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방개.

by 권길주

밤바다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방개도 덕구가 떠난 뒤로 혼자서 밤이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잘은 쓰지 못해도 그는 순자를 향한 마음과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생각들을 시라는 틀 안에 넣어 놓고 시를 써 보았다. 그리고 방개가 시를 쓸 땐 언제나 군산시내에서 기환이가 제일 멋진 걸로 사다준 만년필과 잉크가 있었다. 기환이는 방개 아저씨가 사랑하던 순자라는 여자를 알고는 있었는데, 그 여자가 결혼한 것에 대해 방개아저씨가 너무 힘들어하는 걸 보고는 시를 써보라면서 근사한 만년필과 잉크를 사다 줬다. 물론 공책도 대학생들이 쓰는 대학 노트를 몇 권이나 사다 주고 시집도 몇 권을 더 사다 놓았다.


방개는 낮에는 윤택이와 이삼일에 한 번씩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고, 어쩌다는 윤택이네 과수원에서 사과나 복숭아도 따주는 일을 거들었다. 그리고 밤이면 파도소리 나 철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책도 몇백 권 정도는 읽었고, 시집도 한 백여 권을 읽고 나니 방개도 이제는 문장의 흐름과 단어들이 주는 아름답고 절묘한 느낌들이 점점 글을 쓰는데 그를 빠져들게 했다.


처음에는 시 한 줄을 썼다.



밤바다에 파도가 친다.


그 다음에는 또 한 줄을 썼다.


그 파도 소리에 그녀의 눈물이 밀려왔다.


그 다음에 또 한 줄을 썼다.


내 눈물도 그 파도에 떠내려 갔다.


그리고 또 한 줄을 썼다.


우리는 바다 어디쯤에서 다시 만날까유.




방개는 그렇게 한 줄 한 줄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음이 흐르는 데로 생각이 집히는 데로 때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덕구는 선장에 돌아가 순자에게 방개가 준 돈봉투를 아무도 모르게 전해줬다. 덕구는 방개가 준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해서 거짓말로 둘러댈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덕구는 순자에게 방개가 서천에서 아주 큰 부자가 되었는데, 순자 씨 시집갔다 소리 듣고 살림살이 필요한 거 사라고 줬다며 서둘러서 그 집을 나왔다. 순자의 눈이 커다란 황소처럼 커지며 두 눈을 끔뻑 끔뻑 거리는 걸 보며 덕구는 순자가 지혜롭게 돈을 잘 쓰길 바랄 뿐이었다.


순자를 향한 방개의 그리움들이 시로 풀어지면서 방개는 글을 통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어떤 때는 방개는 배위에서도 연필과 종이를 들고 시를 쓰기도 했다.





사랑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오.


저 바다가 나를 잃어버리고

내가 저 바다를 잃어버린다면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당신은 바다고

나는 통통배인데,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소.



잠잠한 수면 위에 당신 얼굴이 스쳤다가 사라졌소.

그리운 얼굴 동그란 두 눈


진달래피듯 살짝 피었다가 지고는

이제는 내 곁에 없는 당신


저 깊은 물 속에 물고기들도 떼를 지어 놀건만

노을이 지도록 당신을 기다려도

텅빈 해변에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뿐이오.


이 고독이 사라질까

파도가 와서 덮치는구료.




나도 하나님께 한번은 따져 물었소.


왜 내게 당신을 보내지 않았는지.


그리고 다른 남자에게 보냈는지.


그런데 그분은 대답이 없소.


아무래도 내가 바보짓을 했나보오.



오늘은 내가 사과를 따러 갔었지요.

그런데 그 사과속에 당신 얼굴이 있어서

깜짝 놀랬지요.


그래서 가을 하늘을 보니 하늘에 구름 속에도

또 당신 얼굴이 있어서

더 깜짝 놀랬지요.


당신은 왜 나만 따라다니나요.





비가 와서 오늘은 배를 못탔어유.

그래서 장항선 기차를 타고 온양을 갈까

하루 종일 망설였지유.


바람두 불고 비도 오구

내 마음이 심란한디


당신 집앞에 가서

몰래 얼굴이라도 한번 보구 오문

내 마음이 진정 되것는디


당신이 결혼한 여자라는 생각이 퍼뜩 났지유.

