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언제나 당신 때문에 웃고 울지요.
아침에도 생각을 했어요.
당신이 혹시 오늘도 술주정뱅이 남편한테
귀가 먹었다고
매질을 당하거나
호되게 시집살이를 하지는 않는지
그러다가 점심때가 되니
출출해서 멸치 몇 마리 잡아넣고
국수를 끓여서 먹고 나니
다시 당신 걱정이 물밀듯 내 방안까지 들어와서
밖을 나가 해변을 무작정 걷다 보니
바다에는 서서히 물이 빠지고
지는 해가 물속에 나를 비추었지요.
그런데 물속에 비친 나는 바보였어요.
내 마음은 산등성이를 넘어설 때마다
곧 바다가 보이겠지
하고 산을 올라갑니다.
아침도 거른 채 산등성이를 올라온 것은
밤새도록
당신 때문에 뒤척이다가
내가 이렇게 여기 산꼭대기에 서 있는 건
뭔 일이여 하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내 마음은 아직도 산등성이를 돌아서
바다에 닿아 있듯이
당신께만 닿아 있습니다.
당신에게 줄려고 정신없이 갯바위에서
굴도 잡고 갯벌에서 모시조개도 잡고 했는데
쌍섬 절벽에 소나무의 솔잎은 왜 그리 시퍼런지
내 마음도 갑자기 시퍼러니 눈물 나게 서러웠지요.
비인 해변가 여기는 참 아름답구먼요.
갯벌에는 언제나 철새들이 있고,
혹부리오리가 날개를 치고 날아가는 광경도 아주 장관이지요.
물이 빠진 마량포구에서 마시는
술 한잔도 기가 막혀요.
나 혼자 마시니까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온다면야 술잔보다 좋으련만.
말해봐요
내가 답답해서 그러는데 말 좀 해봐유
사는게 그냥 저냥 살만한가유
나는 당신이 시집을 갔다고 하니께
사는게 아주 재미가 없어유
귀가 먹었어두 말은 조금 하잖아유
난 연애 같은거는 잘 물러유
그런디 당신이 시집을 갔다니께
그게 그렇게 서럽네유
그런디 워째서 봄도 가고 여름도 가고 가을도 가고
겨울도 가고 세월이 다 가도
당신은 안오고 난 못견디게 당신이 보고싶구먼유
보고싶은 사람하구 살문 않되는거유
가시고기라구 알어유
등에 가시에 있어서 가시고기라구 한데유
그런데 그 가시고기는 아버지가 사랑이 많데유
엄마 가시고기가 아기를 낳고 도망을 가도
아버지 가시고기가 자식들을 다 먹어 살린데유
그리고 자식들에게 죽은 자기 몸을 뜯어 먹게 한다는데유
그런게 진짜 사랑인가봐유
자기가 죽어서도 몸과 살도 줄 수 있는 사랑말여유
나는 일생 한번도 그런 사랑을 받어 보지두 못했구
그런 사랑을 누구한티 준 적도 없어유
그런디 여기 있는 집이랑 책이랑 다 팔어서라두
아니 내 몸뚱이를 어디다 팔어서라두
당신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인가유
방개는 가끔은 시를 쓰는 것 같기고 하고 가끔은 독백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어디서든 쓰고, 무엇이나 생각나는 것을 써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방개가 편지를 써서 덕구에게 보낼 정도로 방개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그 편지를 통해서 덕구도 방개의 순자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생의 한 순간처럼 지나가고 마는 인간의 나약한 감정인가 싶어서 덕구의 가슴도 아팠다. 다만 엉가엄마만이 새 연인과 연애를 하느라 그런지 방개에 관해서 자세히 묻는 법이 없이 방개 얘기만 나오면 샐쭉하니 표정이 차가워지곤 했다. 그래서 여자는 믿을 것이 못된다고 덕구의 아내는 엉가엄마의 변심을 투덜 대기 곤 했다. 그러나 덕구의 생각은 달랐다.
