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는 허 씨를 논바닥에 메꼰지고는 무조건 맨발로 저수지가 있는 시어지로 달려갔다. 방개가 저수지 뚝에서 뒤를 돌아보니 허 씨는 쫓아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겨울바람이 부는 저수지에 바람이 너무 냉랭해서 방개는 저수지 옆에 과수원을 하는 한 씨 어르신 집의 추녀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우선은 과수원 밭에 딸린 사과 창고에서라도 쉬다가 저녁이라도 얻어먹을 요량이었다.
“방개가 어쩐 일로 우리 집엘 왔다냐”
“네 어르신, 추워서 잠깐 사과 창고에 있으면 안 될까요”
“그러렴, 들어가서 거기 골라 놓은 사과 중에 성한 거는 먹지 말고 썩은 거 문 앞에 내놓은 거 있어. 나도 맨날 그런 거만 먹으니까 그 썩은 사과 한 귀퉁이 발러 내구 몇 개 먹고 가. 여기 고구마 삶은 거 이거 몇 개 가져가고”
방개는 허 씨 때문에 줄행랑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도 점심, 저녁은 다 굶을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는데, 한 씨 어르신이 베푸는 공덕에 감지덕지였다. 찐 고구마를 양지기에 담아서 사과 창고를 들어가는 방개를 불러 세운 건 한 씨 어르신의 안사람이었다.
“방개야, 너 옷이 그게 뭐냐, 왜 다 찢어졌어. 이 한겨울에 아이고 윗도리가 저렇게 찢어진 걸 입고 다니니 동상 걸리겠다.”
방개는 잠시 부끄러움에 찢어진 옷 틈으로 보이는 앞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려보았다. 시커멓게 때 낀 가슴과 손등만 얼룩얼룩했지 훤히 드러난 맨살이 가려지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한 씨의 안사람이 눈물이 갑자기 그렁 그렁했다. 그녀는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두툼한 헌 솜옷 한 벌을 들고 댓돌 위로 내려왔다.
“방개야 이거 입어라, 우리 시아버지가 입으시던 건데, 돌아가시고 내가 아까워서 못 버렸는데, 구식이긴 해도 솜이 뜨뜻해서 좋아, 입어봐”
방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헛간에 들어가 솜옷을 입고 나오니 옷이 아주 맞춤처럼 꼭 방개의 두툼한 몸뚱이에 딱 맞았다.
“허허허, 방개가 오늘 횡재했구나, 너 오늘 무슨 좋은 일하고 왔나 보구나, 우리 한 씨 조상님이 널 도우시는 걸 보니. 여보, 이왕이면 저 바지도 너무 추워 보이니까 아버님이 입으시던 솜바지도 주구려, 나는 너무 커서 못 입어 그거, 아깝긴 하지만, 방개 주문 아버지도 불쌍한 방개 줬다고 서운해하지 않으실 거 같은데.”
“당신 눈치 보여서 다 주진 못했는데, 그러지요 뭐 그럼.”
방개는 돌아가신 한 씨 어르신의 입던 솜으로 짠 두껍게 짠 겨울 윗도리에 솜바지를 얻어 입으니 사람이 갑자기 양반이 된 듯이 훤칠하니 인물이 달라 보였다.
“아이고, 방개가 이제 보니 인물이 아주 근사하구나. 내 아버지가 입었을 때 같이 아주 근사하다야.”
“그러게 말아요, 방개한티 아버님 옷을 입히니까 아주 딴사람이 되어 버렸네요”
한 씨의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한 씨도 뿌듯한 듯이 방개의 위아래를 쳐다보며 눈가가 흡족하다. 방개는 그날 한 씨네 사과 창고에서 솜옷을 입고 배가 부르게 저녁까지 얻어먹고 잠을 잤다. 한 씨 어르신이 눈이 오는 걸 보면서 베푼 인심이었다. 갑작스레 날이 흐리더니 저녁이 되니 눈이 서서히 쌓이기 시작했다. 보통 동네 사람들은 방개를 집안에 들여서 재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방개가 사랑채 툇마루에서 잠을 자는 정도나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낫이나 지게, 또는 호미, 고무래 등을 아무렇게 걸어 놓은 헛간에서 잠을 자게 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한 씨 어르신처럼 사과나 배가 잔뜩 들어 있는 사과 창고에 들어가서 잠을 재워주는 일은 드문 일 중에 하나였다. 과일 창고는 과수원의 최대 보물창고이기에 그곳에 방개를 들여놓는 일은 어려운 얘기다.
