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by 권길주

덕구는 방개를 마중 나와서 도고온천역에 서 있었다. 덕구는 방개의 얼굴을 보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앞서서 걸었다. 달빛이 산길을 휘감고 돌면서 가을빛이 도는 산의 무게가 이상하게 두 사람의 침묵만큼이나 무거웠다. 단풍 진 산허리가 달빛에 베일 듯이 휘어진 길을 둘은 계속 걸어만 갔다. 덕구는 무슨 말로 방개를 위로해야 할지를 몰라서 입을 열지를 못했고, 방개는 순자가 죽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녀의 남편이 죽은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은 어쩐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없는 아이의 농담처럼 덕구에게 들릴까 봐 그것도 물을 수는 없었다.


중골에 들어와서야 덕구는 방개에게 물었다.


"자네, 지금 순자씨가 시집간 그 집에서 초상을 치루느냐고 동네 사람들하고 친척들이 모여있는데

가볼 생각이 있는감, 있으문 내가 동행할테니."


방개는 더 이상 사실 확인이 필요없는 말을 덕구가 함으로써 그저 넋이 나간 듯이 덕구의 초점없는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런 방개에게 덕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나 나나 순자씨 죽음에 끼면 않되지 않어, 남편두 있는데, 그러니 나랑 우리집에 가서 사랑채에서 술이나 한잔 하게나, 순자씨 생각해서 안가는게 좋치 안남,"


그도 그럴것이 아무리 감정을 숨기고 아무도 모르게 방개가 순자를 짝사랑 했다고 해도 순자씨 어머니가 살아계실때 혼담도 잠깐이라도 직접 오간 사이니 방개도 순자의 초상집에 방개가 간다는 것이 감당 못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지 뭐."


방개는 더는 답할 말도 없고 정신이 아직도 혼미한 것 같아서 보름달처럼 휘영청 밝은 달빛이 환히 비추는 길도 어질 거릴 정도였다. 두 사람은 덕구의 집에 도착해 사랑채에 밥상을 사이에 놓고 앉았다. 덕구의 아내가 정성 들여서 밥상을 준비해 놨다가 방개가 오자 뜨거운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서 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방개는 밥은 몇 술 뜨지도 못하고 덕구가 주는 술잔만 몇 잔을 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별 말이 없이 달빛이 비치는 바깥 마당에 서 있는 커다란 감나무에 매달린 황금빛 감만 멀건히 바라봤다.


"지난해 보다 올해는 감이 두 배는 더 열린 것 같아. 자네 서천에 갈 때 한 보따리 따줄 테니 가지고 갈텨."


"에이구 무거워서 감같은거는 못가지구 다녀유. "


두 사람은 순자의 죽음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만 동문서답하듯이 몇 마디를 나눴다. 그러다가 방개가 먼저 순자의 죽음의 이유를 물었다. 궁금했지만 참고 참다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런디 순자씨는 워쩌다가 갑자기 이렇게 날 허망하게 만든데유."


덕구가 무거운 침묵으로 고개를 푹 수그리며 손바닥을 몇번이고 비벼댄다.


'무신 , 말못할 일이라두 있나유, 그여자가 죽은 이유가."


덕구가 고개를 드는데 벌써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그도 이웃 동네에 살면서 귀머거리 순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항시 그녀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들으면 힘든 얘기긴 한데, 순자씨가 밤에 저수지에서 빠져서 죽었다네. 그 술주정뱅이 남편이란 작자가 얼마전에 온양에서 다방 레지하고 바람이 났다는디 그 젊은 레지가 아들을 낳아가지고 집에 들어왔데나, 뭐 온양에다 살림을 차렸대나, 아무튼 순자씨 남편이란 작자가 레지랑 바람이 나서 아들을 낳았데, 나이도 많은 늙은이가 미친거지 뭐, 논을 얼마를 팔어다가 그 다방 레지를 줬다나 뭐. 기가막힌 일지 뭐여."


방개는 한순간 온 몸에 있는 물과 피가 쫙하고 빠져서 어디 수쳇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이 힘이 쭈욱하니 빠져나갔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 순자 어머니의 혼인말을 받아 들였어야 하는데, 순자를 이렇게 죽게 만든 것은 자기 탓이란 생각 밖에 들지를 않았다.


"자네 탓은 아닐쎄, 사람이 다 이래서 운명대로 사나봐, 자네를 만나서 살았으문 이런 일이야 있었겄어. 다 순자씨 팔자여, 팔자. 그러니께 너무 서러워말고 내일 장사 치르는거만 보고 내려가게나. 그래도 내가 이 끔찍한 상에 자네를 부른 것은 자네가 왔다 가문 순자씨가 그래도 편안하게 저 세상을 가지는 않을까 해서 불렀네, 그 사람 속이야 내가 모르지만두.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이나 하것소만."