이제는 영 못보고 죽을라나유.





아무리 책을 뒤져봐두

내가 어떻게 살어야 할지는 모르겠구


또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구


인생이 이렇게 허망한가 싶어서

또 책 한권을 뒤져보다가

잠만 푸지게 자고 일어나니


해가 중천인디


난 사내 구실도 못하구 살다가 죽을 팔자인가 싶어서

전쟁통에 하나님이 날 살려준 뜻이 뭐냐고

하늘에다 데고 깊이 고개 숙이고

아침 문안인사를 드렸네유.





개천에서도 용이 난다구 하는데

어째서 난 귀머거리 여자 하나도 못데리고 사나


우리 아버지는 내 엄마를 첩으로 데리고 살다가

그것도 머슴한테 빼앗겼다고

나한테 매질을 하고


엄마는 왜 머슴하고 도망을 가서

끝까지 잘 살기나 하지

어찌하여 그리 불쌍하게 죽었서


내 앞길 가로막고

내 사랑 가로막고


나를 슬픈 남자로 만들어서

이리도 떠돌이가 되게 했나


그래도 나는 질경이풀처럼 질기게 살아서

당신 집 앞 길가에 누워나 있어볼까.




덕구가 방개네 집을 다녀가고 일 년이 지나도록 방개는 순자를 향한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의 시에 대부분은 순자에 대한 연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방개가 시를 쓰면서 생긴 놀라운 변화 중에 하나는 그가 자기의 존재적인 아픔을 글로 표현하는 감각이 점점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군산시내에 고등학교를 다 짓고 이제는 어엿한 사립학교 이사장에 된 기환이 방개를 찾아와 그의 시를 보더니 여러 가지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환은 방개가 이렇게 시를 몇 년만 더 습작하고 책을 더 읽다 보면 그가 문단에 등단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기환은 방개에게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해 보라고 자꾸만 채근을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나오면 학벌도 문인으로 그리 빠지는 수준은 아니니 그 정도는 공부를 하길 바란 것이었다. 그러나 방개는 그 말에 쉽게 순종을 하지 않고 손사래를 치며 싫어했다. 자기는 시인라든지 그런 거는 절대 안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단체에 속하거나 무슨 간판을 달고 사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방개는 그냥 시가 좋아서 쓰고 시를 통해서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걸로 족하다면서 기환이가 말하는 시인이라든지 문단 등단이라는 것은 사양했지만, 그래도 날마다 그가 시를 쓰기 위해서 종이와 연필을 들고 다니거나 집에서 만년필에 잉크를 넣어서 대학노트에 또박또박 시를 쓰는 모습은 기환이 보기에는 예전에 몸도 병들고 정신적으로 환청에 시달리던 방개아저씨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기환은 학교에 분위기를 일류 명문고로 키워가기 위해 혼신에 힘을 쏟았다. 방개아저씨가 아직은 윤택이네 배를 타면서 시를 쓰는 걸 좋아하니 학교에 수위라도 맡기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되질 않았은 것을 알고

아쉬워했지만, 언젠가 방개아저씨가 자기가 세운 고등학교에 수위로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윤택은 법대교수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유산으로 군산에 고등학교를 세웠지만, 늘 아버지 같기도 하고 형 같기도 한 방개아저씨에게 자신의 마음을 의지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은 변하질 않았다. 그건 방개가 자신이 아버지나 형같이 의지할 만큼 순수한 사람이라는 걸 윤택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중골로 돌아간 덕구는 황소와 암소를 열 마리를 샀다. 그리고 집 근처에 축사를 지었다. 과수원도 하면서 소까지 키울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인데, 이상하게 덕구가 하는 일은 다 하늘이 도왔다. 그는 일 년 만에 소가 열 마리에서 열다섯 마리가 되었다. 이 기세로 나가면 내년에는 소가 스무 마리는 너끈하게 넘어버릴 판이다.

덕구는 아침마다 누런 황소와 암소들 그리고 새끼 소들이 축사에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아침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남산만큼 불러왔다. 그리고 삼천 평이 넘는 과수원과 논 스무 마지기는 그에게는 이제 그 중골에서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은 큰 부자가 된 것이다.