방개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거나, 남의 것을 훔치지는 거의 안 하지만, 비싼 과일을 밤새워 먹는다 치면 사과 한 짝이든 못 먹겠는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고 겨울에는 사과가 좀 비싼 것이 아니다. 방개는 사과 향이 어릴 때 엄마의 젖가슴에서나 맡아보던 그 향기로운 냄새가 코끝을 밤새도록 채워주는 게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사방이 다 불이 꺼지고 한 씨 어르신과 안사람도 다 잠이 들고 그 집에 외양간에 소들도 잠이 들었는지 사방이 고요한 시간이 되었다. 한 씨 네가 동네에서 몇 번째 안 가는 부자 중의 부자인 이유는 밭에 과수원도 한 삼천 평이 넘었고, 소도 대여섯 마리가 되니, 인근에서는 그래도 큰 부자인 셈이다.
사그락사그락 거리며 눈이 내리는 소리가 흙벽돌로 지어진 사과 창고 틈새로 바람과 함께 들려왔다. 밤이 깊은 시간인지 방개는 오줌이 마려워서 창고 문을 열고 나갔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한 씨가 사는 큰 기와집이 있고, 마당을 가로질러 오른쪽에 외양간이 있고, 마당 건너 과수원 밭 앞에 사과 창고가 있는 구조였다.
방개는 솜바지를 내리고 눈이 쌓여 있는 밭에다 오줌을 눴다. 오줌을 다 눈 방개가 바지를 입고 과수원 끄트머리쯤을 보고 있는데 이상한 물체가 큰 것이 보였다. 분명 어스름한 눈발 사이로 시커멓고 커다란 물체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무엇이여, 무엇이 저렇게 크던가, 뭐가 걸어가는 겨, 저쪽으로”
방개는 옷을 다 추스르고도 발을 떼지를 못하고 검은 실루엣처럼 보이는 물체가 가는 쪽을 자세히 보려고 눈을 비비적거렸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그 검은 물체는 사라지고 눈발이 더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분명히 저수지 아래쪽 방죽길로 가는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내가 헛것을 봤나, 저녁도 잘 먹었는데 헛 게 보이나”
그때 안채에서 한 씨가 밤 오줌을 누려고 나왔다. 그는 뒷간이 있는 외양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니 갑자기 소리를 냅다 질렀다.
“여보, 나와봐, 소 외양간 문이 열렸어. 호롱불 좀 들고 나와 봐.”
안채에서 한 씨의 안사람이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며 호롱불을 들고 나왔다. 한 씨는 호롱불을 툇마루에서 받아서 얼른 외양간을 비췄다. 열린 외양간 문 안으로 호롱불을 비춰보니 제일 큰 암소가 한 마리 없어졌다. 한 씨는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방개를 보고 대뜸 물었다.
“소도둑 못 봤냐? 소가 나간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너 언제 나온 거냐?”
“예, 저 좀 아까 나와서 오줌 누었는데요, 그런데 오줌 놓다가 저기 저수지 쪽으로 무슨 검은 물건이 걸어가는 게 보였슈, 그게 소였는가 봐요”
“아이고, 이 등신아, 얼른 쫓아가서 잡았어야지, 그렇게 우두커니 쳐다만 보고 있었던 게야, 난 제가 왜 우두커니 저수지를 보나 했지. 아이고 내 소, 내 소 찾어야 혀 ”
“아이고 어떡한데요, 소도둑 왔나요, 그럼”
“ 여보, 내 잠바 꺼내와, 바지랑 빨리 입고 뛰어가야 그놈들 잡어. 분명히 두 놈은 같이 왔을 텐디. 방개야 너부터 저수지 방죽 뚝으로 뛰어가 봐라. 내 이 도둑놈들을 잡고 말 테다. 작년에도 한 마리 훔쳐 갔는데 분명히 그놈 들일겨. 이 소 도둑놈들아 가만히 안 둔다 내가 이참에는”
한 씨의 분노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눈에 핏발이 서릴 것 같다. 점잖아 보여도 성질이 매섭고 과수원 일도 평생을 머슴 한 사람 들이지 않고 안사람 하고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해온 깡다구가 있는 한 씨는 올해로 환갑의 나이였다.
방개는 솜바지 한쪽을 손으로 붙잡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채 저수지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눈이 온 신작로가 미끄러웠지만, 눈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소 발자국과 사람의 발자국이 보였다.
방개와 한 씨 어르신이 소도둑을 잡기 위해 밤새 걸어온 길은 족히 삼십 리는 더 되었다. 추위와 눈발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 갔다. 나이가 육십을 넘긴 한 씨 어른은 삼십 초반의 방개보다 훨씬 빨리 지쳐서 십 리쯤을 걷더니 포기하고 싶은지 자꾸만 가다 서고 가다 서고 했다.
