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씨가 죽었다네.

by 권길주

사랑보다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것은 그리움이란 것을 방개가 깨달은 것은 순자를 놓치고 나서였다. 자기 손안에 가져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보니 그리움은 이상하게 배가 되었고, 아쉬움도 날마다 한숨처럼 토해져 나왔다. 그러나 방개는 그 모든 감정을 꺼져버린 불처럼 재만 남기지 않고 그리움의 불씨를 모아 시란 것을 처음 써 봤다. 그리고 아쉬움과 외로움을 손바닥에 모아서 그걸 가지고는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는데 썼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망가뜨릴 것 같았고, 자신을 부수고 나면 남는 것은 후회밖에 없을 거란 생각에 그는 안간힘을 쏟아부으면서 윤택과 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가끔씩 윤택이 과수원에서 과일들 따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지를 생각을 했다.

인생이 이대로 허망하게 흐른다면 자기는 정말 일생동안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 것이라는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오래 따라다니던 전쟁의 후유증인 환청도 요즘은 많이 좋아졌는데, 이제는 여자문제로 이렇게 큰 낙심을 하고 산다면 자신은 무엇이 남을 것인지를 자꾸만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바다에서든 길에서든 해변을 걸으면서 든 어디서든 순자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를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고부터 농촌도 도시만큼 바뀌는 생활을 했다. 전자제품을 누구네 집이 더 많이 들여놓느냐에 따라서 생활의 변화는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달라진 것이었다. 누구네 집은 아직도 냇가에 가서 아침마다 빠래를 한다면 어느 집은 세탁기가 빨래를 해 주고 그 시간에 그 집에 여자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연속극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방개도 몸이 안 좋아서 산 세탁기가 빨래를 해주고, 불을 때는 대신 전기곤로에다

밥을 해 먹을 정도로 생활이 편리해진 것이었다. 방개는 생활이 조금은 편해진 대신에 남는 시간에 책 보고 글을 쓰는 일에 집중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감정이 소모되고 흐트러지니 자꾸만 마음을 잡으려고 애를 쓴 것이었다.


그런 방개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어느 날 날아왔다. 그것은 덕구에게서 온 전보 한 줄이었다. 그때까지는 덕구도 방개도 전화기하고는 먼 생활이었기에 급한 소식은 전보를 띄워야 했는데, 전보를 받을 만큼 가까운 사람이 없던 방개는 전보를 들고 온 우체부를 보고는 방 안에서 어리 떨이 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자기한테 전보를 칠 만큼의 중요한 일이 있고 급한 소식이 있단 말인가 싶어서였다.


느릿한 걸음에 굼뜬 표정을 하고 방에서 나오는 방개를 보고는 우체부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표정을 찌푸리면서 급하게 전보용지를 그의 손에 쥐어 주고는 잽싸게 자전거에 무거운 책보따리 같은 고동색 가방을 싣고

아랫동네로 내달린다.


방개는 이상하게 가슴이 두 망 방이 치는 것을 진정하고 전보를 열어봤다. 그런데 그 안에 믿을 수 없는 한 줄이 적혀있었다.


< 방개 보게, 순자 씨가 죽었다네, 급 오길 바람. 내일 장사 치른다네.>


방개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글자에 불과한 것이지, 사실이 아니다. 방개는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읽고 또 읽었지만 믿어지는 않는 글자만 점점 확대가 되고 나중에는 그 글자가 글자 하나가 개구리보다 커 보였다. 글자는 정말 금세 그 종이를 벗어나서 개구리처럼 뛰어다닐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논이든 밭이든 어디든 뛰어다니는 개구리처럼 그 전보에 있는 글자들은 방개의 심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전보를 열 번도 넘게 읽고 또 읽다 보니 나중에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눈물도 나오질 않고 심장만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방개는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우선 제일 먼저 할 일이 온양에 있는 덕구에게 가봐야 모든 사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덕구말로는 순자 장례가 내일이라고 적혀 있으니 정말 순자가 죽었다면 내일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는 게 마지막이 아니란 말인가.