방개가 참던 눈물을 터트리더니 엉엉 소리를 내서 울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체면도 없고 이러고저러고 할 말도 없었다. 그저 답답해진 속을 풀어내자니 소리가 터져 나오고 눈물이 터져 나왔는데, 그 소리가 열다섯 살 소년병으로 전쟁터에 나갔을 때 친구가 폭탄에 맞아 사지가 찢어져 자기 앞에서 죽었을 때 그때와 같이 어찌할 수 없는 통곡으로 두려움과 공포와 무서움으로 그 전쟁터의 험한 고지에서 몸을 피해 혼자 산속 깊은 웅덩이에서 포탄과 총성이 울리는 산속에서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산이 꺼져라 울던 그때와 같은 울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그러나 방개도 덕구의 아내와 아이들이 안채에서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자는 중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입을 틀어막고 울다가 드디어는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달이 감나무 위에 걸린 것이 꼭 순자 씨의 얼굴이 그 달 속에 있는 것 같아 방개는 감나무를 끌어안고 가슴이 사무치도록 꺽꺽 대며 눈물을 흘렸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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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개는 순자의 초상을 치르는 것을 멀리서만 보았다. 동네의 젊은 남자들이 상여를 메고 순자를 산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꽃상여가 묘터에 가까이 가는 것까지 보고 방개는 순자가 살던 마을이 훤히 보이는 산 중턱에 혼자 앉아서 시를 외웠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었는데, 시가 잘 외워지질 않고, 앞과 중간부분만 생각이 났다. 얼마 전 기환이 사다준 시집이었는데, 방개가 참 좋아하는 시였는데 그 시가 왜 갑자기 이렇게 계속 자기 머릿속에서 웅얼웅얼 거리며 가슴에서도 웅얼댔다. 다만 입으로만 시가 나오질 않았다. 방개는 순자에게 진달래꽃과 개나리꽃, 제비꽃, 원추리꽃, 복숭아꽃, 벚꽃을 꺾어다 장독대 옆에 두고 몰래 그녀에게 자기 마음을 전했던 그때가 먼 옛날처럼 떠올랐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꿈뻑대면서 그 꽃을 보며 좋아하던 모습이 그리웠다.


방개가 생각하는 순자는 참 이뻤다. 큰 눈도 예쁘고, 달덩이처럼 뽀얀 얼굴도 예뻤는데, 왜 순자가 죽은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방개가 순자를 생각하는 동안 순자의 육신은 땅에 묻혔다. 방개가 있는 산속에서 산비둘기가 구구대고 어디선가 울기 시작했다. 방개는 산비둘기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지금까지 순자를 사랑한 방식은 잘못된 방식이란 것을 알았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지켜주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이제야 들은 것이다. 그는 순자 어머니의 혼인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이 그리도 못나게 생각이 들어서 그 산자락에서 후회의 눈물을 산이 젖도록 울어댔다.


그리고 방개는 다음날 새벽이 올 무렵 순자의 무덤을 찾아갔다. 아직 순자가 거기서 잠을 자듯 누워 있는 것 만 같아서 방개는 무덤을 안고 또 가슴이 구멍이 날 정도로 울었다. 그러나 방개에게 순자는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었고, 생각할 수록 사무치게 그리운 여자였다. 방개의 마음이 타락할 것 같이 괴롭고 슬퍼서 방개는 덕구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순자가 묻혀 있는 산을 내려와서는 한없이 걸어서 다시 서천으로 내려왔다. 사흘밤낮을 걸어서 온 것이다. 그는 사흘을 먹지도 않고 걷고 또 걷기만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을 황금 들판도 달래주질 못했고, 오색창연한 단풍들도 달래주질 못했고, 방개가 좋아하는 바닷가의 푸른 해변이나 고운 모래사장도 그를 달래주질 못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해도, 달도 별들도 그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질 않았다. 방개는 서천 집에 돌아와서 몇 날인지 며칠인지 알 수 없이 먹지도 못하고 잠만 잤다. 자고 일어나서 물을 조금 마시고는 또 자고 또 잤다. 한 일주일쯤 그렇게 자고 일어나니 겨우 배가 고파서 방개는 바다로 나갔다. 모시조개를 캐다가 수제비라도 끓여 먹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방개는 다시 바닷가 바위에 앉아서 순자를 잃은 시름을 달랬다. 그때 갑자기 중골에서 잠깐 마주친 과부 박권사님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자살하문 지옥간다구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셨는디 그 착하고 이쁜 귀머거리 순자씨가 지옥을 갔으면 어쩐데유."


방개는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님은 가짜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분명히 순자는 천국에서 지금쯤이면 편안하게 세상 시름을 잊고 있을지도 모르고 하나님도 착하고 이쁜 순자 씨를 무지 이뻐할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방개의 마음은 왜 이리 힘들고 괴로운지 알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교회에 가서 목사님께 자살하면 지옥 가느냐고 물어봐야지 싶어서 방개는 모시조개를 캐다 말고 교회로 행했다. 너무 허기가 지고 배가 고파서인지 걸음도 걸리지를 않았다.


교회까지 간신히 간 방개는 교회 마당에서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며칠을 굶고 며칠을 걸어서 그는 아예 맥이 다 빠져 버린 것이었다. 방개는 교회 마당에 쓰러진 채 다시 깊은 잠에 빠진 것인지 혼수상태에 빠진 것인지 알 수 없이 그는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사택의 거실에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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