엉가엄마가 만약에 방개를 대책 없이 기다리기만 했다면 그 인생은 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는가 오히려 덕구는 연애를 하는 엉가엄마를 이해하는 쪽이어서 두 부부는 엉가엄마의 연애 사건을 두고는 항상 부부싸움이 벌어지고는 했다. 그렇다고 엉가엄마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지 얘들도 전혀 모르고 이웃들도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엉가엄마가 자기의 연애 사건을 왜 덕구네에게 알렸는지는 두 사람도 사실 엉가엄마의 속을 다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엉가엄마는 새로 만난 나이 어린 약사에게서 진실한 사랑보다는 세상을 즐기는 연애를 하는 것 같다고 덕구의 아내는 질투와 노여움을 같이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차이도 많은 어린 남자인 데다가 재력도 있고 배움도 많은 약사를 만나는 것이 덕구의 아내로서는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던 미친 여자 엉가엄마가 너무 높은 데를 보고 산다고 질투를 냈던 것이고, 철 모르는 아이들에게 본이 안 된다고 노여움을 낸 것이었다. 그렇다고 엉가엄마가 연애를 하는 것을 엉가도 모르고 조카들도 전혀 알 길이 없는데도 덕구의 아내는 미리 노심초사 거리며 그녀의 연애가 어서 끝나기만 바라는 눈치였다.
"당신 왜 그려, 과부랑 홀아비랑 연애 좀 한다는데, 그러다가 결혼이라두 할지 어떻게 알아."
"아휴, 결혼이 엉감생심 말이나 돼유, 남자는 일곱살이나 어리지유, 거기다가 온양에서 떵떵거리구 사는 집안에 아들이라서 서울서 약대를 나온 약사아녀유, 그런디 무신 결혼이 성사가 되겄어유, 당신은 꿈도 야무지시네유, 옛말에 오이밭에서 삿갓도 고쳐쓰지 말라구 했데유, 공연히 엉가엄마만 이루지지두 않을 사랑을 하다가 양장점두 망하구, 이래 저래 망신살만 뻗치면 큰일 아녀유."
"왜 그렇게 나쁜 쪽으만 말을 혀는겨, 사람이 살다보문 생각두 안한 좋은 일두 생기는겨, 그 남자두 젊어서 홀애비가 되었다니 월마나 상처가 많은 사람아녀, 그쪽 집에서두 그 사람이 그동안 처녀두 많이 선을 보였다고 소문도 났다는데 그런 여자 다 싫다고 하고 혼자 살었다는데, 왜 엉가엄마 양장점이 약국 맞은편에 있어서 그약사 눈에 엉가엄마가 자꾸만 보였것어, 그런걸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거 아닌가벼."
"운명은 무슨 운명이유, 다 연애할 때 꼬드기는 남자들 입술발림이지유, 난 아무래도 엉가엄마가 공연히 사람들 입질에 올려질까봐 간이 조마조마혀유, 나두 엉가엄마 잘 되길 얼마나 바라는디유."
"당신이야 방개랑 엉가엄마가 늙어서라두 같이 살길 바라는거 나두 알지, 그렇치만 방개는 오로지 순자씨 뿐이구 그사람 마음은 거기에 다 매여있으니께 아직은 어려워."
덕구와 덕구의 아내는 방개와 엉가엄마가 늦게라도 만나서 살아보길 바라지만, 이미 그 일은 절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은 현실이었다. 방개가 엉가엄마의 연애 사실을 안다고 하면 그 여자를 과연 방개가 받아줄지도 모를 일이고, 엉가엄마 역시 자신이 다른 남자랑 연애를 하고 방개와 살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두 사람은 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덕구의 아내는 이상하고 오묘한 감정이 섞이면서 엉가엄마가 약사랑 연애를 한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죄가 되지 않는다면 엉가엄마처럼 살아보는 것도 부러운 인생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하고 좋은 사람과 매일 약국과 양장점에서 마주 보고 산다는 게 얼마나 신여성 같은 폼이 나는 일인가도 싶어서 약간은 부러워한 것이었다.
"결혼도 안하고 연애만 하고 살다가 벌 받을지두 모르지유, 사람은 속여두 하늘을 속이것슈."
"아이쿠 이 여자가 진짜 왜 그런댜, 뭐 엉가엄마가 무슨 천벌을 받을 짓을 한 것두 아닌디 왜 벌을 받어."
"그럼 아녀유, 여자가 조신하게 살어야지, 과부됐다구 금새 남자랑 연애하고 돌아다님 그게 정상은 아니지유, 자식두 있는디, 그러다가 들키문 엉가가 어떻게 생각할지 알아유, 자식 가슴에 상처주고, 자식들 얼굴 못들구 살게 만드는게 죄지 뭐가 죄래유."
"말 조심혀, 여보, 지금까지 우리가 엉가엄마를 봤잖아, 첫 남편 잘못 만나서 맞다가 맞다가 정신이 돌아서 집을 나와서 여자가 갓난 아기랑 떠돌고 거지로 살았던 세월이 몇년인데, 그 여자가도 방개를 못 만났으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두 물러, 그런 여자가 남편두 죽구, 방개는 다른 여자 좋아라 하구, 이제 살만 해서 신세 좀 갚으려고 방개보구 살자고 하니 싫다고 쳐다보지두 않고, 나 같어두 나 좋다는 사람하고 연애하다가 결혼까지 할지 어떻게 알겠냐구. 당신 하늘이 보고 있으니께, 엉가엄마 연애하는거 트집 잡지 말어. 잘 되길 하늘에 대고 기도나 해주구려 제발."