덕구는 조카와 자기 자식들이 공부하는 데는 무조건 재산을 팔아서라도 가르치기로 했다. 그리고 엉가엄마가 데리고 있는 조카 둘이 온양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서 고등학교는 서울이나 대전에 보내려고 덕구는 밤이고 낮이고 일만 했다. 자신이 못 배운 한을 반드시 조카들과 자식들에게 풀어야 한다고 그는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면 몽둥이를 들고 때릴 만큼 다그치기도 했다.


"내가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공부 못하면 너희들 용서 못한다."


그게 덕구의 자식들에 대한 신조 같은 것이었다. 머리를 도치 삼어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그는 때때로 자식들을 윽박지르며 공부를 잘해야 출세를 하고 공부를 잘해야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눈만 뜨면 자식과 조카들에게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자식보다는 덕구의 조카 둘이 탁월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기 시작했다. 덕구는 자신의 오촌 동생 중에 하나인 진욱이 이 나라에서 최고 잘 나가는 서울에 S대 영문과를 나와서 외무고시를 패스하고 외교관이 되고 나니 그에 모든 행보는 감히 이 시골에 사는 자기와는 도무지 살아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보고는 자식과 조카들에게 풀하나 못 베게 하고 소에게 꼴하나 먹이지 않게 하면서 오로지 공부만 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정말 자기랑 어릴 적에는 나이차이가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도 한 동네에서 집안식구로 같이 자란 오촌 동생 진욱이 출세를 해도 기가 막히게 한 것이었다. 외교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던 덕구는 자기 오촌 동생이 비행기를 타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고 또 아시아나 유럽에 나라에 가서 외교관으로 사는 것을 들어보니 가히 이 나라의 외교관들이 그렇게 나라에 큰 일을 하는 줄을 상상도 못 했고, 알지도 못하는 자신 같은 사람은 오촌 동생이 와도 대화라고는 안부인사가 전부였지만, 어쩌다가 그가 고향을 방문할 때면 인근에 방귀깨나 뀐다는 장들이 줄줄이 따라오기도 했다.


덕구는 그런 출세한 오촌 동생도 있고, 집안에 점점 대학교수나 선생님이 늘어나는 분위기에서 자신만 배우 지를 못해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나 싶은 것이 부화도 나고 성도 났다. 그는 콜레라로 죽은 아버지와 집을 나간 엄마, 그리고 결혼해서 일찍 부부가 홍수에 떠내려간 기가 막힌 자기의 집안 상황을 탓만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구보다도 그것을 불굴의 의지로 끊어내려고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한문 공부에 매달리고 밤이 늦도록 신문을 샅샅이 보고는 했다.


그런 덕구에게 기회는 왔다. 천안에 땅을 살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는 도회지로 무조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천안에 땅을 사놓기로 한 것인데, 드디어 자기 형편에 딱 맞는 땅을 사게 된 것이었다. 덕구가 판단할 때 앞으로 살면 살 수록 이 나라에서는 농촌 땅 값은 오르기가 힘들어도 도회지의 땅 값은 반드시 오를 거라는 예상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정확하게 예상은 적중했다. 덕구는 생각했다. 자기 자식이나 조카들이 서울에서 다 명문대학을 나오도록 학비를 대려면 지금 돈을 충분히 벌어 놓지 않으면 그런 꿈은 그저 한낮 허황된 꿈이 될 것이고, 자기 자식이나 조카들이 자기처럼 제대로 배우질 못하면 언제든 이 시골 구석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게 될 텐데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던 것이었다.


농사를 짓거나 소를 키우고 과수원을 하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든 지 잠시도 쉴 틈도 없고, 때로는 뼈가 으스러지게 무거운 흙짐을 지거나 밤이 늦도록 과수원에서 복숭아나 사과를 따야 하고 어느 때는 새벽까지 그 과일들을 다 선별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그는 아내와 함께 꾸벅꾸벅 졸면서 과일을 나무 상자에 담고는 했다. 덕구의 아내도 양장점을 하는 엉가엄마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늦도록 일을 하고 잠을 자는 밤에는 덕구에게 밤새 도록 불평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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