그러나 분명 소도둑은 소의 발자국과 도둑놈의 발자국을 하얀 눈길에 선명하게 찍어 놓고 걸어간 것이 보였기에 그 걸음을 도중에 포기하기란 한 씨 어르신으로서는 쉬운 게 아니었다. 도둑놈은 한 명이었다. 대담하게 혼자서 남의 집 그 큰 소를 훔치러 왔단 말인가 한 씨는 그 소도둑의 담대함 때문에 방개가 없이는 도저히 한 걸음도 갈 엄두도 안 났다.
만약에 맞닥뜨린다 해도 자기 나이에 젊은 소도둑놈이라면 싸움에서 질게 뻔했다. 한 씨 어르신은 옆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이빨을 갈며 십리도 넘게 자신과 함께 걸으며 밤새도록 이 길을 와준 방개가 비싼 암소보다 더 내심 듬직했다. 소야 잃어버리면 재산을 한쪽을 잃어버리는 거지만, 소도둑에게 자기 육체가 상해를 입는다면, 잘못하면 불구나 병신이 될지, 아니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렸다. 한 씨 어르신은 그 생각이 들자, 입고 있던 긴 털 잠바를 벗어서 방개의 어깨에 둘러준다.
“어르신 추우신디 워째, 겉옷을 내주신데요”
“괜찮다, 네가 솜 윗도리 그거 하나로 밤새 이 눈 쌓인 길을 잘못 가면 감기 걸릴라, 잠깐 입고 가다가 날 돌려주면 돼, 난 도둑놈들 생각하니 열불이 다 날라고 한다.”
소도둑이 잡힌 시간은 새벽이 다 지나고 아침 해가 막 떠오르던 때였다. 거의 삼십 리 길을 눈길을 걸어서인지 두 사람은 한 걸음도 더 이상 걷기 힘들 지경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소 발자국이 멈춘 곳은 어느 외딴집 외양간 앞이었다. 아직도 초가지붕을 한 아주 가난한 집이었다. 그 집의 마당 한 귀퉁이에 허름한 외양간이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져 있었는데 한 씨 어르신의 커다란 암소는 거기에 메어있었다.
한 씨는 소를 보자 소의 머리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밤새 걸은 발바닥에서 물집이 터지는지 진물이 흘렀다. 암소가 눈을 꿈뻑이다가 자기도 눈물을 흘렸다. 소도 주인을 알아본 것이다. 소도둑은 밤새 소를 끌고 오느라 지쳤는지 밖에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잠을 자러 들어간 것 같았다. 한 씨는 소도둑을 잡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를 잡아서 경찰에 넘기면 인근에 다 소문이 날 것이 뻔했고, 한 씨의 마음도 일평생 편안하지를 않을 것 같아서 한 씨는 그 집에 매여 있는 소만 끌고 나왔다.
“방개야 소는 네가 끌고 가야 하겠다. 내가 너무 힘이 들어, 춥고, 이제는 날이 밝았으니, 가다가 면에 들려서 국밥이라도 먹고 가자.”
그날 한 씨는 면사무소 앞에 있는 국밥집에서 방개에게 배가 터지도록 실컷 국밥을 먹게 해 줬다. 그리고 한 씨는 집에 와서 그 겨우내 몸살을 앓고 지냈다. 한 번 든 감기몸살은 육십이 넘은 그에게는 쉽게 물러갈 기미가 없어 보였다.
“방개야, 아무래도 네가 올봄에는 내 과수원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네가 날 좀 도와다오, 또 일하다 말고 어디로 말도 없이 사라지지 말고, 내 집에서 몇 달이라도 일 좀 거들어봐. 밥은 실컷 먹여 줄 테니”
“네 어르신 그러게요”
“ 말루만 그러지 말고, 진득하니 일 좀 하구,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지 말고, 우리 동네서 머슴을 살아, 우리 동네도 부잣집 몇 집 있잖아. 너야말로 하늘이 지붕이고, 땅이 방바닥 아니냐, 언제까지 그렇게 떠돌이로 살 거야, 우리 집 일 차분하게 몇 년 하문 내가 허름하게나마 초가집도 지어줄게.”
“집이유, 그럼 색시도 해주는 거유, 나 장가도 가게, 히히히”
한 씨 어르신과 그에 안사람은 방개의 말에 웃음보가 터졌다. 방개는 어느 때는 바보인가 싶어도 우스갯소리도 곧잘 하는 걸 보면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