"당신 말 들으니 하긴 그러네유, 엉가엄마처럼 불쌍한 여자가 좋은 남자 만나서 재혼하문 얼마나 좋것슈, 엉가엄마보다 더 죄많은 여자들두 다 뻔뻔하게 사는데, 한 남자랑 연애하는게 무슨 큰 죄 것슈. 아직 엉가 엄마 말루는 둘이서 여관이나 호텔 같은디 가서 잠같은거는 안잤다구 하던디. 근디 둘이서 뽀뽀는 했나부던데유."
덕구는 아내의 말을 듣다가 느닷없이 소리를 꽥하고 질렀다. 자기의 아내가 너무 방정맞게 남의 은밀한 것을 다 까발리는 천박한 여자인거 같아서 화가 난 것이였다. 덕구는 절대로 남의 말을 하는 법이 없었고, 남의 흉을 보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고 동네에서 남자들끼리 욕하고 싸우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였다. 그는 어릴적 부터 부모가 없이 사는 사람은 부모없어서 배운게 없다고 남들이 흉본다며 할머니가 철저히 가정 교육을 시키고, 성경책을 펴놓고 때로는 가정 교육을 가르친 할머니의 가르침 때문에 다른 건 몰라두 살면서 남의 흉을 보는 걸 싫어하고, 싸움판에는 끼지 않았고, 남에게 베푸른 걸 좋아하면서 살았던 것인데, 가끔씩 아내가 동네 여자들속에 끼여서 남 얘길 하면 그 날은 여지없이 아내를 책망을 했다.
덕구의 아내는 샐 즉 하니 입술을 오므리며 살짝 눈가에 눈물이 도는 것을 참느라 이빨을 꽉하니 깨물었다. 남편에게 서운하기도 하기도 했지만, 매일 소처럼 시골에서 일만 하고 사는 이 시골 생활에 넌덜머리도 나서 자기도 무슨 기술을 배워서라도 농사꾼 마누라의 탈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사실 그녀가 엉가엄마를 부러워하는 것은 그녀가 젊은 남자랑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배운 약사랑 연애하는 것도 아니었다. 덕구의 아내가 엉가엄마를 제일 부러워하는 것은 그녀가 타고난 손재주로 양장점 여사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드는 옷이 사람들에게 어쩜 그리 꼭 안성맞춤으로 잘 맞는지 손님들은 엉가엄마가 새 옷을 입혀주면 그리도 좋아하고 엉가엄마에게 온갖 말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거울 속에 변신한 자신들의 옷이 날개라도 달린 듯이 빙글빙글 돌고 때로는 옷을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는 걸 볼 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매일 불을 때서 소죽을 끓이고, 과수원에서 모가지가 빠지도록 과일을 따야 하고, 자기 자식들과 조카들 뒷바라지에 하루 한 낮도 덕구의 아내는 쉴틈이 없이 일만 했다. 배우지 못한 집안에 첫째 딸로 태어나서 이렇게 산골짜기 농사꾼한테 시집을 온 데다가 생각도 하지 않은 조카들을 다섯이나 결혼초부터 맡았던지라 덕구의 아내는 사는 것이 끔찍할 지경이었다. 정말 남편 덕구가 능력이 없었다거나, 농토가 불어나지 않았거나, 소가 새끼들을 낳고 또 낳고 하면서 살림을 불려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기가 언제 야반도주를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 혼자 서울에 올라가서 식모를 살아도 이렇게 고되게 살지는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 덕구는 인품도 좋은 편이었고, 재산과 돈을 벌줄 아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그녀는 오로지 남편 덕구만 믿고 사는 것이었지 다른 방도는 찾을 수도 없고, 찾아봤자 자기는 공순이나 식모밖에 할 게 없었던 것이었다.
