오게 되었었던가를 기억을 했다. 그리고는 목사에게 순자의 지옥에 관한 얘기를 물었다.


'저기, 목사님 그런디 누가 그러는데, 자살하문 지옥을 가나요. 순자 씨 그러니까 제가 좋아하던 그 여자가 저수지에서 자살을 한 거라는 디 지옥 같으면 어떡한데요."


목사는 방개의 질문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금방 답을 하지를 않았다. 이 사람한테 지금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해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하는 것이었다. 자살한 사람들이 다 지옥을 간다고 하면 그것도 이 사람이 충격을 받을 것이고, 잘 모르겠다고 하면 그것도 목사의 양심에는 맞지 않은 얘기다. 그리고 신학적이든 성경적이든 자살에 관한 얘기를 쉽게 성도들에게 결론을 내서 말하는 것도 때로는 목사들마다 견해도 달랐기에 그는 방개의 그 어렵고 힘든 질문에 얼른 답을 줄 수가 없었다.


"성도님, 우리 인간은 누구든지 한 번은 죽습니다. 그런데 누가 천국을 갔는지, 지옥을 갔는지, 그것을 이 땅에서 어찌 다 알겠습니까? 때로는 섣부르게 천국이다 지옥이다 하는 말을 함부로 해서 죽은 사람이 천당에 있다느니 지옥이 있다느니 그런 판단을 함부로 해선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니 성도님은 지금부터는 그분이 어디에 가 계시든지 그분의 영혼이 평안하길 기도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더 우선 먼저 할 일은 성도님의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고 다시 글도 쓰시고 바다에서 윤택 씨와 고기도 잡으시고, 교회에도 자주 나오셔야죠. 그리고 이번 겨울에 저희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도 참석을 좀 해보세요. 또 연말에는 부흥회도 있고요. 지난번에 그

유명하신 부흥강사님을 또 올겨울 부흥집회에 다시 모셨습니다. 이번엔 방개 성도님이 은혜를 좀 더 받으셔서 새로운 인생을 사셨으면 싶네요."


방개는 목사의 말을 들어보니 이 땅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순자 씨의 영혼이 어디에 있든 이미 그녀의 육신은 이 땅에 없고, 다시 볼 수도 없는데,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순자 씨가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만 궁금해했나 싶어서 잠시 멀쑥했다. 이미 죽은 자는 어쩔 수가 없으니 산자는 산자의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방개는 목사의 얘길 새겨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방개는 진리에 대한 궁금증이 처음으로 강하게 밀려오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 지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남유, 지가 못나게 살어서 좋아하는 여자 하나두 지켜주질 못했구먼유, 그 여자를 내가 데리고만 살았어두 그 여자가 그리도 불행하게 죽지는 않았을거유, 시집두 그런 술주정뱅이에다 바람잽이 같은 놈한테 안 갔을테구유, 나이두 많은데다가 그런 얼치기 같은 놈한티 순자씨를 빼앗긴거는 내가 너무 등신 같이 살어서 그래유, 정신을 못차리구 환청에 시달리구 살다보니 결혼두 싫다구 했더니 이 험악한 꼴을 봤네유, 지가 글쎄..."


방개는 순자가 죽은 것은 순전히 자기 탓이라고만 여겼다.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스럽고 미안하고 고통스러웠던 것이었다. 목사는 가만히 방개를 위해 기도를 하면서 방개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이 성도가 앞으로 삶을 안정되게 살고, 거듭난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고심을 했다.


"성도님, 이제는 과거를 청산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고, 그것도 자살을 했다니 마음이야 찢어지고 괴로움도 크시겠지만, 그분은 엄연히 다른 분의 아내였잖아요. 그분의 결혼 생활이 어떠했든지 그건 성도 님하고는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분의 인생의 몫이고 고통마저도 그분의 십자 가고 숙명이었겠죠. 그러나 그분은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했고, 자기를 위해서 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분에 대한 생각으로 이제 죄책감이라든지, 스스로를 자책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방개 성도님을 위해서만 사십시오. 더 건강하게 사시고, 돈도 더 벌으셔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 동안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 놓으시고, 더 늙기 전에 결혼도 새로 하시고요. 저는 성도님이 그렇게 건강하고 밝게 기쁘게 남은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내가 건강하고 내가 돈도 있고, 내가 능력이 있어야 남도 돕는 거예요. 지금 성도님이 제일 후회하는 게 그거잖아요. 성도님이 환청에 시달리다 보니 한 곳에서 살지도 못하고 떠돌다 보니 집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사랑하는 여자를 때에 결혼해서 지켜주질 못하다 보니 이런 비극을 낳은 거잖아요. 그러나 그것도 성도님 탓이 아니에요. 성도님은 전쟁 때 소년병으로 전쟁의 고통을 치르신 분이고, 가정사도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고통에 연속인 삶을 사신 거지요. 그러나 이 서천에 오셔서는 꽤 안정을 찾고 계시잖아요. 그러니 여기서 다시 힘을 내셔서 일어나시면 분명히 앞으로는 남을 위해서도 큰 일을 하실 거고,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 있으실 겁니다."


방개는 목사의 말에 순종하기로 했다. 그의 말이 다 맞았기 때문이었다. 방개는 그 자리에서 순자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기로 했다. 그것이야말로 사내로써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새 인생이 장을 열어보기로 결심을 했다. 과거가 청산이 되어야 새 인생도 열린다는 생각이 방개에게 확실하게 들게 한 것은 목사의 진심 어린 말 때문이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이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기로했다. 이제 그를 끈길기게 괴롭히던 전쟁의 후유증도 다 고쳐질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방개는 언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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