방개는 순자를 그리워하며 시를 쓰던 바닷가에 무조건 달려가보았다. 정신이 수습되지 않으니 감정도 수습이 안 되었지만, 그래도 그 해변에 앉아서 먼바다를 바라보니 전보를 쥔 손에서 다시 전보를 꺼내보니 그것이 사실이란 현실감이 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덕구가 이런 장난질을 칠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란 것이었다. 순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지만, 덕구는 그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이런 장난 전보를 쳐서 자기를 온양 중골에 오게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서야 방개는 가슴이 터질 듯 아파오면서 목을 놓아서 바닷가에게 눈물 터트렸다. 꺼이꺼이 목이 메도록 울면서 드는 생각은 그래도 이것이 사실이 아니고 이 전보쪽지가 거짓말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덕구를 생각하면 그것은 내가 바라는 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방개는 다시 바닷가에서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목욕을 대충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기차를 타러 서천역을 행해 걸었다. 장항선 기차를 타고 온양까지나 도고온천역까지 빨리 가야 덕구를 만나서 무슨 얘기든 들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걸어서 가면 서천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도고온천역에서 내리면 저녁쯤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방개를 태운 장항선 완행열차가 서천역에서 긴 몸을 흔들며 출발을 했다. 점심도 먹지 못한 방개는 배가 고픈 것도 잊고 창가에 앉아서 답답하니 차창밖만 바라보며 기차가 달리는 데로 몸을 맡겼다. 마음이 힘든 방개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몽당연필 한 자루와 작은 수첩을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웠다. 뭔가를 쓰거나 말하기에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쓰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나을지도 몰라서 방개는 수첩을 이리저리 만졌다.



잠깐만 기다려봐유

아직은 내가 도착을 못했으니

지금

눈을 감지는 말어유


내가 당신한티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도 못했는디

당신이 어딜 간데유


난 아직도 당신한티 진짜 할말을 못했구먼유






아직 광천지나구 홍성인데

언제 도고온천역에 도착할까유


당신이 아직도 사람 놀래키구 이러문 못써유

난 당신이 조신하게 거기서 살기만 바래유


어디 멀리 가면 않되는구만유


내가 쫒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면 않되는거유


내가 가끔씩 가서 얼굴이라두 봐야는디

어딜 간데유



아무래두 덕구가 전보를 잘못친거 같어유

순자씨가 죽은게 아니라

순자씨 남편이 죽은거 아니래유


덕구가 급해서 남편 소리를 뺐나 싶으니까


내 마음이 갑자기 두둥실 하늘을 날러요


진짜 덕구가 급하게 전보를 쳐서

남편이란 두 글자를 빼구 쓴거지유.


방개를 실은 장항선 완행열차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예산역과 신례원역을 지나 도고온천역에서 섰다. 방개는 이전에 자신이 떠돌이로 엉가엄마와 엉가를 데리고 동냥을 하면서 살았던 그 머나먼 길을 한걸음 한걸음 다시 걸어서 덕구가 살고 있는 중골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고, 이제는 제법 깨끗하게 빨은 옷에 신발도 그럴듯하게 운동화도 신고는 있었지만, 왠지 새로 입은 이런 옷과 신발들이 자신의 옛모습에 비하니 남의 옷을 얻어 입는 느낌이였다. 늘 누더기에 검정 고무신만 신고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던 예전의 자신의 모습이 아닌 새옷을 입고 괜찮은 차림을 하고 순자씨 앞에 나서자니 순자씨가 낮설어할까봐 방개는 잠깐 고민을 했다.


'내가 지금 순자씨를 만나러 왔는디 내 옷차림이 예전 같지 않아서 영 이상해 보이는구만'


방개는 혼자 중얼거리며 순자씨가 많이 바뀐 자신의 모습을 보고 못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고민까지 했다. 그때 기차가 이미 도고온천역이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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