덕구의 아내가 덕구의 등을 돌리고 긴 한숨을 쉬면서 겨우 잠을 들었지만, 덕구는 천안에 땅을 사놓은 곳에 무엇을 지어야 하는지를 골몰했다. 집을 지어서 세를 주고 살아야 할지 아니면 천안이 많이 발전을 하면 그 땅에 건물을 지어야 할지를 고민을 했던 것이다. 덕구는 세상을 내다보는 눈이 남들에 비해서 천리는 앞서 있었다. 그가 그렇게 세상을 훤히 보는 능력이 생긴 것은 그가 세상을 부지런히 쫓아다닌 덕이였고, 시골에서 보는 신문 때문에 깨치는 것이 많았던 것이었다. 더구나 등치가 좋고 잘생긴 덕구는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인품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라서 그가 말도 잘하고 언변이 좋아지자, 동네나 면에서는 가끔씩 그에게 중요한 일들을 많이 맡기는 편이었다.
방개와 엉가엄마 그리고 엉가를 데리고 살기 위해서 초가집을 지어서 살게 한 덕구에 대한 좋은 소문은 이미 인근이 다 알게 되었지만, 형과 형수가 하루아침에 홍수에 떠밀려가 죽게 되자, 조카 다섯 명을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신혼에 그 아이들을 다 데리고 산 덕구에 대한 소문은 언제나 인근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것이었다. 그런 그가 마을이나 집안에 어렵고 힘든 대소사를 다 맡아서 하니 그는 언제나 마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든 그에게 가면 문제가 해결된다 할 정도의 해결사의 능력도 탁월했기에 그가 어떠한 중대한 일들 해결하는 데는 안 끼는 자리가 없었다. 더구나 중골에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 쌀똑에 쌀이 떨어지면 그 쌀독을 채워주는 것으로는 덕구가 일등인 걸로 소문이 나서 쌀 떨어진 집에 새벽에 누가 다녀갔다 하면 그 사람은 의례 덕구인 줄을 마을이 다 알았던 것이다.
덕구는 누구네 집에 먹을 것이 없다 하면 자기 집에 쌀이 없어도 무조건 쌀자루에 쌀을 되로 퍼 담아서 한말을 자전거 뒤에 태워서 그 집 쌀독에 몰래 퍼붓고는 왔다. 이제는 농사를 지으면 장례쌀도 놓고 가마니에 담아서 온양장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논농사도 짓고, 축사에서 황금빛 누런 황소나 암소들이 새끼를 낳아주니 그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데다가 삼천 평짜리 과수원에서도 사시장철 과일이 쏟아져 나오니 덕구는 먹는 걱정은 이제 절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누가 배고프다고 하면 그는 자기의 배고프던 어린 시절 생각에 불쌍한 마음을 금하질 못했기에 쌀자루를 메고 달려가곤 한 것이었다.
덕구는 어린 시절 가장 부러웠던 것이 동네에서 제일 잘 살던 친구 명근이가 먹던 하얀 고봉밥에 큰 멸치를 넣고 간장에 조린 멸치간장 조림이었다. 어쩌다가 친구 집에 저녁때 돼서 놀러를 가면 친구 명근이는 언제나 아기들 머리통만 한 큰 고봉밥그릇에 하얀 쌀밥을 가득 채워진 밥사발과 커다란 멸치를 졸인 간장 종지가 있었는데 그 멸치 간장을 밥에 슥슥 비벼 먹는 친구를 보면 입에서 침이 저절로 나왔었다. 아버지가 콜레라로 죽고 엄마도 집을 나간 자기는 고아였었다. 갑자기 아들이 둘이나 죽어나간 할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살아있는 자식 집에 덕구와 덕구의 형을 데리고 들어가서 며느리에 눈치를 보면서 손주들을 먹여 살리셨다. 할머니가 하는 일은 시래기 죽을 멀겋게 끓이거나 보리쌀로 밥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덕구는 가끔씩 눈치를 보면서 먹어야 했는데, 친구 명근이는 달랐다. 외아들인 데가 집이 부자니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것인데, 덕구는 그 집에 가면 그게 그렇게도 부러웠던 것이었다.
그래서 덕구는 누구네집에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고 하면 그렇게 푸지게 쌀을 퍼다 남의 쌀독에 부어주는 사람이 된 것이다.
"농사 져서 동네 가난뱅이들 다 퍼주고 뭐가 남어유."
가끔씩 아내가 쌀자루를 어깨에 메거나 자전거 짐칸에 싣고 나가는 걸 보면 아까워서 소릴 질렀다. 그래도 덕구는 이런저런 말이 없이 그 쌀자루를 들고나갔다. 그래서 그는 아내가 잠든 새벽에 주로 쌀을 퍼다가 가난한 집 대문 안에 드밀거나 부엌에 살 그 많이 갔다 놓고 오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신은 가끔씩 내가 퍼 나른 것보다 열 배 백배의 축복을 그 덕구에게 부어주시길 원했다. 그래서 덕구가 생각하는 일마다 그는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